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냉전과 핵전쟁의 위협적 분위기 속에서 적힌 이 책은 인류가 이제까지 알아온 우주 진화의 역사를 밝히고 앞으로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어리석은 전쟁이 불러일으킬 인류의 재앙에 대해 경고하고, 그 재앙을 일으킬 에너지를 생존과 발전의 에너지로 써야 한다는 주장이 책에 그득하다.
그렇기에 자연과학 교양서이지만 그 주제는 오히려 인문학적 통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어찌보면 당연한 말, 단순한 말 같은 책의 주제-바람직한 인류 발전의 길-에 이 책의 분량은 좀 많지 않나 싶지만, 주제로 도달하기 위해 예를 든 여러 사건들, 논지 전개방식, 작가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감성적인 문체는 책이 두껍다는 사실을 금방 잊게 만든다. 책이 주는 정보는 역설적이기도 하다. 우주를 탐사하면서 인류 우월주의는 한 풀씩 꺾이고, 인류는 겸손한 시야에서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한편 이 광활한 공간에 존재하는 생명으로서의 존엄성은 인류를 높은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가장 좋아하는 챕터는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이오니아의 자연과학자들을 언급하는 부분이다. 정교한 실험은 시대적 한계때문에 이뤄지지 못했지만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사실 등 훗날에 밝혀지게 될 어마어마한 진실들을 발굴한 그 시기를 상기시켜 주는 것엔 엄숙함이 깃들여 있다. 이후 도서관이 파괴되고 당시 이룬 과학적 발전이 중세로 접어들며 끊겨 버린다는 사실에 안타까워 하는 필자의 마음이 지면을 뚫고 올라온다. 그렇다고 이 시기를 무한정 찬양하는 것은 아니고 이 시기가 그럼에도 노예를 인정했다는 것, 그렇게 이루어진 지식이 사회변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도 짚어 균형을 이룬다.
동명의 다큐멘터리도 모두 시청하려 한다. 뭔가 느낀 점을 보태고 싶지만 책의 주제만도 충분히 감동적이어서 일단은 주제 테두리 바깥으로 떠나고 싶지 않다.
1980년대 시리즈
https://youtu.be/FT_nzxtgXEw
2014년 리부트 트레일러. 넷플릭스에서 전편을 다 볼 수 있다.
https://youtu.be/XFF2ECZ8m1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