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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필
존 그리샴 지음, 유소영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製作所'에 오시는 분들 중 대다수가 그렇겠지만 끄적이는 자도 역시 얻는 정보 대부분을 인터넷을 통해서 얻는다. 정보라는 것이 양보다 질을 고려해야 되는 것이긴 하지만, 돌멩이 10개 중에 1개의 귀한 보석을 건지는 것과 돌멩이 100개 중에 보석 10개를 건지는 것은 단순 확률만으로 비교했을 때는 같아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9개의 보석의 차이가 나게 된다. 아무래도 정보의 근원의 특성상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있기 때문에 정보의 근원 중에서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더 찾게 되는 것이 아닐까? 비록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는 쓸모없는 90개의 돌멩이가 생기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남들 눈에는 평범하게 스쳐지나가는 돌멩이가 정작 나에게는 어떤 보석과도 바꾸지 않을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일 수도 있고, 검은 갯벌 속에 깊숙히 숨겨져 있는 아직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진주가 내 눈 앞에 나타날 수도 있는 법이다. 결국 객관적으로 똑같은 물체라고 해도 그것의 가치는 사람마다 달라지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며, 객관적인 확률도 매순간마다 바뀌기 마련이다.

 게다가 수많은 정보들 중에서 자신에게 중요한 것들만 골라서 습득하는 능력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부르짖은 내용이니까 '製作所'에 오신 분들도 잘 알겠지만, 그런 능력뿐만 아니라 잡석에 둘러싸여 영롱한 빛이 가려진 보석을 찾아서 가공하는 능력이 더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분명 처음에는 아주 초라하고 별 볼품없는 정보일지라도 여기저기를 수정하고 덧붙여서 모두에게 중요한 정보로 다시 재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면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우연한 기회에 점심식사를 하러 들어간 식당에서 펼쳐든 신문의 맨뒷장에 한뼘도 안 되는 광고에서 존 그리샴의 신간 작품을 발견했다. 그리고 며칠 뒤 인터넷 서점에 주문을 하고 바로 뒷날 손에 넣게되었다. 그리하여 이번 '安經'에서 소개할 작품은 역제가 원제의 발음인 『어필』(『The Appeal』)이다. 책 마지막 장에는 이번 작품이 21번째 작품이라고 하는데 '정통 스릴러'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지난 존 그리샴의 작품인 『크리스마스 건너뛰기』를 만난 이후로 꽤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상당히 반가웠다.

 솔직히 이번 작품은 그동안 만났던 존 그리샴의 작품과는 뭔가 색다른 면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마도 누가 작품 속 주인공인지 모르는 구성때문이 아닌가 싶다. 다들 잘 알고 계시겠지만, 보통 소설의 3요소 하면 주제, 구성, 문체이고, 소설 구성의 3요소는 사건, 배경, 인물이지 않는가. 주제나 문체는 작가가 가진 고유의 특성이니까 모든 작품에 당연히 있겠지만, 구성은 작가의 능력이 반영되고 한 작품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에서, 등장인물 중에 주인공이 없이 사건을 이끌어나가고 그것을 한편의 이야기로 이끌어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가? 어쨌든 명불허전이라고 유명한 작가는 이러한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 일도 현실로 만들었고, 단순히 현실로 만드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한편의 멋진 작품으로 완성시킨 것이다.

 비록 작품의 배경이 되는 법정과 사법제도가 끄적이는 자와 이 '安經'을 읽고 있는 여러분의 그것과는 다르기 때문에 흥미나 이해를 하는데 약간의 장벽이 될 수도 있으나, 그렇다고해서 전혀 재미를 못 느끼거나 이해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니 아직 작품을 읽지 않은 독자분들을 위해 미리 안심시켜 드리는 바이다. 이 작품의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약간의 음모론과 이미 알고 있지만 모르는 정치계의 비릿한 비리만 알고 있으면 충분하다.

 암을 일으키는 유독물질을 주민들의 식수원에 몰래 버리고서는 모른척하는 기업과 맞서 싸우는 주민들과 그 주민들을 대표해서 모든 것을 다 소비한 부부 변호사. 비록 재판에서 승소하여 엄청난 배상금과 함께 해피엔딩으로 끝날 줄 알았으나, 악덕기업은 대법원에 항소하고 때마침 대법관 선출이 맞물러지면서 검은 세력이 판사 선출에 마수를 뻗히게 되면서 끝까지 누가 승리자가 되는지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리나라는 구조적으로 미국의 사법제도와는 다르기 때문에 소설같은 일들이 일어날 가능성이 지극히 적다고 생각이 들지만, 그렇다고해서 과연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을까?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니며,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는가.

 힘은 또다른 힘을 부르는 특성이 있나보다. 권력이든 재력이든 무력이든 어떠한 힘을 가지게 되면 다른 힘을 가지고 싶어하고 그렇게 새로 가진 힘으로 기존에 가졌던 힘을 지키려고 쓰며, 이는 또다른 힘을 가지고 이 두 힘을 지키고 싶어하니까 말이다. 물론 정정당당하게 얻는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냐만은 그렇게 하지 않고 보다 쉬운 길로 가려다보니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확실히 정치는 정책과 논의의 타협과 양보의 화합물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르는 또다른 면은 서로의 이득을 챙기려는 욕심과 욕심의 투쟁이 아닌가싶다. 그리고 상대편보다 우위에 점하기위해서 비열한 술수도 서슴없이 쓰고,어디서 흘러나온 것인지도 모르는 검은 돈이 들어가기도 하는 더러운 진흙탕의 싸움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직접 싸우는 자들의 윤리나 도덕성을 문제시 삼아야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들을 앞세워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려는 배후의 자 또는 세력의 윤리와 도덕성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나마 사람들 눈에 보이는 악취는 치울 수 있지만 보이지 않으면서 계속 악취로 고통을 주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가져오니까 말이다.

 비록 끄적이는 자가 정치에 대하여 혐오적인 측면이 다분히 있으나, 중립적이거나 우호적인 사람일지라도 이번 작품을 읽고나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한번쯤 다시 수정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않을까 생각한다. 끝으로 이번 작품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문구를 소개하고자 한다.

 "민주주의여, 고맙다. 시민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라."

- 끄적이는 자, 우비(woobi@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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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진실을 알고 있다 - 2권 세트
조르지오 팔레띠 지음, 이승수 엮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이 끄적이는 자에게 '매니아' 기질을 힘껏 발산하게 하는 몇몇 사물들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이미 알고 계신 분들은 알겠지만 책이다. 특히 몇 안 되는 좋아하는 작가들이 쓴 책을 직접 사서 보는 것이 취미 아닌 취미가 되었으니 이 어찌 '매니아'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한 끄적이는 자가 가진 취미를 누릴 수 있게 몇몇 온라인 서점에서 책 한 세트를 사면 그 작가가 쓴 다른 한 세트가 같이 따라온다든지, 상 권을 사면 하 권이 따라온다든지, 그것도 아니면 한 권을 사면 전혀 관계 없는 다른 책 한 권이 따라오는 이벤트를 하고 있는게 아닌가.

  그 덕분에 저번 '安經'에서 소개한대로 아주 재미있게 읽은 『나는 살인한다』를 얻은 계기가 된 『눈은 진실을 알고 있다』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 작품 작가도 아직은 생소한 '조르지오 팔레띠'가 썼고 저번 작품과 달리 책 겉면 디자인도 보통 보는 책 판형보다 약간 작지만 최신 분위기가 흐르는 작품이다.

  이번 작품 역시 반전이 가장 중요한 흥미를 만들어내는 요소이기 때문에 줄거리 부분은 아주 아주 간략하게만 넘어가는 것이 옳겠다. 배경은 저번 작품과 다르게 두 곳에서 일어나는데 주사건이 일어나는 배경은 뉴욕이고, 부사건이 일어난 배경은 로마이다. 멀리 떨어져서 크게 본다면 현직 뉴욕 시장 형을 둔 전직 뉴욕 경찰인 주인공이 조카가 괴상한 모습으로 살해당하자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뛰어들고, 애인을 잃고 시력을 잃어 조카의 각막을 이식받고 과거의 일들을 보게 된 미모의 로마 경찰반장과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이다.

  괴상한 모습으로 살해당하는 일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저번 작품과 비슷한 예고 살인을 소재로 삼았다. 다만 그 괴상한 모습이 다들 한번쯤은 봤을만한 만화 '스누피'에 나오는 인물들 모습이라는 것이 가장 크게 봐야할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만약 제목을 짓는 감각이 아주 떨어지거나 예전 7,80년 영화 제목처럼 제목을 짓는다면 '스누피 살인사건'이라고 붙여졌지 않을까...

  사건 전개에 있어서는 작품 시작에 나오는 도입부분이 결국 결말 부분과 이어지는 영화 같은 구성을 사용했으며, 주연으로 등장한 주인공도 주인공이지만 조연으로 나오는 인물들 역시 예사롭지가 않으며 작품 속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위치에서 활동한다는 점은 다시 한 번 작가의 능력에 감탄사를 보낼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또한 애뜻한 로맨스 분위기를 사건 외부로 깔아놓아서 독자 흥미를 이끌어내는데 이 역시 반전 아닌 반전으로 끝까지 독자를 잡고선 놓아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이번 작품에도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살인범 사형수의 각막을 이식받고 나서 그 살인범이 살인을 저지를 광경을 보게 되었다든지, 살인범 사형수의 손을 이식받고 나서 그 살인범처럼 자기도 모르게 손만 살인을 저지르려 한다든지, 살인범 사형수의 심장을 이식받고 나서 그 살인범처럼 자신이 변했다는 그런 약간 식상한 소재를 끌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이러한 것에 너무 치중되지 않은채 적절한 수준으로 사건을 전개했다는 점에서 또 한 번 빠져들 수 없는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작품 속에 나오는 사람들이 모두 하나 같이 원인은 다르지만 치유되기 힘든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어떻게 풀어가느냐를 지켜보는 것도 또다른 흥미로 작용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한 면에서 여자지만 남자인 여자와 여자인 여자를 보는 주인공 감정 변화와 남자인 남자와 여자인 여자를 보는 여자지만 남자인 여자의 감정 변화는 단순히 사건 해결에만 치중된 줄거리에 양념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보이지 않는 끈에 대해서 아직 이 끄적이는 자는 그리 오래 세상에 있어왔던 것도 아니고, 경험 또한 미숙한지라 그것에 대해 끄적이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어차피 보이지 않는 끈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나랑 똑같은 '장님'이 아닐까?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지나쳐버릴 수 있는 사물들, 광경들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매우 소중한 인연의 끈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것이 서로가 서로의 진정한 모습을 알아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하찮게 넘어가버린 것은 없는지 반성해본다.

  눈은 많은 것을 볼 수 있게도 해주지만,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불리듯이 많은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직도 '인연의 끈'이 보이지 않는다면 조만간 '각막 이식수술'이라도 받아야하는걸까? 그것이 옳다면 이 끄적이는 자가 제일 먼저 받아야 할 것 같다.

 - 끄적이는 자, 우비(woobi@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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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 - 전2권 세트
앨런 폴섬 지음, 이창식 옮김 / 넥서스BOOKS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일기예보로는 주말에 비가 온다고 그러더니 이를 비웃기라도 하는듯 오랜만에 햇빛을 쬘 수 있는 날이었다. 계속 우울한 잿빛 하늘만 바라보다가 이렇게 잠깐이나마 쨍쨍한 햇살을 맞아보는 것은 행운이 아닐까나.

 이 끄적이는 자는 '매니아' 기질이 너무나 강한 나머지, 책을 고를 때도 좋아하는 작가가 쓴 작품부터 먼저 보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딱 그 작가만 쓴 책만 보는 것은 아니고, 특별히 보는 것에 대해서는 가리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선택을 하다가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는 경우'가 정말 스무 작품 중에 한 번꼴로 어쩌다 한번씩 생기기도 한다.

 너무나 읽고 싶어서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여러 서점을 뒤지고 다녔던 『모레』를 쓴 작가 '앨런 폴섬'이 수 년간 집필했다는 세 번째 소설 『추방』을 읽고서 난 발등이 아파오는 것을 느껴버렸다. 그래도 정말 대작이라고 불릴만한 『모레』를 쓰고서는 이번에는 '수 년간' 집필을 했다는 작품인데 아쉬움이 너무 크게 다가왔다.

 간단한 줄거리 소개를 앞서서 아쉬움을 느끼게 한 몇 가지 부분을 이야기 하자면,

 첫째, 현실성을 유도하려고 한 나머지 현실과 너무나 멀리 떨어져버린 점.
 주인공이 근무하는 LAPD 특별기동대도 좋고, 옛 스페츠나쯔로 이뤄진 러시아 황실 친위대 FSO도 좋은데 주인공으로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다 '슈퍼맨'이고 그렇게 특출난 사람들이 신분을 바꿔도 남들한테 들키지 않는다는 점은 이야기를 너무 비현실적으로 몰고 가버렸다. 그리고 신분을 바꿔서 생활하면서 그런 큰 사건에 뛰어들 수 있는 자신감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걸까나...

 둘째, 사건 전개가 급속도로 진행되다가 끝부분에서 양파 껍질 벗겨지듯 밝혀지는 출생과 신분의 비밀들.
 이 끄적이는 자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외국에서 산 적이 없을 뿐더러 한국 드라마에 너무 오래동안 노출된 나머지 이러한 소재는 바로 거부 반응을 일으켜버렸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는 이러한 소재가 통할지도 모르겠다만 한국 사람으로 봤을 ‹š는 너무나 진부한 소재를 쓴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셋째, 사건 전개에 있어서 너무나 질질 끌어서 늘어지다가 후반부에 갑자기 마무리를 지으려고 한 흔적들.
 『추방』 책 분량은 모두 2권으로 되어 있다. 『모레』가 3권으로 양이 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사건 전개에 있어서 적절한 속도로 늘어졌다 빨라졌다를 조절하여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했으나, 이번 작품은 그 속도를 조절하지 못하고 전반부에서 세밀하게 전개한 이야기들이 후반부에는 어이없는 결말로 끝을 맺고 만다.

 넷째, 주연들에 비해서 비중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나온다는 점.
 주연을 돕는 조연들이 없으면 이야기가 시들해질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조연들이 너무 많이 나와버리면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버리는 경우'가 발생해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다시 돌아와 간략한 줄거리 소개를 한다면 양육원에서 양부모에게 입양된 후 양부모가 살해되어 남매 중 여동생이 충격으로 정신적으로 보호가 필요하고 남매 중 오빠는 그런 동생을 보호하기 위하여 원래 꿈을 접고 LAPD 경찰이 되었는데, 팀 내부에서 생긴 이상한 일로 인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낀 주인공에게 살인을 너무나 쉽게 저지르는 사내가 나타나게 된다. 이 사내를 쫓아다니다 결국 팀은 좋지 않게 해체되고 자신도 죽은 자로서 신분을 숨겨 유럽으로 건너가서 동생을 치료하려고 한다.

 그런데 팀이 해체되면서 같이 죽은 줄 알았던 살인범이 아직 살아있으며 미국에서는 자신이 팀 해체 원인이라며 이를 갈고 있는 동료 경찰들이 자신을 노린다는 사실을 알게된 주인공에게 러시아 황실 싸움이 얽어지게 되고, 이 황실 싸움 주인공이 바로 자신이 쫓아다니던 살인범이라는 사실과 그가 자기 여동생을 사랑하고 결혼하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은 이를 막으려는 노력을 하게 되는데...

 비록 책을 전부 다 읽고 나면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는 결론을 얻을 수도 있지만, 단순히 그러한 결론을 주기 위해서 이런 '슈퍼맨'들을 앞세울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한 주제에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고 한 욕심이 이렇게 받아들이게 한건 아닐까 생각을 하게 된다.

 로맨스도 약간, 스릴러도 약간, 액션도 약간, 추리도 약간씩 섞다보니 시선이 한 곳으로 집중되지 못하고 분산되어 버려서 흥미를 떨어뜨릴 뿐더러 이야기에 몰입시키기 위해서 그러한 장치를 꾸몄겠지만 정작 몰입도를 떨어뜨린 결과를 낳게 된 것이 아닐까?

 過猶不及(과유불급)이는 말이 다른 어떤 감흥보다 먼저 떠오르게 한 작품이었다.

 당장 내일부터 이 끄적이는 자가 신분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꿔버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새로운 사람이 되어 나타난다면 과연 제대로 살 수 있을까? 이제까지 알고 지냈던 사람들, 나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하루 아침에 어떻게 되어버리는걸까? 그래도 한 가지 명백한 사실은 이 끄적이는 자에게는 바꿀 신분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이 아닐까...

- 끄적이는 자, 우비(woobi@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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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인한다 1
조르지오 팔레띠 지음, 이승수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자유롭게 읽고 싶은 책들을 읽을 시간이 왔건만 어찌된 영문인지 이번 방학에는 거창하게 이름 붙이자면 '독서활동'이라고 불리는 것을 작년에 비해서 너무나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그 와중에도 뭔가 읽을거리가 없나 두리번대는 것은 여전하지만 말이다.

  학기 중에도 한 번 책 한 세트를 사면 다른 한 세트를 주는 것을 발견하고는 계획 없는 '충동구매'를 했었는데(아직 박스 개봉만 했지 겉 비닐포장도 벗기지 못했다...), 이번에도 그러한 정보를 입수하고서는 요즘 쓰는 말로 '질러' 버리고 말았다.

  이번 작품 제목은 『나는 살인한다』이고, 작가는 처음 들어본 '조르지오 팔레띠'라는 사람이다. 원래 이 책을 사려고 한 것이 아니라 한 세트를 사서 딸려온 친절하게도 책 옆면에 '증정'이라고 도장까지 찍힌 책이다. 근간에 출간된 책보다 이 작품이 먼저 나온 책이라 당연히 먼저 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겉표지를 펼쳤다.

  원래 이 끄적이는 자는 장르 구분 없이 읽는 사람인지라 특별히 장르에 대해서는 아는 바도 없을 뿐더러 특별히 알려고도 하지 않아서 이야기하기 매우 힘드나, 책 겉표지 위에 끼워진 팻말에 있는 글을 인용하자면 '유럽판 스릴러'라고 한다.

  따라서 이번 安經에서는 이 작품을 읽어볼 분들을 위해서 책 줄거리 부분은 거의 설명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든 소설이든 특히 시간의 흐름이라던가 사건의 전개가 빠르게 진행되는 작품일수록 줄거리를 알게 되면 그 흥미진진함이 반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거의 사라진다. 이 끄적이는 자는 그 흥미진진함을 마음껏 즐겼는데, 다른 분들의 흥미진진함을 뺏어버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면 스스로 어떻게 죄송함을 짊어지고 가겠는가. 그로 인하여 고통받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래도 간략하게나마 책 뒷면 겉표지에 적혀있는 정도로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몸에도 상처가 남아있고, 마음에도 상처가 남아있는 FBI 형사가 우정으로 엉겁결에 모나코 왕국에서 일어나는 얼굴 가죽을 벗겨가는 엽기적인 살인사건에 뛰어들게 되고, 이 살인사건이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아주 고도의 지능을 가진 연쇄살인범에 의해서 예고 살인이라는 것을 알게되면서 이 범인을 꼭 잡아내고야 말겠다는 신념으로 상처 뿐인 몸을 현장으로 던지는 이야기다.책에 적힌 것보다 너무 내용을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원래 이 끄적이는 자는 책을 잡으면 식음을 전폐하고 그 책에만 몰두해서 반나절이면 장편소설이라고 불리는 책들을 다 읽어버리는 이상한 독서법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데 이번 작품을 읽은 환경이 환경인지라, 그렇게 하지 못해서 작품 속에 완전히 빠져들지 못한 것이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라고 할까나...

  우선 너무나 깨끗하고 정확하게 계획된 살인 수법이 인상적이었지만, 그것보다 그러한 살인 수법을 글로서 표현하였지만 눈 앞에 생생하게 이미지로 만들어내게 했다는 작가 능력이 더 인상 깊었다. 또한 엽기적인 살인 사건에만 시선을 돌려놓고서는 그 속에 숨어있었던 또 다른 사건을 말하고자 했던 부분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너무 문장이 길어지거나 흐름이 늘어짐 없이 적절한 속도의 사건 전개는 충분히 독자를 매혹시킬만 한 것 같다.

  이미 고전으로 널리 알려진 『지킬박사와 하이드씨』를 접한 독자라면 이 작품에 약간 진부한 소재가 쓰여진게 아닐까 생각할 것이고 흥미가 조금 반감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러한 소재를 가지고서도 진부함 없이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어낸 작가 능력에 더욱 감탄을 보낼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끄적이는 사람을 포함한 대부분 사람들은 선택해야만 하는 갈래에 서면 자신도 모르게 평상시에는 볼 수 없었던 숨어있던 자신들을 만나게 된다. 설마 아직 그런 경험이 없다면 서둘러 가까운 정신과 상담을 받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내 속에 두 개 이상의 자아가 있다는 사실을 느끼곤 하는데 만약 특별한 상황에 놓여져 있다면 과연 '나'이지만 '나'도 아닌 그 존재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옛말도 있듯이, 오래 전부터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 마음을 알고자 하는 욕구는 지금까지도 식을 줄 모르는 용암처럼 우리 핏 속에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심리학'이라는 학문이 아직까지 역사의 뒤안길에서 사라지지 않고 현실 속에서 꾸준히 사람들 곁에 따라온 것은 아닐까?

  '나'도 몰랐던 새로운 '나'를 아는 것, 전혀 알 수 없는 '남' 속에 있는 또 다른 '남'에 의해서 생기는 사건들을 풀어간다는 것이 과연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두렵지만 그러한 숨어있던 자아들을 조금씩 찾고자 하는 호기심에 대한 열망은 그 공포를 누그러뜨리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 거울이 주위에 있다면 한 번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자. 과연 지금 이 거울에 맺힌 모습이 과연 '나'인지, 아니면 또 다른 '나'인지... 당신은 알아볼 수 있는가?

 - 끄적이는 자, 우비(woobi@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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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동물 공동묘지 - 하 밀리언셀러 클럽 34
스티븐 킹 지음, 황유선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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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끄적이는 자는 비를 부르고 다니는건지 옮겨다니는 곳마다 비가 쏟아진다. 그것도 그냥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도저히 밖으로 나갈 수 없게끔 쏟아졌다. 비가 중간에 사그라드는 느낌이 들어서 나갈 채비를 하자면 엄청난 기세로 또 쏟아붓는다. 결국 오전 내내 집에서 비에 발이 묶이고 말았고 정말 사그라들었다는 느낌이 들어서 우산 쓰고 오후에는 밖으로 나갔으나 목적지에 도착할 때쯤 다시 그 기세를 올리려고 한다는 느낌이 든 건 왜일까?

  어쨌든 무사히 잘 도착해서 오랜만에 학교 건물을 들어오니, 침수 피해를 입은게 아닌가. 설마 설마하며 실험실로 올라가니 다행히 우려하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관심있는 분들은 알겠지만 이 끄적이는 자가 있는 곳이 비가 좀 왔다하면 어떤 모습이 되는지 보신 분들도 계실 것이다. 게다가 학교 전체 정전이라 암흑과 정적 속에서 해야할 일을 마치고 다시 실험실에 올라오니 시간이 참으로 애매했다.

  그냥 다시 돌아가자니 어차피 다시 저녁쯤 나와서 해야할 일을 하고 가야할 것이고, 그 때도 만약 지금처럼 비가 온다면 왔다 갔다 옷 젖고 귀찮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어 결국 저녁시간까지 남기로 하였다. 그 때까지 해야할 일로는 지난 겨울 방학에 사놓고 읽지 못한 채 처박혀 있던 책을 읽는 것으로 정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책을 읽어보게 된 것이다. 물론 그 전에도 책을 전혀 읽지 않은 것은 아니나 이 끄적이는 자 스스로 책을 읽고자 해서 읽은 책들은 아니었으니 그건 책을 읽은게 아니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오랜만에 '스티븐 킹'이 쓴 작품을 읽을 수 있었다. 한창 출간되었을 때 사서 그 때 읽는 기분과 지금에 와서야 읽는 기분이 같을까 비교할 수는 없지만 호기심은 약간 줄어든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도시에 살던 주인공 가족은 한적하고 경치도 좋은, 단 한가지 흠이라면 수 해 전부터 그 곳을 가로 지르는 고속도로가 생겼고 하루에 한 번씩 빠른 속도로 그 길로 엄청나게 큰 트럭이 지나가는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주인공은 의사이고, 자신을 사랑하는 마누라와 귀여운 딸, 이제 말을 배워가는 막내 아들로 구성된 가족은 처음에는 새로운 곳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지만 곧 너무나 편안한 그 곳 분위기에 이끌려 어울리게 된다.

  그리고 집 뒤에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서 마을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을 도로 건너에 살던 노부부 중 노인에 의해 알게 되고 거기서 '애완동물 공동묘지'라는 곳을 보게 된다.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도로에서 죽은 애완동물을 아이들이 불쌍히 여겨서 여기에 묻어서 죽음을 기린다는 곳이었다.

  주인공이 이사오고 난 후 처음 근무한 날 머리가 깨져 죽어버린 대학생을 보게 되고 죽어가면서 자기 이름을 부르며 뭔가 메시지를 남기고 그 날 저녁 그 대학생이 꿈에 나타나서 주인공을 괴롭힌다. 그냥 꿈인 줄 알았으나 아침에 일어나보니 발에는 진흙이 팔에는 소나무 가지에 찔린 상처들이 남아있는 것을 보고는 의심을 하나 곧 몽유병이려니 하고 넘어가게 된다.

  주인공을 제외한 가족들은 전부 장인, 장모댁에 간 추수감사절에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가 죽은 것 같다는 노인이 건 전화를 받은 주인공. 거기까지 나가면서 부정에 부정을 거듭하였으나 막상 현실은 이미 죽은 시체 뿐이었다. 노부부 중 할아버지는 그 고양이가 딸이 무척 아끼는 고양이이고 주인공은 딸을 무척 아끼니 '애완동물 공동묘지'에 묻어주자고 하고선 주인공을 이끌고 묻었다.

  다음 날 밤, 주인공 앞에 나타난 죽은 줄만 알았던 고양이. 분명 자신이 담아간 녹색 쓰레기 봉투 조각이 수염에 걸린 고양이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다만 어딘가 이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동시에 썩은 냄새를 풍기면서 말이다. 이러한 비밀은 주인공과 그 노인만 무덤까지 들고가자며 서로 더 이상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애완동물이 죽어가던 그 고속도로에 자신이 보는 눈 앞에서 사랑스런 막내 아들을 구하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잃고만 주인공. 처음에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가장으로서 가족들을 위하려고 노력하나 결국 자신도 나약한 사람일 뿐. 결국 부정을 하다 못해 말도 안 되는 꿈까지 아들을 묻기 전날 꾸는 너무나 평범한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다.

  노인과 약속까지 어기면서 결국 주인공은 아들을 묘지에서 파내서 '애완동물 공동묘지'에 묻기로 결정한다. 딸이 이상한 느낌을 받고서는 마누라도 막으려고 오고 노인도 막으려고 노력했으나 뭔가 보이지 않는 힘에 주인공이 하는 것을 막지 못하고 결국 주인공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뤘으나...

  삶과 죽음은 한 직선 위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절대로 만나지 않은 평행선에서 서로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스스로 죽음을 거부할 수는 없지만 죽은 것을 산 것이 있는 곳에 계속 있을 수 있게 하는 능력이 있다면 과연 그것을 써야할까? 정말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계속 자기 옆에 둘 수 있다면 아무리 부작용이 크다고 해도 감수해가며 그것을 선택할 것인가?

  이번 '스티븐 킹' 작품인 『애완동물 공동묘지』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게끔 하는 주제를 가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비록 소재는 '죽음'과 '죽었으나 죽지 않은 그것'으로 인한 공포를 이끌었지만 말이다.

  끄적이는 자는 삶과 죽음은 한 직선 위에 있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직선이 어쩌면 '뫼비우스 띠' 위에 그어져 있음이 아닐까라고 추측해본다. 분명 한 직선 위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지만 그냥 멀리서 관망해서는 한 번에 그것이 한 직선이라고 보기 힘든 '뫼비우스 띠' 말이다.

  누군가 그것을 바꾸려고 자르거나 붙이거나 한 번 더 꼬아버리기라도 한다면 그 결과는 처음과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미 건드려버린 '뫼비우스 띠'는 다시 원래 모습을 갖출 수 없다는 것.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이 항상 자신 옆에서 계속 사랑을 주고 받으면서 살고자 하는 욕심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대상이 더 이상 예전 그대로 모습이 아니라면 과연 그 욕심은 계속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아무리 소박한 욕심도 그 욕심이 현실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1%라도 있어야 그것을 가지고 있을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東西古今(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죽은 자에 대한 존경과 그 휴식을 위해서 산 자들이 노력하는 모습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은 죽음 그 자체에도 그것을 지켜야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며, 이번 큰 비로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너무 짧은 생을 살다간 남매의 넋을 기리며 이만 줄이고자 한다. 저 세상에서는 부디 편안히 지내길...

 - 끄적이는 자, 우비(woobi@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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