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살 난 조선의 선비 이덕무가 1761년에 쓴 <간서치전(看書痴傳)〉(책만 보는 바보 이야기)이라는 짧은 자서전이었습니다. 하루도 손에서 책을 놓은 적이 없었던 그는 늘 자신의 자그마한 방에서, 온종일 햇살을 따라 상을 옮겨 가며 책을 보았다 합니다. - P5
그가 아끼던 벗 박제가는 언뜻 보기에는 대범해 보이지만, 엷은 녹색 빛이 도는 눈동자가 무척 슬퍼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성미가 급하고 괄괄했다던 연암 박지원은, 웃을 때마다 무성한 수염이 위로 활짝 퍼지는 모습이 아이처럼 천진해 보였습니다. - P6
그들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라 불리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들이 몰두했던 실학(學)이란 말에서, 그저 편리함이나 효율성만을 떠올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 종일 들판에서일하고 돌아와 봐야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넉넉하지 않았던 조선 백성들의사는 모습과, 그것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마음에서 젊은 그들의 새로운 학문은 비롯되었으니까요. 그들 역시 굶주림의 고통을 겪어 보았고 날 때부터사람의 운명을 갈라놓은 신분제도의 문제점을 뼈저리게 느껴 왔기에, 그처럼 뜨거운 마음으로 개혁을 원했는지 모릅니다. - P6
방에 들어서는 순간 등을 보이며 가지런히꽂혀 있는 책들이 모두 한꺼번에 나를 향해 눈길을돌리는 것만 같다. 눈과 눈이 마주치는, 책 속에 담긴누군가의 마음과 내 마음이 마주치는 설렘. - P13
기분이 울적한 날이면 나는 조용히 앉아 《논어》를 읽곤 했다. 짤막하고 단정한 문장을 되풀이해 읽노라면, 어느덧 슬픔이 가시고 마음이 고요히 가라앉았다. - P30
선생은 누구에게나 한결같이 따스한 눈빛으로 시원스러운 말씀을 들려주셨다. 그사람의 위치나 처지보다는 사람됨을 먼저 보셨다. 나와 벗들을 조이고 있는 무거운 신분의 사슬도, 연암 선생의 방 안에서는 느슨해졌고 나중에는 의식조차 하지 못했다. - P44
"유득공의 마음속에는 우물 하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근심 걱정도 한 번 담갔다 하면 사뿐하게 걸러져밝은 웃음으로 올라오게 하는 우물 말입니다." - P85
그저 있는 그대로 생긴 모습 그대로, 사람들은 초어정에서 서로마음을 열고 함께 어울렸다. 초어정이 주는 편안함에 젖어, 나는 이런 생각도 자주 하였다. - P115
우리는 책에 취하고 이야기에 취하고, 너무나 잘 맞는 서로에 오래도록 취하였다. - P127
담헌 선생이 이렇게 말씀하시면 연암 선생도 옆에서 거드셨다. "그러자면 이제까지 지니고 있던 선입견은 버려야 할 게야. 특히우리는 작은 나라에 산다고 해서 너무 스스로를 낮추어 보는 버릇이있어. 큰 나라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려 하지. 하지만 우리는 조선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하게나. 조선 사람의 눈으로, 조선 사람에게 이로운 것을 보고 배워야 할 것이야." - P144
변두리 자그마한 나라에 산다 하여 큰 나라의 눈치만 보지 말고 피어날 길 없는 신세라 하여 주눅 들지 말고 당당히 살아가라는 말을하고 싶으셨던 것이리라. (담헌 홍대용 선생) - P160
"자네들의 눈과 귀를 그대로 믿지 말게. 눈에 얼핏 보이고 귀에 언뜻 들린다고 해서, 모두 사물의 본모습은 아니라네." - P176
상대방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할 때, 상대방의 처지나 운명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며 진심으로 기뻐하고 슬퍼하는 마음이 있을 때, 사람들은 자신 속에 있는선한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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