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불편한 용서
스베냐 플라스푈러 지음, 장혜경 옮김 / 나무생각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푸른색을 배경으로 한 여인이 누군가와 마주 앉아 있습니다. 앞에 앉아 있는 누군가를 외면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불편해 보이는 건 제목이 주는 힘 때문일까요?

'조금 불편한 용서'는 어린 딸들을 남겨두고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난 엄마를 원망하던 딸이 쓴 용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일수록 오히려 배신감과 분노가 더 클 수도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딸의 입장이라면 엄마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열네 살 때 자신과 동생들을 새아버지에게 남겨두고 세 번째 남편이 될 사람과 함께 떠난 엄마, 어쩌다 가족 모임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엄마를 원망하던 딸은 엄마가 벌을 받기를 바랐고, 자신 대신에 신이 엄마에게 복수해 주면 좋겠다는 소망을 늘 마음에 품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임신을 했을 때 딸은 자신의 모습에서 엄마를 느낍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 안에서 울리는 엄마의 목소리를 느꼈지요. 자신은 절대 엄마처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면서도 혹시 나도 엄마와 비슷한 행동을 하지는 않을까 하며 불안해 하기도 했습니다. 딸은 굳이 '용서'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기원이었던 엄마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만이 용서다.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침묵한다. 용서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가해자의 동기를 이해하고 자신이 그 입장이어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라고 확신할 때 하는 용서는 용서가 아니라고 데리다는 말한다. 어떤 행위를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순간부터 그 행위는 용서의 대상이 아니라 화해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p. 21~22“

 

'조금 불편한 용서'는 용서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는 조언 대신 세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첫째, 용서는 이해한다는 뜻일까? 둘째, 용서는 사랑한다는 뜻일까? 셋째, 용서는 망각한다는 뜻일까?

그리고 총기 사건으로 딸을 잃은 피해자인 엄마의 입장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죽인 가해자인 남자의 입장에서,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와 관련한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에서 용서란 무엇인가 생각해 보게 합니다.

“"목사님은 제 잘못을 깨우쳐주시며 제가 죄를 인정하고 참회하기 때문에 신께서 저를 용서하셨다고 말씀하셨죠."

.

.

나는 자제하여 그 문제는 덮어두고, 신이 그를 용서했다면 그도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지 물었다.

"아니오."

노인이 대답했다.

p. 131“

 

신이 용서했다면,

가해자가 참회했다면, 용서받을 수 있는 걸까요?

영화 '밀양'에서 자신의 아들을 죽인 범인을 용서해 주려고 감옥을 찾아간 엄마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범인의 말을 듣고 분노하고 말죠. 정말 엄마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범인을 용서할 마음이 있었던 걸까요? 하나님을 만나 죄를 용서받고 마음이 편안해 졌다는 범인은 정말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참회를 한 걸까요? 설사 그랬다고 하더라도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범인은 스스로 자신을 용서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용서는 피해자가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600만 명의 유대인 학살에 공동 책임이 있는 독일 나치 친위대 아이히만은 단지 정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논리로 자신을 변호했습니다. 어떤 상황이었던 아이히만은 스스로 다른 행동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만으로 그는 자신의 죄에 대한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걸까요? 더 나아가 그 당시의 모든 독일인들도 똑같이 유대인 학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걸까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독일인들은 또 어떨까요?

“"이런 범죄와 그 범죄의 희생자들을 잊지 않을 책임이 우리 독일인들에게 있으니까."

"홀로코스트는 독일의 정체성이니까."

"우리 역사를 알아야 우리 자신을 알 수 있으니까."

.

.

우리 딸은 당연히 600만 유대인의 학살에 책임이 없다. 하지만 그 아이 역시 독일인이기에 그들을 기억해야 할 책임이 있지 않을까?

p. 200“

딸을 죽인 살인범을 용서할 수 있을까요?

자신이 사랑하던 여인을 죽인 남자는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독일인들은 용서받을 수 있는 걸까요?

단지 가해자가 참회했다고 해서 용서받을 수 있는 걸까요? 용서의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할까요?

아무리 그래도 뭐가 나쁜 짓이고 뭐가 아닌지는 각자가 결정해요. 그러니까 용서할 수 있는 죄의 한계도 사람마다 다른 거죠.

p. 139“

 

여러분에게 용서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