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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여행책 - 휴가없이 떠나는 어느 완벽한 세계일주에 관하여
박준 지음 / 엘도라도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너무 흔해져버려서, 결국은 그 시작과 끝이 모두 자본주의에 삼켜져버려서, 더이상은 좀체로 낭만적으로 들리지 않는 '여행'이라는 말. 그만큼이나 진부한 것이 되어버린 일명 여행작가의 '여행에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적인 일과 일상적인 장소에 지칠만큼 지치면 우리는 '그나마' 여행을 꿈꾸고, 여행에세이를 읽는다.
그렇게 박준의 여행에세이 <책여행책>을 읽었다. 새로이 여행을 떠나서 쓴 글이 아닌, 책과 엮어낸 지난 여행의 기억(추억)에 대한 기록이다. 그래서 '휴가없이 떠나는 어느 완벽한 세계일주에 관하여'라는 부제가 붙어있고, 여행지도 가까운 일본에서 멀리 알래스카에 까지 이른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생긴 일, 여행지에 대한 소소한 정보 등이 주요 내용이라기보다 여행의 의미에 대한 책으로 읽혔다. 수많은 여행지가 등장하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이야기, 풍경이야기, 에피소드 같은 것들도 물론 있지만 말이다.
그의 책과 여행을 쫓아 읽으며 함께 생각을 굴려나간다. 목적이 있는 여행과 목적이 없는 여행으로 이분해본다면 무엇이 더 의미있을까? 미션수행의 출장같은 여행과 무의미하게 휘발되는 여행이라고 바꿔 불러보았다. 둘다 아니다. 결국 의미나 목적을 염두에 둔다는 것 자체가 여행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 뭣하러 의미없는 여행을 한단 말인가. 이건 뭐... 점점 미궁이다.
뭔가 다른 세상, 다른 장소 그리고 그너머의 다른 가치를 보고 색다른 자극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이 여행이 아닐까. 내 안에 있는 수많은 '나' 중에서 내가 원하는 '나'를 찾아가는 하루하루의 여정에서 여행은 뭔가 새로운 광산을 살펴보 수 있도록 선택지를 넓혀주는 일은 아닐까. 말하자면 어떤 형태의 여행이 되었든 그것은 자아찾기의 여정과도 겹쳐진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멀리 떠나도 모든 여행은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이리라.
"삶을 오랫동안 생산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감정적으로나 존재론적으로 그 지지기반을 마련하는게 필요하다. 그 한가지 방법은 보헤미안의 국제도로 위에 있는 한 정거장에 내려서 그 도시에 머물며 글을 쓰는 것이다. 이를테면 바르셀로나 또는 프라하의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산책하다가 가끔씩 발길을 멈추고 글을 쓰는 삶의 방식, 그렇게 글 쓰는 인생을 축복하는 것이다."
<보헤미안의 샌프란시스코>, 에릭 메이슬
이런 멋진 이유 하나쯤 앞세워서 보헤미안 놀이에 푹 빠져본다면, 샌프란시스코 쯤 되는 곳에서 글짓기 놀이에 푹 빠져본다면... 상상만으로도 멋진 일이다. 그리고 때론 오직 걷는 것을 목적으로 걷는 것도 멋진 일이 되리라. 그 단순한 동작에 몸을 맡긴채 텅 비워버린 마음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산책길의 풍경, 소리, 알수없는 냄새가 배인 공기들을 느끼는 일 말이다.
그리고 책의 끄트머리에서 그는 '여기'를 말한다. 필연적으로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게 여행이고 또 '여기'로 돌아오는게 여행이니까. 많은 유혹적인 '떠남'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의 화두는 결국 '여기 산다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책장을 덮었다.
"지구를 제집처럼 돌아다니며 목숨을 걸고 배우는 것도 의미 있는 삶의 방식의 하나다. 하지만 그런 삶을 대다수인 우리가, 더욱이 일생동안 계속할 수는 없다. 인생의 어느 시기에 배움과 동경의 여행은 끝나고, 여기에 사는 게 시작된다. 여기에 산다고 하는 것은 인생 여행의 참다운 시작이다." <여기에 사는 즐거움>, 야마오 산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