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부재를 크게 느끼지 못했던 저자가 본인의 자녀를 만나, 가져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사랑을 주어야 했을 때, 어찌해야 할 지 몰라 마치 면허없이 비행기를 운전하려 하는 조종사 같은 심정이었다는 글에서 마음이 참 안쓰럽고 애달프게 느껴졌다.
정도의 차이는 크겠지만, 누구나 성장과정에서 느낀 결핍을 자신의 자녀에게 만큼은 느끼게 하고싶지 않다는 심정으로 양육하지 않을까. 저자는 그런 결핍을 채우려는 심정으로 더 아빠의 존재 역할에 대해 파고들지 않았을까 싶다.
남 보기엔 평범을 웃도는 교육적이고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한 나 역시도 맞벌이 부모님이 미처 다 채워주지 못한 아주 작은 결핍이 내 안에 있었다. 그래서 어쩌면 그 것을 채우고자 헬리콥터맘과 같은 양육 패턴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청소년기에 이해하고 바라봐주는 친구같은 다정한 엄마가 없었다는 것, 두 분은 늘 승진과 업무로 바쁘셨다는 불평과 원망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최근에서야 아이가 청소년기로 접어들고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기다 보니, 비로소 부모님의 입장을 헤아려 보게 된다. 그 분들 역시 충분히 받지 못해, 전하는 것에도 서툴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이 글을 읽고보니, 유아기에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기억 속에 조차 아버지의 존재를 가져보지 못한 친정 아빠(아버지의 시대와 가깝지만 우리 남매에게 '아빠'로서 다정하게 존재해주신)의 어려움이 크게 와닿았다. 본인은 가져보지 못했지만, 주고자 부단히 노력했던 무면허 조종사의 아픔이 느껴졌다. 그저 어린시절의 큰 상실을 본인의 자녀에게는 넉넉히 채워주고 싶어 그렇게 더욱 가정적이고 헌신적인 아빠의 역할을 감당하시지 않았을까.
친정 엄마는 9남매 중의 첫째도 막내도 아닌 중간, 딸로서도 첫째나 막내가 아니고, 성격도 유난스럽거나 유별난것 없이 묵묵히 공부 잘하고 말썽이 없어 그래서 더 믿음직해 눈길이 안갔을 딸. 그래서 성장기에 넘치도록 받아도 부족한 관심과 사랑이 많이 부족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 어린 중학생 때부터 서울로 학교를 다니게 되어 부모님 품을 떠나 결혼한 오빠집에서 얹혀 살았고, 명문 고등학교, 교대까지 부모의 잔 손길이 가지않게 잘 성장한 딸로서는 본인 시대보다 모든 환경이 잘 갖춰지고 수월함에도 나약한 자녀가 이해 가지 않으셨을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상담을 하다보면 상담자가 의도하지 않아도 내담자 스스로가 어린 시절의 기억속, 눈물의 자리를 찾아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 자리'가 그의 삶에 중요한 부분이고, 그 사람의 아픔과 상처에 절절히 엮여 있는 부분이라고 한다. 그래서 회복과 치유를 위해서는 그 자리를 찾아 들여다보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상담학에서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상처를 관계 회복과 문제 해결의 실마리로 보는 것이다.
유년 시절의 중요성에 대해 부모로서 생각해 볼 중요한 부분은 또 있다. 바로 한 사람이 삶의 '도구'를 가지게 되는 과정이다.
유년 시절에 부모로부터 받은 반응과 상호 작용에 따라 저마다 다른 생존 도구를 가지게 된다고 한다. 이 도구는 무의식적으로 툭툭 튀어나와 주변인을 대하고 자녀를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처럼 유년 시절 양육자나 주변인으로 부터 받은 이미지인 '표상'은 살아가며 맺는 인간관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결혼을 하게되면 배우자와의 관계에 표상을 사용하여 상대에 반응하게 되고, 또 자녀를 낳고서는 아이를 아이 그대로 보아지지 않고, 어린 시절의 나를 '투사'하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에게 긍정적 표상을 제시해주어야 한다. 내가 배고프고 불편할 때 바로 달려와주는 엄마라는 사람이 곁에서 나를 보호해주고 돌봐준다는 것, 약속을 반드시 지켜주는 것, 언제나 같은 기준으로 대해주는 것, 아이의 말과 행동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사랑해주는 것 등이 아이로 하여금 긍정적 표상을 만들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