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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랜지션, 베이비
토리 피터스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25년 4월
평점 :

솔직히 말하자면, 527쪽에 달하는 이 책을 아직 끝까지 완독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읽은 부분에서 받은 감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처음 이 책을 소개하는 글을 접했을 때는, 도입부의 인상적인 문장들과 다뤄지는 사건들이 굉장히 흥미롭게 느껴져 서평에 도전하게 되었다. 하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니, 익숙하지 않은 용어나 개념들이 자주 등장했고, 생각할 거리도 많아 읽는 속도가 자연스레 더뎌졌다.
우선 인물 설정이 무척 인상 깊었다. 리즈, 에임스, 카트리나라는 세 인물은 각각 트랜스젠더, 디트랜지션(환원), 시스젠더로 설정되어 있다. 이 단어들이 처음엔 낯설고 어렵게 느껴졌고, 솔직히 말해 혼란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책 곳곳에 간단한 설명이 덧붙여져 있어, 생경한 개념들을 조금씩 이해해갈 수 있었다. 만약 그런 장치가 없었다면, 독서 자체가 더욱 힘들었을 것 같다.
이 작품은 가족, 사랑, 관계에 대한 고정관념을 자연스럽게 흔들어 놓는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부부’, ‘결혼’, ‘가족’이라는 제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나 스스로는 이 주제들에 대해 다소 보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나에게도 이 책은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모든 내용에 공감하거나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작가가 각 인물의 내면과 고통, 사회적 편견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은 확실히 느껴졌다. 인물 하나하나가 단순한 허구가 아닌, 여러 사람의 삶이 응축된 집합처럼 느껴졌던 점이 특히 인상 깊었다. 보통은 한 명의 인물이 하나의 삶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품 속 인물들은 여러 겹의 생을 담고 있는 듯했다.
한 가지 궁금했던 점은 대사의 일부가 볼드체로 처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형식이 어떤 의도를 담고 있는지 명확하게 이해되진 않았지만, 감정의 강도나 인물의 내면을 강조하는 역할로 받아들여졌다. 다소 생소하긴 했으나 독서에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평소에도 인물의 내면을 깊이 있게 그리는 소설을 좋아하는데, 이 작품 역시 그러한 점에서 큰 만족을 주었다. 인물들이 느끼는 기쁨, 슬픔, 분노 등이 진솔하고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어 몰입감을 높였고, 이야기의 개연성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 주었다. 외국 작품 특유의 문화나 배경이 다소 낯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생생했기에 오히려 거리감보다는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이 소설은 충분히 흥미롭고, 곳곳에서 탄식이 나올 만큼 강렬한 장면들이 많았다. 누군가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면, 가족, 젠더, 정체성, 그리고 성 역할에 대해 고민해보고 싶은 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다만 작품 속에 빈번히 등장하는 비속어와 성적인 장면들로 인해, 청소년들에게는 권하지 않는다. 성인이 된 후 읽기를 권장한다. 중등 교사의 입장이다보니 어쩔 수 없이 우리 아이들이 읽기에도 좋은지를 항상 짚어보게 된다.(물론 청소년 대상 소설이 아닌 것을 알고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내가 이전에는 잘 알지 못했던 개념들과 문화를 마주할 수 있게 해주었다. 성별과 가족, 관계에 대한 내 시야를 조금 넓혀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태도와 존중의 자세만으로도 사회는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이 책은 그러한 변화를 위한 좋은 시발점이 되어줄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이 글을 마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