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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 랩소디 - 2014년 제10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재민 지음 / 나무옆의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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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소설의 무게에 비해 문체가 너무 떨어지기 때문에

별 두 개로 만족.

이야기라고 해서 다 소설이 되는 건 아니다.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게 해 주는 소설이 있는가 하면

문장을 이렇게 쓰면 안 된다는 걸 알려주는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은 후자이다.

내용의 진중함을 문체가 받쳐주지 못해서 분위기가 따로 논다.

문장의 가벼움은 작가의 의도라기보다는 아직 소설내공이 부족한

탓에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정신분석도 너무 따분하다.

너무 도식적이고, 공황장애 치료도 허술하다. 몇 번의 상담으로

내적갈등이 해소되어 치료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신분석 상담 자체가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가족치료는 최장 10년이 소요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소설을 완주하지 못했다. 3분의 2정도, 정신분석을 하는

도중에 접었다. 너무 지루하고, 계속 하품이 나고, 졸려서.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은 기대되지 않는다. 통과.

 

-그런데 이 소설이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라니. 어지간히 작품이 없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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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로들의 집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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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 읽고 나서 느낀 점을 한 마디로 하자면?

 제목처럼, 싱겁다. 밋밋하다. 그래도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기성 작가인만큼 안정적인 문체와 구성은 흠잡을 데 없다.

 그런데 문체가 내용의 무게를 받쳐주지 못한다. 너무 스피디하게 읽혀 하루 만에

 다 읽었다. 빨리 읽히니까 좋은 게 아니냐고? 천만에. 장편소설이 빠르게 읽힌다는 건

 뭔가 문제가 있다고 여겨진다. 음미할 행간이 없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아쉬움이 크다.

 소재는 더없이 멋진데 말이다. 도시 난민을 그린다니......진중한 문체로

 좀 더 묵직하게 밀고 나갔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상하게 읽으면 내용은 무거운데, 가벼운 느낌이 드는 소설들이 있다.

 최근 읽은 장편들이 그랬다. <살고 싶다>, <보헤미안 랩소디>.

 두 작품 다 형편없는 문체로 써진 작품이라, 문체가 내용을 담보하지 못했다.

 그냥 이야기가 된다고 해서 소설인 것은 아니다, 라는 걸 이 책으면 알게 된다.

 공황장애가 상담 한 번 받으면 내적 갈등이 다 풀려 치료된다고? 내용 뿐 아니라 문장

 의 무게가 너무 가볍다. 그런데 내용은 무겁다. 불협화음으로 삐걱거리는 소설이다.

 <살고 싶다>는 한 달 전에 읽어는데 무슨 내용인지 기억이 아예 나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하다

 군대에서의 자살 문제를 다룬 소설이었던 것만 설핏 기억났다. 흠.

 작가들이, 장편을 쓸 때 문체가 얼마나 절대적으로 중요한 지 알았으면 좋겠다.

 <피에로들의 집>도 마음에 썩 들진 않았지만, 앞의 두 작품이 워낙 제값을 못해서

 그나마 상대적으로 후광효과를 받았다. 그래서 별 세개.

 

2. 이 작품의 배경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다.

  내가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을 가져왔기 때문에 좀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도시의 삭막함, 소외, 고독의 이미지를 이 화가보다 잘 표현한 사람이 있었던가.

  1882년에 태어나 1967년 5월 15일 뉴욕에서 사망.

 

3. 윤대녕의 최고 작품은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가 아닐까 싶다.

  내가 윤대녕에 반한 것도 이 소설 때문이었다. 그 기대감으로 <피에로들의 집>을

  읽었는데....... 상처 입은 자들이 모인 곳 '아몬드나무 하우스'. 그런데 뭔가 그들의 상처가 깊이

   와닿지 않는다. 너무 스피디하게 전개되고, 구성이 매끄럽게 연결되어 있어 내 내면에

   스며들기 전에 빠르게 증발해버렸다.

   감동이든지, 충격의 파문이든지, 무엇이든지 남겨야 할 게 아닌가 말이다.

   다만, '난희'라는 전 여자친구와의 통화 부분에서 좀 가슴이 뭉클하고 아팠다.

 

4. 주인공은 난희에 대해 얼마만큼의 죄의식을 가지고 있을까. 자신이 난희를

  대중영화 쪽으로 옮기도록 부추긴 만큼 마음의 짐이 상당하리라 여겨진다.

  이상하게 이 부분이 난 제일 공감이 되었다. 난 난희가 어떻게 살아갈지 무척

  궁금하다. 난희 부분을 떼어내서 소설을 한 편 써보고 싶어질 정도이다. 

 

5. 박윤정과의 아슬아슬한 로맨스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6. 장점을 한 가지 더 말하면 마마의 존재가 소설의 전체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캐릭터적인 측면에서 개셩이 있었다고 판단된다.

   누군가는 마마라는 인물 설정이 '작위적'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 정도의 작위는

  소설 속에서 충분히 허용가능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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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4
존 스타인벡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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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 존 스타인벡

 

-1939년에 발표된 소설. →발표 당시 43만부 판매

-미국의 대공황 시기에 농촌에 살던 농민들이 자기들의 땅에서 쫒겨나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며 떠도는 고통스런 삶을 그린 소설.(오클라호마→캘리포니아)

-1933년부터 3여년간 미국중부에 불어닥친 한발과 모래폭풍은 역사적 사실.

-작가는 존 스타인벡

존스타인 벡, 이라고 읽힌다. 그는 사회파 소설을 쓴 작가였다.

-1~30장.

조드 가족의 이야기(짝수) : 2장. 4장. 6장. 8장. 10장. 13장. 16장. 18장. 20장. 22장. 24 장. 26장. 28장. 30장.)

(전체 분위기 삽입(홀수) : 1장. 3장. 5장. 7장. 9장. 11장. 12장. 14장. 15장. 17장. 19장. 21장. 23장. 25장. 27장. 29장.)

-1962년 노벨문학상 수상 (‘분노의 포도’가 수상에 큰 역할을 했다.)

-어머니가 가족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마지막에 딸 로저샨이 굶고 있는 남자에게 젖을 주는 장면)

-소설 마지막 장면 이후 전개될 내용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톰 조드는 투사가 될 것인가. 조드의 가족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로저샨은 좀 더 성숙한 여인으로 변화했을까. 그리고 언제나 나는 등장인물들 중에서 사소한 역할을 맡은 인물들의 미래를 궁금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엔 노아와 토니가 그랬다. 장남 노아는 가족과 헤어져 숲 속으로 걸어간다. 그는 산 사나이가 되어 자연과 함께 살아갈 것인가. 토니는 어떤 욕망으로 그들을 버리고 떠났을까. 로저샨을 버리고. 그는 또 다른 여자를 만나 배부르게 살 수 있을 것인가. 죄를 지어 목랄한 것인가.

 

1장. 소설의 첫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오클라호마 시골의 붉은색 땅과 회색 땅에 마지막 비가 부드럽게 내렸다. 이미 상처 입은 땅이 빗줄기에 다시 베이지 않은 만큼. 빗줄기가 개울을 이루어 흘러갔던 흔적 위로 쟁기들이 오락가락했다.‘

마지막 비가 내린 뒤의 장면.(소설 마지막에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장면과 대비)

소설은 풍경묘사부터 시작한다. 모래 폭풍이 시골 전역을 뒤덮어버리는 분위기를 통해 앞으로 비극적인 이야기가 시작될 것임을 보여준다.

톰 조드가 감옥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의 대화를 통해 그는 악당처럼 묘사된다.) 그는 히치하이킹으로 트럭에 올라타 집으로 향한다. 그는 길에서 거북을 발견한다. 가족에게 줄 선물로 거북을 옷에 둘둘 말아 옆구리에 끼고 걷는다. 여기서 왜 거북이 나온 것인가. 생명력? 집으로 향하는 도중에 어느 버드나무 아래에서 짐 케이시라는 한 때 목사였던 남자를 만난다. 그는 아주 말이 많지만 이제 목사가 아니다. 그의 입을 빌어, 기독교를 비판한다. 그와 함께 톰 조드는 집으로 돌아오지만 더 이상 예전의 집이 아니다. “세상에! 이리로 지옥이 터져 나왔나.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 톰이 소리친다. 집은 한쪽이 짓이겨져 있고, 울타리는 사라져 버렸다. 톰은 자신의 귀향을 받긴 가족들에게서 자초지종을 듣는다. 트랙터(자본가)가 모든 걸 파괴해 쫒겨날 위기에 처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감옥에서 형량을 마치고 안식을 위해 집에 왔건만 기다리고 있는 건 무너진 집, 그리고 뿔뿔이 흩어진 주위 사람들 뿐이었다. 가족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큰 아버지 존, 장남인 노아. 동생 앨, 사위 토니, 딸 로저샨, 아이들 루티와 윈필드. (3대의 가족)

이제 그들은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여기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국의 꿈을 향해 서부로 떠난 참이었다. 이들에게 선택은 없었다. 그들은 개조한 낡은 트럭에 가재도구를 싣고 길을 떠난다. 일자리를 찾아 캘리포니아로.

소설은 이제 캘리포니아로 떠나는 여정을 보여준다.

맨 먼저 죽음을 맞이하는 건 할아버지이다.(13장) 그는 대지와 연결되어 있었고, 평생 살아온 땅과 분리되자 급격히 생명력을 잃은 것이다. 그들은 애도를 하고 할아버지를 땅에 묻어준다.

두 번째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은 할머니이다.(18장) 힘든 여정을 견디지 못하고 기운이 쇠락해져 숨을 거둔 것이다.

그러는 동안 큰 형 노아(18장)와 사위 토니(20장)는 그들과 헤어진다. 노아는 톰에게 말한 뒤 혼자 살아가갔다고 하고 가족을 떠나간다. 아무도 내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어. 나는 혼자 사는 게 맞아.

토니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로저샨은 남편을 기다리지만 끝내 그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은 마침내 캘리포니아에 도착한다.

아름다운 풍광이 눈에 펼쳐진다. 사물은 언제나 멀리서 보면 아름답고, 가까이에서 보면 추악하다.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는 아름답다. 개개인의 삶은 그렇지 못하다. 캘리포니아의 풍경 또한 그랬다. 비옥한 땅과 아름다운 풍광은 그들의 것이 아니었다. 모두 주인이 있었고, 주인은 대지주나 은행이었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다. ‘보이지 않는 손’인 것이다.

광고 전단에서 본 꿈은 물거품이 되고, 그들은 마찬가지고 힘겨운 노동 착취에 시달린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수록 경쟁이 심해져 임금은 적어지고, 그게 바로 지주들이 노리는 것이었다. 만약 시위를 하거나, 선동하면 ‘빨갱이’로 몰아 체포했다. 지주들은 힘 없는 사람들이 하나로 뭉치는 건 두려워했다. 하나로 뭉치면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마침내 가족들은 인간적인 보살핌과 자유롭게 운영되는 자치 천막촌을 발견하고 거기서 생활하게 된다. 자유로운 개인이 서로 간의 힘으로 규율을 만들어 지켜나간다는 것. 조드 가족은 이곳에서 인간적인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결국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그들은 곧 그곳을 떠난다.

다시 여정이 시작된다.

어느 밭에 도착해 그들은 작업을 시작한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무기를 든 경찰들이 여기저기 포진해 있었고, 사람들의 인상은 험악했다. 톰 조드는 며칠 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몰래 여기저기 염탐을 해 본다. 노조가 있음을 알아차린다. 그런데 그 노조의 우두머리는 짐 케이시였다. 저번에 문제를 일으켰다고 자진해서 경찰에 붙들려 갔던 그였다. 둘은 우연히 조우하고, 톰 조드는 짐 케이시의 말을 들으며 상황을 대충 파악한다.

“힘을 합쳐야 해. 안 그러면 그들은 다시 임금을 깎을 거야.”

하지만 짐 케이시는 톰이 보는 앞에서 곡괭이 자루에 맞아 숨지고, 분노한 톰은 그 자리에서 상대방을 죽인다. 두 번째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톰은 가족과 헤어져 근처 밭에서 숨어 지낸다. 톰 조드는 나중에 짐 케이시의 말을 되새기고 투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비가 오기 시작한다.

비가 오면서 모든 게 떠내려가고, 조드 가족은 다시 이동할 준비를 한다.

임신한 로저샨의 배가 점점 불러온 가운데 이제는 애가 나오려고 한다.

하지만 유산이 된다. 나온 아기는 죽은 아기인 것이었다.

톰 조드는 어머니에게 말한다. “난 짐 캐이시가 간 길을 갈 거야.”

트럭으로 이동하던 중에 외딴 헛간을 발견하고 그곳에 비를 피하려 몸을 숨긴다.

그런데 그 안에는 이미 한 아버지와 아이가 건초더미에 누워 있었다. 아이가 말한다.

“저희 아버지가 죽어가고 있어요.”

굶어 죽어가는 사나이.

“우유가 필요해요.”

어머니와 로저샨이 눈빛을 교환한다.

그녀는 가슴을 남자에게 내밀어 자신의 젖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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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
조 R. 랜스데일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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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표지 디자인에 이끌려 구입한 책이다.

책의 첫인상이라 함은 바로 표지를 두고 하는 말일 게다. 이 책은 내 시선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매끈한 재질의 표지와 눈길을 사로잡는 디자인.

첫인상이 결정되면 그 사람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래서 책을 읽었다. 대만족이었다.

제목은 <밑바닥>.

사전을 보면, 여러 가지 정의가 나와 있다.

어떤 것의 바닥 또는 아래가 되는 부분.

어떤 현상이나 사건의 바탕에 깔린 근본적인 것을 비유하는 말

아무 것도 없는 것 혹은 최하층을 이르는 말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처음에는 제목이 뜻하는 바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읽기 전에는

하층민의 삶? 정도를 보여주는 것이라 여겼지만 그것보다 심오한 뜻이 있었다.

우리 인간의 본성을 일컫는 말이었다. 인간 내면의 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것, 본성 같은 것들

말이다. 따라서, 1930년대 시대상과 결합하여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밑바닥이란 제목이 적절하다고  여겨진다.

소설은 13세 해리라는 주인공이 여동생 톰과 함께 우연히 숲속에서 흑인 시체를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이어지는 내용은 일반 추리소설과는 다르다. 미스터리 스릴러처럼

긴박하게 펼쳐지는, 범인은 향해 진행되는 이야기 구조가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서 추리소설이라 할 수 없다. 바로 그 점이 이 소설이 다른 소설과의 차별점이고, 빛나는 점이다.

1930년대, 구체적으로 1933년의 시대상을 아주 자세히 묘사하는 일상성에 이 소설의 강점이 있다.

따라서 이 소설은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중간 즈음에 위치해 있는 것 같다. 책 뒷 표지에 새겨진 찬사들 가운데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말들이 죄다 있었다.

 흑인으로 대표하는 인종차별을 둘러싼 시대적 정황이 아주 감칠맛나게 표현되어 있어서, 그 시대가 훤히 들여다보였으며,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악한지, 우리가 얼마나 편견 속에서 살아가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상식이라는 것은 투쟁으로 얻어야 하는 것이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그 시대에 흑인을 차별하는 건 시대적 공기로써 당연한 것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100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절인데 말이다. 인종차별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우리는 동남아시아 인들을

차별하고 있는 것이다. 그건 거의 무의식적이라 할 만한 우월감으로 포장되어 있는데, 역사적 현상의 결과물이다. 우리 인간은 역사적인 동물이다. 

이 소설의 반전적 요소는 나에겐 큰 의미는 없었다. 물론 범인이 밝혀지고 나서는 조금 의아하고

놀랍기는 했지만, 소설의 흐름에서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었다. 실제로 반전이 제시되는 부분은

그렇게  극적이지도 않았다. 염소 인간이라는 신화적인 요소도 소설을 조금 더 흥미롭게 만드는

 부분인 것 같다. 숲 속은 언제나 미지의 영역이다.

다 읽고 나서 뭔가 부족한, 아쉬운 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정말 별 다섯 개짜리 최고의 작품이라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노인이 되어 회고하는 1인칭 형식으로 쓰여진 가운데, 중간중간 노인의 현재 시점으로

과거를 음미하는 부분이 느슨하게 느껴지고, 문장들 가운데 좀 더 압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을 내가 삭제해 보았다.

부족한 부분 말고 이번에는 정말 좋은 부분.

바로 마지막에 압축적으로 제시된 결말 부분.

연쇄살인을 두고 벌어지는, 1933년을 도려내 보여주는 전체 분량에서 1% 도 되지 않는

2페이지 압축부분. 이 결말 덕분에 소설의 깊이가 더해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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