2.『르네상스 뒷골목을 가다-피렌체의 사라진 소녀들을 둘러싼 미스터리』, 니콜라스 터프스트라, 임병철 역, 글항아리
"르네상스의 찬란한 문화가 꽃핀 이탈리아의 피렌체. 1544년 피렌체에서 가장 열악한 동네에 집 없는 소녀들을 위한 자선 쉼터인 '피에타의 집(연민의 집)'이 설립되었다. 그런데 처음 14년 동안 그곳에 수용되었던 526명의 소녀들 가운데 오직 202명만이 살아남았다. 사망률이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높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이 미스터리의 이면에는 어떤 충격적 진실이 숨어 있을까?"
이렇게 얼핏 보면 무슨 미스터리 소설의 도입부를 소개하는 것 같은데 책의 내용을 좀 더 찬찬히 들여다 보면 독자의 말초신경을 자극하기 위한 읽을 거리는 아님을 알 수 있다.
르네상스는 각종 문화예술이 꽃피던 인류 문화사의 황금기로 알려져 있지만, 이 책의 소개글만 잠깐 읽어도 그 시대의 여성에 대한 의식 수준은 매우 낮았고 사회 전체가 매우 가부장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현대 한국 사회에서도 여성 인권에 대한 의식 수준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는데)
올바른 섹스와 젠더에 대한 인식의 필요성은 성별 세대를 막론하고 필수불가결하며, 역사 속에서 여성에 대한 억압이 어떻게 이루어져왔고 그것이 어떤 식으로 현대의 비틀린 전통을 구성하게 되었는지를 인식하는 일 역시 몹시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이 책을 추천 목록에 넣어 본다.
3.『혐오와 수치심-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들』, 마사 너스바움, 조계원 역, 민음사
법에 대해서라면 잘 모르지만 책의 저자 마사 너스바움은 현대 법의 근간이 '혐오'와 '수치심'이라는 감정에 기초하고 있다고 말한다. 과연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은 저자의 서술대로 이 두 가지 감정은 '차이'를 비정상으로 규정짓는 태도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많은 이들이 감정적으로 법리를 해석하려고 한다. 일례로 흉악범의 신상 공개를 많은 이들이 원하고, 또 몇몇 국가에서는 이를 국민의 알 권리로 해석해서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마사 너스바움은 이러한 견해에 반대한다. 인간의 폭력성은 폭력을 당하는 대상이 약자라는 사실을 인지하기 때문에 더욱 철저하게 발현한다는데, 이 의견에 새삼 강하게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인간의 감정은 심퍼씨일 것이라는 생각을 오래 해 왔는데, 이 생각을 더욱 정교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도움 받을 만한 신간인 것 같다.
4.『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생각들』(글항아리 이슬람 총서 3), 슬라보예 지젝, 배성민 역, 글항아리
지젝의 신간이 나왔다. 근 몇 달 간 전 세계를 들썩이게 했던 IS, 그 배경에 있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파헤치는 책이다. 지젝은 종교에 대해서 비판적인 사고를 가진 학자로 유명하다. 그에 따르면 근본주의자는 오히려 그의 신념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폭력적으로 행동하게 된다는 것인데, 날카로운 분석이 아닐 수 없다.
3월 초에 발간된지라 책이 나온 사실을 알고도 지난 달 페이퍼에 추천할 수가 없어 손가락이 간질거렸는데, 드디어 이 책을 추천할 차례가 돌아와 기쁘다.
5.『괴물의 심연-뇌과학자, 자신의 머릿속 사이코패스를 발견하다』, 제임스 팰런, 김미선 역, 더퀘스트
심리학 특히 뇌과학쪽에 흥미가 있는데 아직 이쪽 분야의 도서는 한 번도 뽑히지 않은지라 이번 달은 혹시...? 하고 밀어 본다. 사실 출판사 광고에 제대로 홀린 것이기도 한데. 출판사 측에서 책의 저자 제임스 팰런의 TED 강연을 링크 걸어 주었는데 이건 겨우 6분짜리로 마치 정찬 코스 먹으러 갔다가 에피타이저만 맛보고 쫓겨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James Fallon TED 강연: http://www.ted.com/talks/jim_fallon_exploring_the_mind_of_a_killer?language=ko)
사이코패스는 아직까지 학계에서도 정확히 정의되지 않은 개념이지만 인구 전체의 2퍼센트가 흔히들 인식하고 있는, '타인의 감정에 제대로 공감할 수 없는' 특징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저자 제임스는 원래 사이코패스를 연구하는 심리학자였으나 어느 날 스스로 사이코패스적인 완벽한 특징을 지닌 뇌를 가진 것을 발견했다고. 이에 크게 충격받은 후에 자신의 부계 쪽에서 여러 명의 살인마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드라마 같다)
여튼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잘못된 상식과는 다르게 사이코패스적 기질을 갖고 태어난다고 해서 이들이 모두 위험한 것은 아니다. 이 책도 그렇게 말하고 있으며 그는 오히려 이러한 기질을 가진 인간이 존재함으로써 인류를 발전시키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 밖에도 다른 서평단 분들이 추천하신 『음식의 언어』(댄 주래프스키, 어크로스)를 비롯한 몇몇 권. 역시 내 눈에도 재미있어 보였지만 나머지 추천하고 싶은 도서 중에서 한 권을 버릴 수가 없어서 나는 목록에서 뺐다.
과학 분야의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한 책』(캐스파 헨더슨, 은행나무)도 추천하고 싶었지만, 서평단 다른 분의 의견 중에서도 이번 달에는 좀 다이제스트한 책이 됐으면 좋겠다고 하신 말씀이 있었는데 지당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이 책은 사람을 패면 죽일 수 있는 두께로, 540쪽짜리라서 일단 빼 본다.
개인적으로는 고종석의 신간 『언어의 무지개』(고종석, 알마)도 무척 넣고 싶었고 여성 작가들의 생애를 다룬 『일곱 명의 여자』(리디 살베르, 뮤진트리)도 꽤 끌렸다. 하지만 언어를 다루는 인문학 분야는 이미 지난 달에 함께 읽었으니 또 선정될 리가 없을 것 같아 뺐다.
문학동네 4월 신간 중에서도 눈여겨 보는 게 있는데 그건 다음 달에 넣기로.
이번 달 추천 페이퍼는 이쯤에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