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이 전사 레마솔라이]라는 책을 보면 마사이 족 소년 레마솔라이가 학교 교육을 받는 과정이 나온다. 레마솔라이는 당시 케냐 정부가 추진한 ‘한 가족 한 아이 학교 보내기’ 정책에 따라 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책은 학교 교육이, 가난과 무지로 점철된 레마솔라이의 삶을 어떻게 바람직하게 바꾸어 놓았는가를 보여주고 있지만, 나의 관심을 끈 것은 레마솔라이가 아니라 그의 형이었다. 원래는 장남인 큰 형이 학교에 들어가야 하지만, 레마솔라이의 큰 형은 “학교에 가는 것은 사자와 홀로 맞서 싸우는 것보다도 더 무서운 일”이라며 학교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바람에 동생인 레마솔라이가 대신 학교에 가게 된 것이다. 근대화의 시스템을 경험해 보지 않은 채 수렵과 이동을 근간으로 살아가는 마사이 족 소년에게 하루 종일 건물 안에 갇혀서 글자와 셈을 배우는 것은 사자와 홀로 맞서 싸우는 것보다 두려운 일이었다는 점을 진지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두려움을 이유로 학교를 거부한 레마솔라이의 형은 어쩌면 학교의 태생과 기능에 대해 본능적으로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겸허하고 진지하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직관력이 발동된 것 아닐까? 산업 사회의 도래와 함께 등장한 근대적 학교는 산업 사회에 보다 잘 적응할 수 있는 인간을 키우는 데 온 관심을 집중한다. 학생들은 정해진 시간에 등교해서 정해진 자리에 앉아 정해진 공부를 한다. 학교는 온전한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데 필요한 것보다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을 가르친다. 이것은 정해진 시간이 출근해서 정해진 자리에서 정해진 일을 하는 산업 사회의 일터의 모습과 놀랍도록 닮았다. 이때 사람들이 하는 일은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신발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일생 수천만 켤레의 신발의 일부를 만들어내지만, 어떤 사람도 살면서 수천만 켤레의 신발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게토는 산업 사회의 산물인 학교 제도에서의 탈주를 모색하는 사람이다. 그의 실천에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그의 수업이 세련되고, 그의 강의가 탁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학교 제도 그 자체의 본성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그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들을 감행했다는 점 때문이다. 게토는 자신의 학생들에게 학교 밖에서의 배움을 허락한다. 사실 이것은 허락하고 말고의 성질이 아니다. 모든 곳에서 모든 순간에 모든 이로부터 배울 수 있는 인간의 본성, 이 배움의 과정에서 조금 더 좋은 나로 나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을 생각한다면 게토가 한 일은 그 본성을 충실히 실현하도록 길을 열어준 것일 뿐이다.
그러나 그 본성을 억압하는 장벽을 무너트리고 교실 밖에서의 배움을 일구어내는 일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가 문제제기를 한 장벽이 우리 사회 전반의 시스템을 유지시키는 장벽과 정확히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학교는 산업 사회에서 쓸모 있게 사용될 수 있도록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을 하고, 사회적 희소가치의 불공정한 배분을 공정한 것으로 위장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어떤 노동력이 기업가에게 쓸모 있는 노동력인가? 그것은 신체 건강, 국어, 산수, 기술, 영어, 컴퓨터 등 노동 능력이 좋아야 하고, 성실성, 책임감, 신뢰성, 복종심, 충성심 등 노동 자세의 측면이 좋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은 학교가 추구하는 것과 일치한다. 노동 능력 측면은 졸업장과 자격증, 서열화 된 성적으로 측정되고, 노동 자세는 개근상, 생활 기록부 등으로 측정된다. 인간을 쓸모 있는 노동력으로 개조해 가는 과정은 매우 강압적으로 진행되는데, 대부분의 학생은 이 과정에서 자기 존중감을 배우기보다는 열등감과 좌절감, 불안감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교육은 열등감, 좌절감, 불안감과 만날 때 일단 뒷자리로 밀려난다.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기 때문이다.
게토의 실천을 통해 같은 교사인 내가 배운 점은 바로 이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의 본질을 정확히 깨달을 것, 깨달음을 위해 내가 하는 일을 늘 진지하게 성찰하고 또 성찰할 것. 거대하고 힘센 시스템 앞에서 좌절하고 포기하지 말 것, 좌절의 정신적 상흔을 이겨내기 위해 스스로를 ‘강자와 동일시’하지 말 것. 한꺼번에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래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마땅히 가야 할 방향으로 반걸음이라고 걸어갈 것. 그리하여 조금씩 조금씩 교육의 영토를 넓혀 나갈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