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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시나리오 기획자의 생각법 - 14년차 기획자가 제시하는 직업 실전과 창작에 관한 조언
이진희 지음 / 들녘 / 2021년 6월
평점 :
* 이 글은 서평 이벤트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필자는 몇 년 전 취미 삼아 ‘RPG Maker MV’라는 툴로 게임을 두 개 만들어본 적이 있다.
스토리 작법서나 게임 제작 서적을 전혀 보지 않고 만들었기에, 스토리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며 힘들게 짜냈고, 그 외 여러 가지로 애를 많이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게 상당히 재밌었다.
스토리, 게임 시스템, 여러 캐릭터와 각종 스킬, 몬스터, 아이템, 맵을 기획하고 적절한 배경음악과 효과음을 선별하는 작업.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조합해서 머릿속의 생각을 화면에 구현 시켜 재미를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
더 이상 게임 만들 시간이 없어서 손 놓은지 오래됐지만 제작 욕구는 남아있는지라, 서평 이벤트에 지원해서 이 책을 받게 되었다.
무료로 받았어도 내 글을 봐주는 소수의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과장 없이 느낀 대로, 내 생각대로 써 보고자 한다.

저자 이진희 작가는 NC소프트에서 <블레이드 앤 소울>의 퀘스트 기획자로 일했으며, 그 외 작은 회사에서 여러 게임 제작에 참여한 바 있다. 현재는 게임 시나리오 컨설팅 회사인 ‘놈게임스토리’를 창업하고 게임 시나리오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다.
이 책은 2018년에 나온 <이론과 실전으로 배우는 게임 시나리오>에 이은 그의 두 번째 책이다.
첫 책은 게임 시나리오 제작에 필요한 이론과 실전 노하우를 다루었다면, 이 책엔 14년간 업계의 경험을 통한 작가의 생각과 조언이 담겨 있다.
1장에선 게임 시나리오에 관해 오해하기 쉬운 10가지를 짚어주며, 2장은 게임 시나리오 작가는 어떤 능력이 필요한지 알려준다. 스토리 창작 능력을 비롯하여 시각화 능력, 문제 해결 능력, 통찰력, 글쓰기 능력 등이 여기에 속한다.
3장은 게임 시나리오 창작에 대한 작가의 생각에 대해 다룬다. 게임은 예술인가, 게임 속 한국인 캐릭터에 대한 생각 등 공감 가는 내용이 많았다.
4장은 게임 시나리오 작가로서 성장하는 방법을 다루었고 5장은 저자가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어떻게 살아왔는지의 여정이 기록되어 있다.
6장은 게임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조언하는 내용이다.
어떤 대학을 가야 하는지, 왜 게임학과가 아닌 다른 학과에 가는 걸 추천하는지, 이 직업의 미래가 어떻게 되는지 등이 나와 있다.
읽으면서 저자의 많은 고민과 노력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여기에는 책 내용 중 일부만 적어보고자 한다.
저자는 한국 게임의 스토리가 빈약하다고 비판받는 이유에 대해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예전엔 싱글게임(패키지게임)이 많이 발매되던 시절이 있었고, 싱글게임은 스토리의 품질이 판매량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여기에 많은 투자를 할 필요가 있었다. 스토리의 완성도가 높았던 싱글게임은 창세기전,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화이트데이 등이 있다.
하지만 그 후로 한국 게임 시장은 온라인 게임이 주를 이루게 되었고, 수익구조가 바뀌게 된다.
온라인 게임은 광고나 캐릭터 판매를 통해 수익을 얻는 구조가 많다. 이때 수익과 직결되는 지표는 ‘잔존률’인데, 잔존률을 높게 유지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은 ‘성장 시스템’을 넣는 것이다.
아쉽게도 온라인 게임에서 스토리는 잔존률을 높이는데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즉 수익에 별로 기여하지 않기 때문에 투자를 안 하게 되어서 완성도와 비중이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저자는 싱글 게임은 ‘작품’으로, 온라인 게임은 ‘서비스’로 본다.
사자와 호랑이가 같은 고양잇과 동물이지만 둘을 따로 생각하는 것처럼,
패키지 게임과 온라인 게임도 구분하여 평가해야만 게임 시나리오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온라인게임에서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성장 시스템을 약화시키고, 그 돈으로 스토리에 몰빵하면, “와~거 참 스토리 쥑이네! 솨라있네~!”란 찬사와 함께 회사 망하는 지름길이 열릴 것 같다.
가뜩이나 자금난에 시달리는 인디게임 회사나 1인 개발자들이 많다 보니, 유저들에게 “당신의 캐릭터를 강하게 성장시키십시요!!”라고 외치면서
정작 그 회사는 강하게 성장하지 못하고 ‘성장 시스템’이라는 산소호흡기를 달고 숨 가쁘게 연명하고 있을까 봐 아찔한 느낌이 든다.
서두에 썼듯이 필자도 아마추어로서 게임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다.
그 후 덕업일치의 일환으로 상업적인 1인 게임 제작자를 해볼까 싶었는데, 굶어죽을까 봐 도전하지 못했다.
아무튼 한국 게임이 시나리오로 비판받는 이유는 이 외에도 저자가 더 언급하는 게 있긴 한데 여기에 다 쓰기엔 글이 너무 길어질 거 같다.
그리고 게임 시나리오 작가는 스토리만 잘 짠다고 다가 아니란 얘기도 기억에 남는다.
예를 들어 소설이나 웹툰 작가는 자신의 뜻대로 비교적 자유롭게 시나리오를 만들 수가 있다.
하지만 게임 제작은 협업이기 때문에 좀 다른 면이 있고, 그에 따른 제한도 존재한다.

우선 시나리오 작가는 게임 개발이 어느 정도 진행된 다음에 고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이미 설정되어 있는 캐릭터, 아이템, 시스템에 맞춰서 맞춤형 시나리오를 짜야 한다는 제한이 있다. 그리고 여러 이유로 인해 배경이나 캐릭터 제작 계획이 취소되는 일이 빈번하고, 그때마다 짜두었던 스토리나 설정을 수정해야 한다.
시계 부속품 중에 하나만 고장 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스토리도 마찬가지다.
모든 걸 잘 짜 맞춰서 좋은 스토리를 만들어놨는데, 캐릭터나 배경 같은 게 취소돼 버리면 그게 관여되어 있던 스토리 부분을 싹 다 수정하고, 전체적으로 어색하지 않게 다시 손봐야 한다. 이게 생각보다 어렵다고 한다.
작가는 머리 싸매고 쥐어짜내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스토리를 다시 맞춰놔야 한다. 그런데 이게 한 번에 안 끝나고 그 후에 또다시 취소되는 캐릭터나 설정 같은 게 생기면 또 머리 싸매고 고쳐놔야 한다.
때로는 발매 연기도 다반사다. 아무튼 밤새 열심히 스토리 구멍을 수습하고 드디어 게임을 발매하면, 유저들이 설정 오류를 발견해서 박제하기도 한다.
온라인게임 스토리가 빈약한 이유는 수익구조적인 문제가 크지만 작가 개인의 역량이 좋다면 조금은 커버가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꿈꿔본다. 스토리가 메마르는 이 시대에 게임 업계에 한줄기 빛이 되어줄 인재는 어디에 있을까.
혹시 여러분 중에 있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론 기억해 둘 만한 것들이 많아서 밑줄도 많이 치고 흥미 있게 읽었다.
14년 차 경력자의 조언이 한 권으로 뭉쳐있기에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