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4
J.M.G. 르 클레지오 지음, 김윤진 옮김 / 민음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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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정리가 안되는 책이 있다.

그래서 종종 기록하기를 포기해버리고, 그런 책이 우연히 생각나는 날이면 못끝낸 숙제같아서 종일 마음 한편이 불편하다. 엉망이 되어버리더라도, 그저 한 끄트머리라도 적어뒀어야 했나.. 르 클레지오의 <조서>도 거의 포기했다가 어떻게든 한토막이라도 적어볼까, 생각하며 화면을 열었는데. 휴~ 역시나 이렇게 쓸데없는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으며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이 소설은 2008년 노벨상 수상작가인 르 클레지오(1940生)가 23살 즈음에 발표한 첫 소설이다. 몸도 마음도 한껏 폭발할 수 있는 나이라고 해야할까...?


광기어린 태도를 보이는 이 소설의 주인공 이름은 대담하게도 '아담'이고, 그는 줄곧 합리적 이성이라 불리는 거짓과 위선에 패기있게 대응한다. 극도로 예민해진 감각으로 지나치게 사실적으로 관찰된 현실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시간의 흐름과 스토리가 정연하게 진행되는듯 하다가 어느 순간 뒤죽박죽 미궁 속인듯도 하다.


아담은 그래서 누구인가? 하지만 스스로도 자신이 탕영을 했는지 혹은 정신병원에서 탈출했는지 모른다. 이런 아담의 혼란과 시각을 따라 겪는 것이 바로 이 소설 읽기의 요체인것 같다.


앞부분을 말하는 것만으로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고, 끝부분을 말한다해도 스포일러가 될 수 없는 그런 소설. 말하자면 페이지를 넘기는 보람이 그다지 없어서 한없이 지루하지만 한 소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읽다보면 왠지 그의 심정에 조금씩 동화된다고나 할까.. 책장을 확 덮어버릴 수 없게 하는 이 남자만의 매력에 살금살금 빠져들게 된다. 그의 편이 되어주고 싶어진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 그 총체에 대한 알 수없는 두려움과 분노, 이미 죽어있는 인공물들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우리의 삶, 타인의 죽음, 그 틈새 어디쯤엔가 존재할것 같은 은밀한 개들의 사생활... 우리의 "아담은 도시의 길목마다 도처에 동시에 있었다. 어둠에 잠긴 공원 앞에, 개들의 묘지 앞에, 석재를 잘라 만든 현관 아래, 때로는 나무들이 줄지어 선 좁은 길을 따라, 혹은 성당의 계단에 앉아 있었다." (200쪽)


작품해설의 마지막 단락으로 나름 정리를 해보자.


(353쪽) " 아담 폴로를 통해 르 클레지오가 <조서>에서 드러내보이고 있는 세계의 모습은, 화려한 인위적 가치 체계로 가리고 있긴 하지만, 서구 문명 사회가 안고 있는 한계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라 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기 위해서는 비판, 공격, 파괴가 있으며, 그 파괴는 후일 그가 찾게 되는 또 다른 세계의 시작일 뿐이다."


20대에 쓴 첫작품이 줄 수 있는 패기와 터프함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그가 이후 어떤 소설들을 써나가게 되는지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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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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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에 대해 나름의 팬심이 있으나, 거의 물량공세로 쏟아져나오는 각종 엣세이들, 서로 겹쳐지는 에피소드들에 조금은 식상해버렸다. 그래서 당분간은 '소설만' 읽는걸로 마음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작은 아이 책상 위에 이 책이 딱 놓여있는거다. 흠... 다른 이웃들의 글을 보니 조금은 새롭다는 평이 많아 읽어버리고말았다.


자신이 소설가가 되기까지, 어떻게 소설을 쓰고, 소설이나 소설가란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있는지 등등이 주요 내용이라 조금은 다른 엣세이들과 차별화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앞부분은 언젠가 한번쯤 읽었던 듯 한 것이 많아 살짝 맥이 빠지기도 했는데, '소설'이 중심이 되는 章 들은 마음을 쫑긋 세우며 읽을 수 있었다.


문단과 친하지 않은 걸로 유명한 하루키답게 '문학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도 흥미로웠다. 그는 일종의 문학의 '부동표'같은 사람들을 문학으로 불러들이기 위한 하나의 이벤트로서 문학상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어지는 제 4회, '오리지낼리티에 대해서'도 어떤 의미에서 하루키를 새롭게 보게하는 글이었다. 그야말로 쿨~하게, 단순하게 살아가는 그이지만 소설을 쓰는 일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야심이 큰 사람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시간의 힘을 믿고 시간은 결국 진실의 편이라는 소신이 있는 작가, 賞보다는 오리지낼리티를 성취하고자하는 작가를 지향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야심가'인듯 하다.


소설이라는 것에 대해 그는 이야기한다. 내안에 '침묵의 시간'을 가지고, 그렇게 키운 싹에 '형태를 일으켜나가는 기간을 가지고, 다시 양생하는 기간'을 가지고, 그런 하나하나에 충분한 시간을 들이는 일, 그렇게 한편한편에 그 시간 속의 '나'를 투영하는 일이라고. 그러니 '남의 평가'에 개의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소설가는 '누구라도 될 수 있다.'고 몇번이고 쓰고있는 것이다.


어쨋든 그 성실한 하루키씨가 지금도 자신의 리듬에 따라 어딘가에서 규칙적으로 글을 쓰고, 어딘가를 규칙적으로 달리고 있을 거라는 사실이 종종 게으름과 흐트러짐에 휘둘리는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책 속에서


(125쪽) "제임스 조이스는 '상상력이란 기억이다'라고 실로 간경하게 정의했습니다. (略) 완전 정답입니다. 상상력이란 그야말로 맥락없는 단편적인 기억의 조합을 말합니다. 단어의 의미상으로는 좀 모순된 표현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유효하게 조합된 맥락없는 기억은 그 자체의 직관을 갖고 예견성을 갖게 됩니다."


(128쪽) "하지만 나에게 에세이란 굳이 말하자면 맥주 회사가 출시한 캔 우롱차 같은 것, 이른바 부업입니다. 정말로 좋은 소재는 다음 소설-본업을 위해 챙겨둡니다."


(188쪽) "큼직한 이야기를 하려고 할수록 작가는 좀 더 깊은 곳까지 내려가야 합니다. 큼직한 빌딩을 지으려면 기초가 되는 지하 부분도 깊숙이 파 들어가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195쪽) "자신의 내적인 혼돈을 마주하고 싶다면 입 꾹 다물고 자신의 의식 밑바닥에 혼자 내려가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직면해야만 할 혼돈은, 정면으로 마주할 만한 가치가 있는 참된 혼돈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245쪽) "그처럼 나는 새로운 소설을 쓸 때마다 '좋아, 이번에는 이런 것에 도전해보자'라는 구체적인 목표-대부분은 기술적인, 눈에 보이는 목표-를 한두 가지씩 설정했습니다. 나는 그런 식의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새로운 과제를 달성하고 지금까지 못 해본 것을 해내면서 나 자신이 조금씩 작가로서 성장한다는 구체적인 실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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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문화심리학
김정운 글.그림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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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이 남자. 가끔씩 궁금해진다. 지난번에 <에디톨로지>를 들먹들먹하다가 결국은 못읽고 말았는데... '김정운 그리고 쓰다'라는데... 읽어보자.


주절주절 글들과 재치있는 소재의 그림들, 나름 외롭고 쓸쓸한듯 하지만 한번더 들여다보면 풋.. 웃음 터지게하는 사진들로 채워진 책이다. 조금은 익숙한 필자의 모습을 떠올리며 읽어내려가다가 가 하고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는 결심에 앞서 내가 진정 하고싶은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읽으며 앗차! 싶었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같지만 핵심을 지르는 이야기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딱이 각잡고 읽을 필요가 없는 책, 이 책에 임하는 독자의 자세라면 그냥 유쾌한 기분으로 쭉쭉 읽어나가는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너뜀없이 읽어야 더 재미있는 책이다. 남자들의 기본 셋팅인 '허세'를 대놓고 부려대고, 그러다가도 서슴없이 내려놓기도 하는 귀여운 이 분. 그렇지만 글 곳곳에 심리학, 철학 이론과 용어들을 뿌려놓음으로서 정식 박사로서의 위용을 과시한다. 일본의 한 전문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미술학도로서의 위용 역시 화가들의 이름과 화풍 등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드러낸다.


그렇게 킬킬대며 꼼꼼히 읽어나가다보면 세상의 뒷면이 조금쯤 엿보이기도 하고, '자신이 원하는것을 하며 사는 삶' 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책 속에서


(56쪽) "큰 틀에서 보면 재능이나 성격도 다 운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다들 '열씨미' 노력해서 성공했다고 우긴다. 도대체 왜들 그럴까? 폼나기 때문이다. 성공을 노력의 결과로 설명하는 인과론이 산업화 시대에는 아주 폼 나는 내러티브였다. 통제 강박, 불안의 원인이 되는 이런 식의 노력-성공의 인과론은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식 성공 처세서가 세계 출판 시장을 휩쓸기 시작한 20세기 후반에야 나타난 현상이다. 정신없고 불안한 시대일수록 어설픈 '노력-성공의 인과론'이 잘 먹힌다. 명확하고 간결하기 때문이다.

// 명확하고 간결하고 혹은 빈틈없고, 뭉턱 잘라먹어서 재치있어보이는 그런 이론들에 우리는 쉽게 현혹되는 것 같다. 뭐든 잘~ 살펴볼 일이다.


(65쪽) "불안은 원래 미래가 불확실한 젊은이들의 정서다. 경험과 경륜의 노인들이 불안해하는 젊은이들을 위로할 때 한 사회는 균형을 잡으며 건강하게 버틸 수 있는 거다. 그러나 오늘날 아무런 대책 없이 수십 년을 견뎌야 하는 '젊은 노인들'이 갈수록 늘어난다. 문제는, 불안하면 세상을 자꾸 좁혀서 본다는 사실이다. (略) 불안한 젊은이들은 나무를 보고, 불안한 젊은 노인들도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를 본다."

// 나이들수록 옹졸해지고, 자기 주장이 더욱 견고해지는 노인들의 모습은 언제나 나를 불안하게하고 슬프게 한다.


(82쪽) "문학과 예술은 산만하고 다양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다."

// 변화를 꿈꿀 수 없는 이런 모습이 바로 문학작품 속 디스토피아의 세상이 아닌가.


(91쪽) "오늘날 한국 사회의 문제는 문화적 기억이 그리 쉽게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기억의 매체가 너무 다원화되어 있는 까닭이다. 종이 신문을 보는 사람들은 종이 신문으로 집단 기억을 구성한다. 페이스북, 트위터로 소통하는 이들은 자신들만의 집단 기억을 만들어나간다."

// 그리고 종편을 통해 집단 기억을 구성하는 이들이 있다.


(112쪽) "내가 원하는 것이 구체적이지 않으면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돈은 아주 막연한거다. 그 돈으로 뭘 하고 싶은지 분명하지 않으면 돈은 재앙이다. 사회적 지위도 마찬가지다. 그 지위를 가지고 내가 뭘 하고 싶은 것인지 분명치 않으니 다른 사람들 굴복시키는 헛된 권력만 탐하게 된다."


(129쪽) "'친구 차단'을 누른다. '친구 처단'이라 읽는다."

(147쪽) "항등성이란 맥락이 달라져도 물체가 가진 속성을 지속해서 지각하는 경향을 뜻한다. (略) 기막히게 아름다운 장면이 있어 사진을 찍으면, 그 결과가 그다지 신통치 않다. 항등성 때문이다. 카메라 렌즈에는 항등성이 작동하지 않는다."

// 내 사진이 별볼일없는 이유가 발로 찍어서인줄 알았더니 '항등성'이라는 폼나는 이유가 있었군..

(188쪽) " 프로이트가 정의하는 유며의 정신분석학적 본질도 마찬가지다. 유머란 '어린아이와 같은 자아 ego' 에게 '어른과 같은 초자아 super-ego'가 '지금 중요하게 여겨지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그런 것들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달래는 것이라고 프로이트는 설명한다. 메타적 시선으로 여유롭게 보는 능력을 유머 감각이라 한다."

(201쪽) " 객관적 확인이 불가능한 인문,사회학적 가설의 대부분은 일단 던져놓고 보는, '아니면 말고'다."

// 박찬욱 영화감독의 가훈이 '아니면 말고'라고 한다.

(300쪽) " 세로로 쓰인 일어 책을 읽으면 참 착해진다. 고개를 쉴 새 없이 끄덕여야 하기 때문이다."

// '이런 터무니없는..'하면서도 갑자기 세로쓰기 노트가 사고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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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여행책 - 휴가없이 떠나는 어느 완벽한 세계일주에 관하여
박준 지음 / 엘도라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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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흔해져버려서, 결국은 그 시작과 끝이 모두 자본주의에 삼켜져버려서, 더이상은 좀체로 낭만적으로 들리지 않는 '여행'이라는 말. 그만큼이나 진부한 것이 되어버린 일명 여행작가의 '여행에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적인 일과 일상적인 장소에 지칠만큼 지치면 우리는 '그나마' 여행을 꿈꾸고, 여행에세이를 읽는다.

그렇게 박준의 여행에세이 <책여행책>을 읽었다. 새로이 여행을 떠나서 쓴 글이 아닌, 책과 엮어낸 지난 여행의 기억(추억)에 대한 기록이다. 그래서 '휴가없이 떠나는 어느 완벽한 세계일주에 관하여'라는 부제가 붙어있고, 여행지도 가까운 일본에서 멀리 알래스카에 까지 이른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생긴 일, 여행지에 대한 소소한 정보 등이 주요 내용이라기보다 여행의 의미에 대한 책으로 읽혔다.​ 수많은 여행지가 등장하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이야기, 풍경이야기, 에피소드 같은 것들도 물론 있지만 말이다.


그의 책과 여행을 쫓아 읽으며 함께 생각을 굴려나간다. 목적이 있는 여행과 목적이 없는 여행으로 이분해본다면 무엇이 더 의미있을까? 미션수행의 출장같은 여행과 무의미하게 휘발되는 여행이라고 바꿔 불러보았다. 둘다 아니다. 결국 의미나 목적을 염두에 둔다는 것 자체가 여행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 뭣하러 의미없는 여행을 한단 말인가.  이건 뭐... 점점 미궁이다.


뭔가 다른 세상, 다른 장소 그리고 그너머의 다른 가치를 보고 색다른 자극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이 여행이 아닐까. 내 안에 있는 수많은 '나' 중에서 내가 원하는 '나'를 찾아가는 하루하루의 여정에서 여행은 뭔가 새로운 광산을 살펴보 수 있도록 선택지를 넓혀주는 일은 아닐까. 말하자면 어떤 형태의 여행이 되었든 그것은 자아찾기의 여정과도 겹쳐진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멀리 떠나도 모든 여행은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이리라.


"삶을 오랫동안 생산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감정적으로나 존재론적으로 그 지지기반을 마련하는게 필요하다. 그 한가지 방법은 보헤미안의 국제도로 위에 있는 한 정거장에 내려서 그 도시에 머물며 글을 쓰는 것이다. 이를테면 바르셀로나 또는 프라하의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산책하다가 가끔씩 발길을 멈추고 글을 쓰는 삶의 방식, 그렇게 글 쓰는 인생을 축복하는 것이다."

  <보헤미안의 샌프란시스코>, 에릭 메이슬


이런 멋진 이유 하나쯤 앞세워서 보헤미안 놀이에 푹 빠져본다면, 샌프란시스코 쯤 되는 곳에서 글짓기 놀이에 푹 빠져본다면... 상상만으로도 멋진 일이다. 그리고 때론 오직 걷는 것을 목적으로 걷는 것도 멋진 일이 되리라. 그 단순한 동작에 몸을 맡긴채 텅 비워버린 마음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산책길의 풍경, 소리, 알수없는 냄새가 배인 공기들을 느끼는 일 말이다.


그리고 책의 끄트머리에서 그는 '여기'를 말한다. 필연적으로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게 여행이고 또 '여기'로 돌아오는게 여행이니까. 많은 유혹적인 '떠남'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의 화두는 결국 '여기 산다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책장을 덮었다.


"지구를 제집처럼 돌아다니며 목숨을 걸고 배우는 것도 의미 있는 삶의 방식의 하나다. 하지만 그런 삶을 대다수인 우리가, 더욱이 일생동안 계속할 수는 없다. 인생의 어느 시기에 배움과 동경의 여행은 끝나고, 여기에 사는 게 시작된다. 여기에 산다고 하는 것은 인생 여행의 참다운 시작이다."   <여기에 사는 즐거움>, 야마오 산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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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깃구깃 육체백과
무레 요코 지음, 김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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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백과'라는 부분만 읽으면 마치 건강 상식모음 처럼 들리지만,

만화적 상상력이 드러나는 표지 그림과 '구깃구깃'이라는 장식어를 함께 읽는다면 뭔가 정체성이 모호해지는 책이다. 저자가 <카모메 식당>으로 잘 알려졌다는 점까지 고려한다면 역시 건강과 관련된 책으로 묶여서는 안될거라는 생각이 더 확실해진다.


늘 편안함을 주는 작가의 소설들을 떠올리며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다.

아하.. 이래서 '구깃구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이미 환갑이 지난 작가가 조금씩 나이들어 말 그대로 살금살금 구겨져가고 있는 자신의 몸, 정확히는 56곳의 신체 부위에 대한 생각을 '가감없이' 적어내려간다. '가감없이'라고 쓸 수 있을만큼 때로는 조금 민망한 이야기까지도 아무렇지도 않게 쓱쓱 재치있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니 몸이 구겨져가는 걸 느끼는, 그러면서도 마음은 늘 청춘을 지향하는 많은 중노년층 들에게 조금은 덜 심각한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글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소설들처럼 사랑스럽고, 따뜻한 미소가 감도는 한 편 한 편. 그러면서도 때로는 무리하게 '젊음'을 지향하는 세태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 몸 에세이를 읽어내려가다보면 누구라도 조금씩 늙어가고, 기능이 무뎌지는 자신의 몸 구석구석에 대해 한 뼘쯤 더 애정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굳이 들여다보지 않던 아주 작은 부분도 '아하. 너도 늘 나랑 함께 살아왔었지' 라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바라봐주고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항상 불완전하고, 끊임없이 나의 '돌봄'을 요구해대는 나의 몸, 어쩌면 나 자신이기도 한 나의 몸이 나의 일상과 같은 무게로 작은 사색과 감동의 우물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을 그녀의 에세이 <구깃구깃 육체백과>를 읽으며 배웠다. 비록 조금씩 구겨져가고 있는 몸이지만, 조금 더 자상한 관심을 가져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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