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반성문
조영진 지음 / 세이코리아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빠는 바둑으로 치면 다섯 점 정도는 지고 들어가는 것이다

이 표현은 저자가 엄마에 비해 아빠는 생물학적으로도 발달심리학적으로도 친밀감이 덜 할수밖에 없고, 또 남성성과 여성성의 차이로 아이와의 관계가 쉽지 않음을 바둑에 비유해 재미있게 표현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진짜 아빠들은 그러할까? 멀리 두고 볼 필요없이 남편만 보아도 그렇다. 아이가 커 감에 따라 엄마인 내가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아이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이따금씩 아이와 부딪히는 걸로 봐서 많은 가정이 그러할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는 생각보다 매우 빨리 자라난다. 아빠는 그 순간순간의 변화를 감지하는 주양육자와는 달라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순간, 아이의 욕구나 필요, 관심사를 알아채고 반응해주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아빠가 아이와의 관계에 있어 좀 더 예민하고 전략적으로 대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책은 한 상담학 박사이자 상담사인 저자가 상담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고, 구시대의 아버지 상이 아닌 이 시대의 자녀들에게 맞는 '아빠'로서의 삶이 어떠한 것인지 제시하고 있다.

나는 충분히 받지 못했지만, 자녀에게는 넘치게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이 아닐까 한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아버지는 사실은 내게 그렇게 막연한 상상속의 인물이 되어 존재하고 있었다. 문제는, 상상 속의 아버지를 통해서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어떻게 아이를 사랑하고 훈육하고 자신의 존재를 통해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소중히 만들어갈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건 지식으로 배울 것이 아니었다. 그건 삶으로, 경험으로, 때론 야단맞아 절망하고, 때론 조그마한 선물 하나에 기뻐 팔짝팔짝 뛰는 시간들을 통해서 배워야 할 것들이었다.

p22

아빠가 삶의 과정에 존재하지 않았던, 그래서 애당초 아빠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아빠라는 역할을 기대하지 않고 살았던, 그때는 아무것도 몰라 정말 아무렇지 않았던 나의 숨은 상처가, 이 반성문을 쓰는 지금에야 살짝 나를 아프게 한다.

p63

아버지의 부재를 크게 느끼지 못했던 저자가 본인의 자녀를 만나, 가져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사랑을 주어야 했을 때, 어찌해야 할 지 몰라 마치 면허없이 비행기를 운전하려 하는 조종사 같은 심정이었다는 글에서 마음이 참 안쓰럽고 애달프게 느껴졌다.

정도의 차이는 크겠지만, 누구나 성장과정에서 느낀 결핍을 자신의 자녀에게 만큼은 느끼게 하고싶지 않다는 심정으로 양육하지 않을까. 저자는 그런 결핍을 채우려는 심정으로 더 아빠의 존재 역할에 대해 파고들지 않았을까 싶다.

남 보기엔 평범을 웃도는 교육적이고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한 나 역시도 맞벌이 부모님이 미처 다 채워주지 못한 아주 작은 결핍이 내 안에 있었다. 그래서 어쩌면 그 것을 채우고자 헬리콥터맘과 같은 양육 패턴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청소년기에 이해하고 바라봐주는 친구같은 다정한 엄마가 없었다는 것, 두 분은 늘 승진과 업무로 바쁘셨다는 불평과 원망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최근에서야 아이가 청소년기로 접어들고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기다 보니, 비로소 부모님의 입장을 헤아려 보게 된다. 그 분들 역시 충분히 받지 못해, 전하는 것에도 서툴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이 글을 읽고보니, 유아기에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기억 속에 조차 아버지의 존재를 가져보지 못한 친정 아빠(아버지의 시대와 가깝지만 우리 남매에게 '아빠'로서 다정하게 존재해주신)의 어려움이 크게 와닿았다. 본인은 가져보지 못했지만, 주고자 부단히 노력했던 무면허 조종사의 아픔이 느껴졌다. 그저 어린시절의 큰 상실을 본인의 자녀에게는 넉넉히 채워주고 싶어 그렇게 더욱 가정적이고 헌신적인 아빠의 역할을 감당하시지 않았을까.

친정 엄마는 9남매 중의 첫째도 막내도 아닌 중간, 딸로서도 첫째나 막내가 아니고, 성격도 유난스럽거나 유별난것 없이 묵묵히 공부 잘하고 말썽이 없어 그래서 더 믿음직해 눈길이 안갔을 딸. 그래서 성장기에 넘치도록 받아도 부족한 관심과 사랑이 많이 부족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 어린 중학생 때부터 서울로 학교를 다니게 되어 부모님 품을 떠나 결혼한 오빠집에서 얹혀 살았고, 명문 고등학교, 교대까지 부모의 잔 손길이 가지않게 잘 성장한 딸로서는 본인 시대보다 모든 환경이 잘 갖춰지고 수월함에도 나약한 자녀가 이해 가지 않으셨을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상담을 하다보면 상담자가 의도하지 않아도 내담자 스스로가 어린 시절의 기억속, 눈물의 자리를 찾아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 자리'가 그의 삶에 중요한 부분이고, 그 사람의 아픔과 상처에 절절히 엮여 있는 부분이라고 한다. 그래서 회복과 치유를 위해서는 그 자리를 찾아 들여다보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상담학에서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상처를 관계 회복과 문제 해결의 실마리로 보는 것이다.

유년 시절의 중요성에 대해 부모로서 생각해 볼 중요한 부분은 또 있다. 바로 한 사람이 삶의 '도구'를 가지게 되는 과정이다.

유년 시절에 부모로부터 받은 반응과 상호 작용에 따라 저마다 다른 생존 도구를 가지게 된다고 한다. 이 도구는 무의식적으로 툭툭 튀어나와 주변인을 대하고 자녀를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처럼 유년 시절 양육자나 주변인으로 부터 받은 이미지인 '표상'은 살아가며 맺는 인간관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결혼을 하게되면 배우자와의 관계에 표상을 사용하여 상대에 반응하게 되고, 또 자녀를 낳고서는 아이를 아이 그대로 보아지지 않고, 어린 시절의 나를 '투사'하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에게 긍정적 표상을 제시해주어야 한다. 내가 배고프고 불편할 때 바로 달려와주는 엄마라는 사람이 곁에서 나를 보호해주고 돌봐준다는 것, 약속을 반드시 지켜주는 것, 언제나 같은 기준으로 대해주는 것, 아이의 말과 행동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사랑해주는 것 등이 아이로 하여금 긍정적 표상을 만들어 준다.

이러한 긍정적 표상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긍정하고 의미 있게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해도 그것 때문에 나 자신에 대한 긍정성이 손상되지 않는다.

p103

나를 포함한 많은 엄마들이 자존감을 키우려 노력하는데, 그 자존감의 첫 단추가 바로 생애 처음 곁에서 반응해주는 '양육자'로 부터 만들어지는 긍정적 표상이라고 이해된다.

아이가 어릴 적, 고집을 부리거나 안되는 요구를 할 때, 남편은 어쩔 줄 모르고 원칙을 들이대며 혼내고 가르치려 들었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글 속의 저자도 초보 아빠 시절에는 이와 비슷하여, 많은 아빠들이 그러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이다운 투정을 나무라고, 당연한 산만함을 지적하고, 차차 알아도 될 정의를 가르치려 들며 소중하고 귀한 시간에 행복감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깨달음. 첫 아이여서, 바르게 키워야 할 것 같은 사명감에 많은 부모들이 시행 착오를 겪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삶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부모들이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을 아이들은 사실 '부모의 삶'을 보며 스스로 배운다. 그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많은 시간을 함께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빠는 무언가를 가르치는 존재가 아니라 언제나 든든하게 '함께 해주는' 존재여야 한다. 그 존재 자체가 아이에게 가르침이 되고, 따라야 할 모델이 되고, 힘써 지켜야 할 삶의 가치관이 되고,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 겪는 수없이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아갈 수 있는 길이자 빛이 된다. 사람은 가르쳐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삶을 멋지게 보여주는 어떤 존재로 인해 성장하는 것이다. 그 가장 근접한 대상이 바로 아빠다.

p59

마지막으로, 영향을 받은 삶과 내가 영향을 줄 삶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우리 삶을 선택하지 못한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삶의 모든 것이 나를 짓누르게 두어서는 안 된다. 우리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이 다 내 책임은 아니다. 그건 그냥 내게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p41

우리는 성장기 유년 시절, 가정이 주고, 환경이 주고, 때로는 부모가 주기도 하는 삶의 부침을 고스란히 받을 수 밖에 없다.

이 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책 속의 말이 누군가에게는 큰 위로가 될 것 같다. 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의 삶에 대해서 특히 아빠, 부모의 삶에 대해서는 내가 선택하여야 하는 것이다. 몰랐다거나 내가 이만큼 받아서 이럴 수밖에 없다고 나몰라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기엔 부모의 역할이 아이에게 너무도 지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아픔을 들여다 보고, 회복하고 성장하여 아이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독서를 작은 취미로 삼아 육아서를 읽고, 삶의 경험이 늘어나고 아이가 성장할수록 부모님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도 달라짐을 느낀다. 달라진 관점은 이해와 포용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책 속의 지혜는 아이를 대하는 나의 생각에 힘을 실어 영향력을 주기도 하고, 불필요한 무게를 덜어주기도 한다.

이러한 작지 않은 울림을 주는 [아빠 반성문]같은 육아서를 만날 때면, 나의 자리와 역할에 내가 올바로 세워져 있는지 점검하게 되는 소중한 기회를 얻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