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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를 걷다 - 생텍쥐페리가 사랑한 땅
주형원 지음 / 니케북스 / 2019년 10월
평점 :
생텍쥐페리가 사랑한 별과 사막
둘을 담은 사하라 트레킹 여행에세이
사하라 사막의 모래언덕의 사진이 담긴 띠지와
금빛 별이 박힌 하늘색의 표지가 감성을 더해준다.

사하라를 걷는 여행에서 느낀바를 담은 에세이인데
생소하게 느낄 수 잇는 사막의 사진을 많이 담아
사막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그만큼 별사진도 많은데,
작가처럼 텐트 없이 완전한 대자연 속에서 밤을 보내고 싶게 한다.
프랑스 어로 '아름다운 별에서 잔다'는 뜻을 가진
벽도 텐트도 없는 야외에서 하늘 보며 자기
우리말로는 노숙. 비박도 우리말인줄 알았는데 독일어 biwak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비바크가 표준어라고...

그런 진귀한 경험을 사막에서의 첫날부터 하다니
역시 여행자이다!
난 몽골에서 추위가 무서워서 하지 못했는데
다양한 사막 여행사 중에서도 현지여행사를 택하고
일반적으로 자동차나 낙타로 하는 여행이 아닌
'사막의 유목민'이라는 인적이 드문 길의 트레킹을 하다니.
오랫동언 사막 유목민들이 양떼를 데리고 걸어다니던 길을 따라 모래 언덕과 오아시스를 사이에 두고 약 일주일간 걷는다거나
잠도 유목민처럼 사막 한가운데서 텐트나 아니면 텐트도 없이 쏟아지는 별 아랴서 노숙한다거나
사하라 문화를 보호하고, 공유하고자 초대한다는 말은 매력적이지만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아무것도 없는 사막으로,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사막으로 인저깅 드문 길을 택해 간다는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있게 떠난 작가 덕에 우리는 별이 쏟아지는 사막에 서있는 낙타를
사막의 모래언덕을 걸어가는 가족을 볼 수 있었다

더불어 생텍쥐페리가 사랑한 땅이라는 부제가 붙은 덕에
아직 읽어보지 않은 <인간의 대지>를 부분부분 접하며
생텍쥐페리의 사막 사랑을 느껴 함께 사막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행을 함께한 이들의 다양한 여행법과 삶을 만날 수 있었다.
바람의 노랫소리에 귀기울이며, 사막의 나무에서 나는 바람의 노래는 숲에서 나무가 내는 바람 소리와는 또 다른 것 같다고 하는 샤샤의 엄마 솔렌.
아이를 갖는 순간 더이상 이런 여행을 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 작가에게, 아이와 함께한 여행은 아이를 이해하게 해주어 엄마가 되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말해준다.
사막의 하늘을, 바람을 닮은 뮤지션인 하리파.
사막에서 사는 데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며, 돈을 벌기 위해 하고싶지 않은 일을 하고, 살고싶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이거 대부분인 사회에 사는 작가, 그리고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서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으며 그의 삶은 자유롭고 평화롭다고 말해준다.

이러한 삶을 듣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사막에 대한 로망이 더욱 커져간다.
원래도 사막을 동경해 호주에서 몽골에서 사막을 찾았지만 이 책을 보니 사하라의 사막을, 작가처럼 느껴보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p135.침낭은 생각보다 아늑하고 따뜻했으며, 심지어는 조금 더운 느낌까지 들었다. 신고 있던 양말까지 멋었다. 이 정도면 잘 만 하다고 생각했다.
누워서 바라보는 하늘에는 도저히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무척이나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덕컥 겁부터 났다.이 아름다운 별 아래서 나를 덮친 건 추위가 아닌 갑작스러운 공포였다. 매일 저녁 좁은 방에서 천장과 벽을 사이에 두고 잠을 자다가 이 광활한 사막에서 하늘과 별 아래에 온전히 홀로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것이다. 아름다운 경관에 감탄하기도 전에 두려움이 먼저 밀려왔다. 이 두려움에는 이름이 없었다. 고요한 대자연 속에서 더없이 움츠러드는 나 자신을 보며 나를 가두고 있는 것은 벽도 천장도 아닌, 나 자신이 만들어내고 있는 두려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를 얽매고 있는 것에서 벗어나는 순간 해방감보다 공포가 먼저 나를 덮진다는 사실을. 나 스스로가 충분히 단단하지도 자유롭지도 못하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이와 비슷한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
잠에서 깨었을 때 밤하늘의 웅덩이밖에 볼 수 없었다.
나는 팔을 좌우로 벌린 채
저 별들의 웅덩이를 향해 언덕 위에 누워 있었다.
그 깊이를 미처 가늠하기도 전에 나는 현기증에 사로잡혔다.
그 깊이와 나 사이에는 붙잡을만한 뿌리 하나 없고,
지붕이나 나뭇가지도 없어
나는 다이버처럼 기댈 곳을 잃은 채
추락에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그리고 깊이 공감됐던 두 구절.
p190. 나는 떨어지는 것이 두려웠다.
발이 푹푹 빠지는 300미터 사막 경사를 오르는 것이 보통일은 아니어서 숨을 헐떡거리며 간신히 정상에 도달했다. 정상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모래로 이뤄진 산 하나를 탄 것 같았다. 내려갈 때는 경사길이 아닌 측면으로 스노보드를 타듯이 미끄러져 내려왔다. 만만치 않은 높이에 현기증이 났다. 밑에서 나를 기다리던 일행들은 달려서 내려오면 더 빠르다며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외쳤지만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모래는 침대 매트리스보다 더 푹신해서 떨어져도 결고 다치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떨어질까봐 조심하며 내려가고 있었다.
p196. 흙에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면 집 소파에 누워 쉬는 것만큼 편했다. 아니다. 어쩌면 집보다 더 편했는지도 모른다. 파리의 아파트에서 누워 쉴 때면 내 손에는 가끔 책이, 그리고 그보다는 더 자주 휴대폰이 쥐어져 있었다. 휴대폰으로 정보도 찾고, 영화도 보고, 전화통화도 했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던 상태다. 집에서 휴실을 취하면서도 난 단 한번도 바깥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본 적이 없었다. 나 자신과도 온전히 연결되지 못했다. 하지만 자연이라는 거대한 집에서, 소파가 아닌 모래 바닥에 누워 휴대폰 대신 하늘과 구름 그리고 별을 볼 때면 나와 내가 속한 이 세상이 완벽하게 연결된다고 느껴졌다.
사람들은 묻는다.
"사막에서 뭐해? 심심하지 않았어?"
이 질문을 받고서야 깨달았다. 사막에서는 단 한 순간도 심심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항상 그렇게 사아왔던 것만 같았다. 오히려 사람들이 그토록 동경하는 파리에 살명서 심심하다고 느낀 적이 더 많았다.
"아니, 전혀 안 심심했는데!"
내 대답에 상대는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이었지만 사실이었다.
사막에 와서 사라진 건 지루함만이 아니었다. 시간감각도 온전히 사라졌다. 사막에서는 시간을 볼 필요도, 휴대폰을 충전할 필요도 없다. 자연스럽게 단 한번도 시계를 보지 않게 되었다. 모든 시간 감각이 사라졌다. 어느새 내 유일한 시계는 해와 달과 별이 되었다.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지금이 몇시인지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유일하게 아쉬운 건 딱 한가지.
얼마 후면 이 행복한 시간이 끝난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매 순간을 헛되이 모내고 싶지 않았다.
종종 일행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언덕을 찾아 올라갔다. 언덕 위에 홀로 앉아 있으면 끝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사막과 물결처럼 이어져있는 사구들이 모였다.

*출판사에서 재공한 도서를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