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문화심리학
김정운 글.그림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평점 :
김정운, 이 남자. 가끔씩 궁금해진다. 지난번에 <에디톨로지>를 들먹들먹하다가 결국은 못읽고 말았는데... '김정운 그리고 쓰다'라는데... 읽어보자.
주절주절 글들과 재치있는 소재의 그림들, 나름 외롭고 쓸쓸한듯 하지만 한번더 들여다보면 풋.. 웃음 터지게하는 사진들로 채워진 책이다. 조금은 익숙한 필자의 모습을 떠올리며 읽어내려가다가 가 하고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는 결심에 앞서 내가 진정 하고싶은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읽으며 앗차! 싶었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같지만 핵심을 지르는 이야기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딱이 각잡고 읽을 필요가 없는 책, 이 책에 임하는 독자의 자세라면 그냥 유쾌한 기분으로 쭉쭉 읽어나가는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너뜀없이 읽어야 더 재미있는 책이다. 남자들의 기본 셋팅인 '허세'를 대놓고 부려대고, 그러다가도 서슴없이 내려놓기도 하는 귀여운 이 분. 그렇지만 글 곳곳에 심리학, 철학 이론과 용어들을 뿌려놓음으로서 정식 박사로서의 위용을 과시한다. 일본의 한 전문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미술학도로서의 위용 역시 화가들의 이름과 화풍 등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드러낸다.
그렇게 킬킬대며 꼼꼼히 읽어나가다보면 세상의 뒷면이 조금쯤 엿보이기도 하고, '자신이 원하는것을 하며 사는 삶' 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책 속에서
(56쪽) "큰 틀에서 보면 재능이나 성격도 다 운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다들 '열씨미' 노력해서 성공했다고 우긴다. 도대체 왜들 그럴까? 폼나기 때문이다. 성공을 노력의 결과로 설명하는 인과론이 산업화 시대에는 아주 폼 나는 내러티브였다. 통제 강박, 불안의 원인이 되는 이런 식의 노력-성공의 인과론은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식 성공 처세서가 세계 출판 시장을 휩쓸기 시작한 20세기 후반에야 나타난 현상이다. 정신없고 불안한 시대일수록 어설픈 '노력-성공의 인과론'이 잘 먹힌다. 명확하고 간결하기 때문이다.
// 명확하고 간결하고 혹은 빈틈없고, 뭉턱 잘라먹어서 재치있어보이는 그런 이론들에 우리는 쉽게 현혹되는 것 같다. 뭐든 잘~ 살펴볼 일이다.
(65쪽) "불안은 원래 미래가 불확실한 젊은이들의 정서다. 경험과 경륜의 노인들이 불안해하는 젊은이들을 위로할 때 한 사회는 균형을 잡으며 건강하게 버틸 수 있는 거다. 그러나 오늘날 아무런 대책 없이 수십 년을 견뎌야 하는 '젊은 노인들'이 갈수록 늘어난다. 문제는, 불안하면 세상을 자꾸 좁혀서 본다는 사실이다. (略) 불안한 젊은이들은 나무를 보고, 불안한 젊은 노인들도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를 본다."
// 나이들수록 옹졸해지고, 자기 주장이 더욱 견고해지는 노인들의 모습은 언제나 나를 불안하게하고 슬프게 한다.
(82쪽) "문학과 예술은 산만하고 다양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다."
// 변화를 꿈꿀 수 없는 이런 모습이 바로 문학작품 속 디스토피아의 세상이 아닌가.
(91쪽) "오늘날 한국 사회의 문제는 문화적 기억이 그리 쉽게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기억의 매체가 너무 다원화되어 있는 까닭이다. 종이 신문을 보는 사람들은 종이 신문으로 집단 기억을 구성한다. 페이스북, 트위터로 소통하는 이들은 자신들만의 집단 기억을 만들어나간다."
// 그리고 종편을 통해 집단 기억을 구성하는 이들이 있다.
(112쪽) "내가 원하는 것이 구체적이지 않으면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돈은 아주 막연한거다. 그 돈으로 뭘 하고 싶은지 분명하지 않으면 돈은 재앙이다. 사회적 지위도 마찬가지다. 그 지위를 가지고 내가 뭘 하고 싶은 것인지 분명치 않으니 다른 사람들 굴복시키는 헛된 권력만 탐하게 된다."
(129쪽) "'친구 차단'을 누른다. '친구 처단'이라 읽는다."
(147쪽) "항등성이란 맥락이 달라져도 물체가 가진 속성을 지속해서 지각하는 경향을 뜻한다. (略) 기막히게 아름다운 장면이 있어 사진을 찍으면, 그 결과가 그다지 신통치 않다. 항등성 때문이다. 카메라 렌즈에는 항등성이 작동하지 않는다."
// 내 사진이 별볼일없는 이유가 발로 찍어서인줄 알았더니 '항등성'이라는 폼나는 이유가 있었군..
(188쪽) " 프로이트가 정의하는 유며의 정신분석학적 본질도 마찬가지다. 유머란 '어린아이와 같은 자아 ego' 에게 '어른과 같은 초자아 super-ego'가 '지금 중요하게 여겨지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그런 것들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달래는 것이라고 프로이트는 설명한다. 메타적 시선으로 여유롭게 보는 능력을 유머 감각이라 한다."
(201쪽) " 객관적 확인이 불가능한 인문,사회학적 가설의 대부분은 일단 던져놓고 보는, '아니면 말고'다."
// 박찬욱 영화감독의 가훈이 '아니면 말고'라고 한다.
(300쪽) " 세로로 쓰인 일어 책을 읽으면 참 착해진다. 고개를 쉴 새 없이 끄덕여야 하기 때문이다."
// '이런 터무니없는..'하면서도 갑자기 세로쓰기 노트가 사고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