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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빛 ㅣ 매드 픽션 클럽
미우라 시온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폭력으로 상처 입은 자는 폭력으로밖에 회복할 수 없다.”
- 본문 263P 중에서 -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다른 사람들을 때리고, 학대하고, 살인하는 등 육체적으로 가해지는 폭력뿐만 아니라, 이웃을 시기하고, 증오하며, 무관심하게 대하는 정신적인 폭력 또한 우리들 일상에서 무수하게 행해지고 있다. 나 또한 이러한 폭력의 가해자 이면서 피해자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자각하지 못한다. 정신적으로 행해지는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말이다. 자각하지 못하는 폭력은 더 이상 폭력이 아닐지도 모른다. 일상이 되어버린 폭력. 그 속에서 우리들은 여전히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가 되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행해지는 폭력의 피해자가 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검은 빛> 이 책은 시작부터 가공할 만한 위력을 뽐내는 자연적 폭력을 행사하며 책을 읽는 독자들을 위협한다. 평화로운 섬마을을 쓰나미라는 자연적 폭력을 앞세워 하루아침에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고, 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거의 대부분의 목숨을 빼앗아 간다. 자연의 폭력에서 기적처럼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세상은 그리 만만한 곳은 아니었다. 살아남은 사람들 앞에는 또 다른 폭력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살인, 협박, 위협, 폭행, 학대, 외도, 무관심, 야망 등등.. 육체적인 폭력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폭력이 이 책 곳곳에서 먹잇감을 노리는 뱀처럼 도사리고 있다. 그러한 폭력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서슴없이 행하는 간사하고, 잔혹한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에서 어쩌면 현재의 우리들의 모습이 반추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죄의 유무나 언동의 선악에 관계없이 폭력은 반드시 들이닥친다.
그것에 대항할 수단은 폭력밖에 없다.
도덕, 법률, 종교, 그런 것에 구원받기를 바라는 것은 단순한 바보다.
진정한 의미에서 비틀리고 고통당한 경험이 없거나,
어지간히 둔하거나, 용기가 없거나, 상식에 길들어 포기했거나
그중 하나일 것이다.”
- 본문 263P 중에서 -
법보다 가까운 것이 주먹이라 말한다. 폭력에 대항하기 위해 우리들은 폭력으로 맞선다. 과연 그것이 옳은 일일까? 어쩌면 옳은 일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 <검은 빛> 책 안에 있는 등장인물들 에게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래서는 아니 된다. 폭력에 대한 대항 수단으로 도덕, 법률, 종교, 그런 것들로 부터 구원을 받아야 하며, 우리들은 그런 것들을 믿는 단순한 바보가 되어야 한다. 또한 단순한 바보들이 정말로 보호 받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한다. 영악한 뱀의 머리를 갖고 있는 자들 보단 단순한 바보가 이 세상엔 더욱 절실하게 필요하다.
“폭력은 다가오는 게 아니라 돌아오는 것이다.
스스로를 만들어 낸 장소.... 일상 속으로.”
- 본문 359P 중에서 -
‘현재 일본에서 인간을 묘사하는 능력이 가장 뛰어난 젊은 작가’로 불리 우는 미우라 시온. 인간 내면에 감춰진 잔인하고 어두운 ‘폭력’이라는 속성을 대담하며 군더더기 없는 필체로 묘사함으로써 이 <검은 빛>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폭력의 진정한 공포를 안겨 주고 있다는 점이 그렇게 평가될 만하다고 생각되어 진다. 이 책이 처음 접한 그녀의 작품이기에 그녀의 또 다른 작품들이 궁금하다. 새로운 작가의 발견은 나에게는 언제나 행운이다. 이번을 계기로 해서 그녀의 다른 작품들 속으로 푹 빠져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