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로 읽는 영국 역사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3
나카노 교코 지음, 조사연 옮김 / 한경arte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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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70214일을 재위한 군주,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한 국왕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아흔여덟의 나이로 서거했습니다. 왕위는 그녀의 아들인 찰스 3세가 이어받았는데요. 다음 왕위는 아마도 그의 장남인 윌리엄 왕자가 이어받겠지요? 영국 역사는 잘 모를지라도 영국 왕실에서 일어나는 일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는 합니다. 왜 그럴까요? 아직 왕이 존재한다는 이유 때문일까요?

 

영국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왕은 누구인가요? 우리에게 익숙한 엘리자베스 2세가 아닐까요? 꿈오리에겐 표지그림 속 주인공이자 영국은 여왕의 시대에 번영한다는 생각을 자리 잡게 만든 엘리자베스 1, 그리고 블러드 메리로 불리는 메리 1세 여왕 또한 인상적인 왕으로 남아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로 조금 더 관심이 생긴 영국의 역사 <명화로 읽는 영국 역사>를 통해 조금 더 깊이 들여다봅니다. , 우리가 영국이라고 부르는 명칭은 아시아 일부 국가에서만 사용하는 단어라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정식 명칭은 무엇일까요? 바로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줄여서 UK)라고 합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명화를 통해 영국 왕조의 역사를 소개하는 책입니다. 명화를 통해 유럽 왕조의 역사를 소개하는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시리즈 세 번째 책으로, “영국 왕실의 세 왕조, 잉글랜드 혈통의 튜더가, 스코틀랜드 혈통의 스튜어트가, 독일 혈통의 하노버가와 하노버에서 이름을 바꾼 왕가의 이야기를, 각각의 명화 속에 감추어진 역사이야기를 통해 들려줍니다. 역대 왕들과 왕가의 이야기는 때론 너무 복잡해서 어렵기도 하고 헷갈리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푹 빠져들어 읽게 되는 건 왜일까요?

 

 


영국 왕실은 언제 시작되었을까요? "여러 주장이 있기는 하지만 런던탑의 기초를 닦은 윌리엄 1세가 즉위한 1066년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윌리엄 1세 이후에 왕 한 명이 국내를 통치하는 방식이 쭉 이어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꿈오리에게 가장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세 명의 여왕 중 메리 1세와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튜더가를 대표하는 여왕들입니다. 그녀들은 어떻게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었을까요?

 

튜더 왕조를 일으킨 헨리 7세가 죽자 그의 아들인 헨리 8세가 왕으로 즉위하지만, 왕비 캐서린이 사산과 유산을 거듭한 끝에 딸 메리 한 명만 살아남게 됩니다. 하지만 헨리 8세는 튜더 왕조 성립 과정에 정통성이 결여되었다는 콤플렉스 때문인지 왕자에 집착하게 되는데요. 이때 등장하는 인물이 앤 불린입니다.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과 재혼하려고 종교개혁까지 한 헨리 8, 하지만 앤 불린도 아들을 낳지 못해 죽임을 당합니다. 왕자에 집착한 헨리 8세는 무려 여섯 명의 왕비를 두었다고 하니 정통성에 대한 콤플렉스가 정말 대단했었구나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헨리 8세가 죽자 아홉 살 소년인 에드워드 6세가 등극했습니다. 에드워드 6세는 마크 트웨인의 아동문학 <왕자와 거지>의 모델이 된 왕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소년왕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하며, 소년왕이 죽자 다음 계승 순위는 메리(첫째 왕비 캐서린의 딸), 엘리자베스(둘째 왕비 앤의 딸), 제인 그레이(헨리 8세 여동생의 손녀이자 헨리 7세의 증손)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일파는 제인 그레이를 여왕으로 옹립하려 했지만, 영국 최초의 여왕은 결국 서른아홉 살의 메리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왕관을 쓰자마자 반역자를 처형했으며. 비록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는 했지만 제인 그레이 사형명령서에 서명을 했으며, 영국 국교회를 해산하고, 프로테스탄트 탄압을 단행하며 단기간에 300명을 화형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이 일로 '블러드 메리'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그녀는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한 번은 상상 임신, 또 한 번은 임신이 아닌 악성 종양으로 밝혀짐), 튜더가를 단절시키지 않기 위해 엘리자베스를 후계자로 지명하고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그녀의 남편인 펠리페는 장례식에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니, 그녀의 결혼생활은 불행했다고 해야 할까요?

 


정통성에 대한 콤플렉스로 왕자에 집착했던 헨리 8, 첫 번째 왕비인 캐서린과 이혼하려고 종교개혁까지 단행했지만, 두 번째 왕비인 앤 불린 또한 아들을 낳지 못했고, 결국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1세라는 걸출한 인물을 낳았습니다. 만약 앤 불린이 아들을 낳았더라면 영국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궁금해집니다.

 

'영국은 여왕의 시대에 번영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게 만든 여왕' 바로 엘리자베스 1세입니다. 어머니 앤 불린이 아버지 헨리 8세에 의해 처형당한 후 서출로 격하되었지만, 아버지의 여섯 번째 왕비의 배려로 왕녀 지위를 되찾게 됩니다. 하지만 이복 언니 메리 여왕으로부터 반역 의심을 받아 런던탑에 갇히기도 했지만, 스물다섯 살에 영국 역사에 길이 남을 여왕이 됩니다.

 

표지에 등장하는 작품은 궁정 화가 아이작 올리버의 <엘리자베스 1세 무지개 초상>이라는 작품인데요. 초상화 제작 당시 엘리자베스의 나이가 일흔에 가까웠음에도 주름 하나 없이 젊게 표현한 것은 왜일까요? 저자는 이 그림은 "초상화라기보다 프로파간다 일환으로서 이콘(예배용 성화)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나는 영국과 결혼했다."는 엘리자베스,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아버지인 헨리 8세가 집착하던 튜더가를 자신의 대에서 단절시키고야 마는데요. 엘리자베스의 마지막 유언은 "메리 스튜어트의 외아들 제임스를 영국 왕으로 삼는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117년의 튜더 왕조는 끝이 나고 스튜어트 왕조가 시작됩니다.

 

 

 

 

 


1차 세계대전 중 윈저(국민들의 독일을 향한 증오가 외래 왕조인 작센코부르크고타가로 향하기 시작하고, 현재 왕비인 메리뿐만 아니라 역대 왕비를 독일에서 데려온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었기에 조지 5세는 작센코부르크고타를 버리고 '윈저'를 사용한다고 발표) 라고 이름을 바꾸기는 했지만, 하노버가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기에 미국인 심프슨 부인과의 '왕관을 건 사랑을 위해' 남동생에게 왕위를 양보한 에드워드 8, 엘리자베스 2, 찰스 3, 다이애나, 윌리엄, 캐서린, 헨리 등등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노버가와 스튜어트가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는 직접 책을 통해 만나길 바랍니다!

 

 

꿈오리 한줄평 : 튜더 왕조 헨리 7세부터 하노버 왕조(윈저 왕조) 찰스 3세까지 영국 왕실의 변천과 영국 역사를 명화와 함께 풀어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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