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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데이 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카트 멘쉬크 그림,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평점 :
버스데이 걸 : 스무살 소녀의 생일날 이야기
얼마 전, TV 여행프로그램에서 '스무살 첫여행' 을 떠난 여자 아이돌들의 이야기를 보았다. 서툴지만 처음 여행 일정을 짜보고, 쑥쓰러워하며 와인바를 가보고, 마지막은 서로의 스무살을 자축하며 눈물지으며 마무리되었다. 보면서 괜히 나도 같이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마도 나의 스무살에 대한 아쉬움과 아련함때문일 것이다.
나의 스무살 생일, 그 날 나는 재수학원에 있었다. 아침 7시 30분까지 등원 그리고 밤 10시 하원. 그게 나의 일상이었다. 당시 재수생인 나는 생일을 기뻐하기엔 오히려 부끄러워 다음 해로 즐거움을 미뤘다.
<버스데이 걸>의 스무살 생일 역시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주인공은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누구의 축하도 받지 못한채 하루가 끝나간다. 그러던 중, 갑자기 건강했던 매니저가 고통으로 병원을 가며 평범했던 일상의 흐름이 뒤바뀐다. 주인공은 아픈 매니저 대신 레스토랑의 사장에게 저녁식사를 배달한다. 그렇게 노인과 소녀가 마주한다.
*"생일 축하하네" 노인은 말했다.
"아가씨, 자네의 인생이 보람 있는 풍성한 것이 되기를. 어떤 것도 거기에 어두운 그림자를 떨구는 일이 없기를." (P.34)
매일 저녁 똑같은 시간에 언제나 치킨요리를 먹는 노인에게도, 그 날은 일상적인 날이 아니었다. 매니저가 아픈 일도 처음이고, 그로 인해 자신의 가게의 직원인 주인공을 처음 보게 된다.
나이를 물으며 오늘이 소녀의 스무살 생일임을 알게 된 노인은 와인한잔과 함께 소녀에게 이루고 싶은 소원 한 가지를 묻는다. 소원을 듣고는 자신이 이루어주겠다며 마치 마법사라도 된 마냥 나름의 의식도 치루어준다. 생일에 대한 아쉬움이 뜻밖의 인물에게서 채워졌다.
*노인의 주름이 아주 조금 깊어졌다.“아,그게 그러니까 자네의 소원이라는 말인가?” (p.45)
책은 여자의 소원이 무엇이었는지 끝까지 말해주지 않는다. 어떤 소원이길래 노인이 의아해하며 놀랬을까. 갑자기 미인이나 부자가 되는 것은 감당이 안될 것 같다는 주인공의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이제 책의 화자는 주인공의 남편으로 바뀐다. 스무살이었던 소녀는 시간이 흘러 결혼을 하고, 두 아이가 있는 어른이 되었다. 남편은 아내에게 소원이 정확히 무엇인지 추궁하지 않는다. 대신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1. 그 소원이 실제로 이루어졌냐는것.
2. 당신이 그것을 소원으로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는가.
*"인간이란 어떤 것을 원하든, 어디까지 가든, 자신 이외의 존재는 될 수 없는 것이구나, 라는 것. 단지 그것 뿐이야." (P.57)
소원이 이루어졌는지는 확인하려면 시간이 더 흘러야 한다며, 인간은 자신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모호한 대답으로 'Yes or No'를 대신한다.
결국 어떤 시기가 지나간 뒤에야 소원의 달성여부를 알 수 있고 ,그것은 나의 모습을 넘어서지 않는 '나의 존재'라는 말로 나는 해석했다.
단편이라 길지 않아서 그게 대체 어떤 의미인지 곰곰히 생각해보며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책 속에서 어떠한 단서를 찾아야 할지 추리도 해보았지만, 읽을 때마다 생각이 달라졌다.
내가 스무살이었을때, 생일을 말해보라 했다면 아마 "수능대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능대박을 치기엔 부족했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했다. 더 열심히 공부해서 탄탄한 실력을 쌓으면 내 존재가 수능 고득점자로 동일시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열심히 소원을 이루기 위해 살라는 자기계발적 메세지일까?
<버스데이 걸>의 스무살 소녀의 생일날은 그렇게 흘러간다. 책의 뒷부분에 실려있는 후기에서 작가는 일년의 한번뿐인 생일의 특별함을 축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작가는는 하필 "스무살"의 생일 택했을지 또 한번 생각해보았다.
독특한 색감의 일러스트레이트는 책의 미스테리함을 더 극대화한다.
*"아우디의 범퍼에 두 군데 쯤 움푹 찌그러진 데가 있어도?"
"그야 범퍼는 찌그러지기 위해 달려 있는 것이지." (P.55)
노인은 소녀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떨구어지지 않기를 바랬지만, 아마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범퍼가 찌그러지는 것은 찌그러지기 위해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림자가 생기는 것은 빛 아래 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스무살 주인공이 말했던 당시의 생일날 소원이 무엇이었던간에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시간이 흐른 뒤의 일이었다. 어떤 소원이길래 존재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것인지, 지금도 모르는 인생의 흐름을 더더욱 감잡을 수 없었던 그때의 이야기를 담고있는 <버스데이 걸>.
책을 읽은 시간보다 생각하는 시간이 훨씬 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