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
조 R. 랜스데일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표지 디자인에 이끌려 구입한 책이다.

책의 첫인상이라 함은 바로 표지를 두고 하는 말일 게다. 이 책은 내 시선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매끈한 재질의 표지와 눈길을 사로잡는 디자인.

첫인상이 결정되면 그 사람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래서 책을 읽었다. 대만족이었다.

제목은 <밑바닥>.

사전을 보면, 여러 가지 정의가 나와 있다.

어떤 것의 바닥 또는 아래가 되는 부분.

어떤 현상이나 사건의 바탕에 깔린 근본적인 것을 비유하는 말

아무 것도 없는 것 혹은 최하층을 이르는 말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처음에는 제목이 뜻하는 바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읽기 전에는

하층민의 삶? 정도를 보여주는 것이라 여겼지만 그것보다 심오한 뜻이 있었다.

우리 인간의 본성을 일컫는 말이었다. 인간 내면의 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것, 본성 같은 것들

말이다. 따라서, 1930년대 시대상과 결합하여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밑바닥이란 제목이 적절하다고  여겨진다.

소설은 13세 해리라는 주인공이 여동생 톰과 함께 우연히 숲속에서 흑인 시체를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이어지는 내용은 일반 추리소설과는 다르다. 미스터리 스릴러처럼

긴박하게 펼쳐지는, 범인은 향해 진행되는 이야기 구조가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서 추리소설이라 할 수 없다. 바로 그 점이 이 소설이 다른 소설과의 차별점이고, 빛나는 점이다.

1930년대, 구체적으로 1933년의 시대상을 아주 자세히 묘사하는 일상성에 이 소설의 강점이 있다.

따라서 이 소설은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중간 즈음에 위치해 있는 것 같다. 책 뒷 표지에 새겨진 찬사들 가운데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말들이 죄다 있었다.

 흑인으로 대표하는 인종차별을 둘러싼 시대적 정황이 아주 감칠맛나게 표현되어 있어서, 그 시대가 훤히 들여다보였으며,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악한지, 우리가 얼마나 편견 속에서 살아가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상식이라는 것은 투쟁으로 얻어야 하는 것이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그 시대에 흑인을 차별하는 건 시대적 공기로써 당연한 것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100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절인데 말이다. 인종차별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우리는 동남아시아 인들을

차별하고 있는 것이다. 그건 거의 무의식적이라 할 만한 우월감으로 포장되어 있는데, 역사적 현상의 결과물이다. 우리 인간은 역사적인 동물이다. 

이 소설의 반전적 요소는 나에겐 큰 의미는 없었다. 물론 범인이 밝혀지고 나서는 조금 의아하고

놀랍기는 했지만, 소설의 흐름에서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었다. 실제로 반전이 제시되는 부분은

그렇게  극적이지도 않았다. 염소 인간이라는 신화적인 요소도 소설을 조금 더 흥미롭게 만드는

 부분인 것 같다. 숲 속은 언제나 미지의 영역이다.

다 읽고 나서 뭔가 부족한, 아쉬운 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정말 별 다섯 개짜리 최고의 작품이라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노인이 되어 회고하는 1인칭 형식으로 쓰여진 가운데, 중간중간 노인의 현재 시점으로

과거를 음미하는 부분이 느슨하게 느껴지고, 문장들 가운데 좀 더 압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을 내가 삭제해 보았다.

부족한 부분 말고 이번에는 정말 좋은 부분.

바로 마지막에 압축적으로 제시된 결말 부분.

연쇄살인을 두고 벌어지는, 1933년을 도려내 보여주는 전체 분량에서 1% 도 되지 않는

2페이지 압축부분. 이 결말 덕분에 소설의 깊이가 더해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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