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운 사랑들 밀란 쿤데라 전집 2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삶과 사랑. 이 둘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자웅동체 같은 것이다. 그만큼 사랑이 한 사람의 삶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사랑이 삶에 차지하는 부분에 대해, 더 크게는 삶에 대해 각자만의 사고와 관념이 있다. 그렇다면 밀란 쿤데라는 어떤 생각을 품고 있을까. 그의 생각을 여러번 읽어 온 그의 장편소설들을 통해 어느 정도 느껴왔었지만, 이 소설은 그의 생각의 집합체였다. 이 단편소설집을 통해 그는 그 특유의 방식으로 사랑과 삶에 대해 특정한 생각들을 내비친다.

 내가 느낀 바로는 뒷부분에 배치된 소설들로 갈수록 이야기하는 범위가 차츰차츰 좁아진다. 처음에는 인간의 삶과 정체성에 대해 규명하며, 후반부로 갈수록 사랑이 부각되고 그의 의미와 삶에서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개인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우리는 각자 자신의 삶을 매순간 살아가고 있다. 그러한 삶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어떤 행위를 하고 여러 선택들을 한다. 그 행위들과 선택들이 옳은 것인지 혹은 그 반대인지 모른 채. 그러나 훗날 뒤돌아보면 그 때 있던 일들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삶의 의미는 그 흐름 속에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게 밀란 쿤데라의 견해이고 이는 다음과 같은 인상 깊은 문장에서 잘 나타난다.


우리는 눈을 가린 채 현재를 지나간다. 기껏해야 우리는 현재 살고 있는 것을 얼핏 느끼거나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나중에서야, 눈을 가렸던 붕대가 풀리고 과거를 살펴볼 때가 돼서야 우리는 우리가 겪은 것을 이해하게 되고 그 의미를 깨닫는다.


  그렇다면 어떤 사건에 대한 관점은 영원히 고수될까. 그럴 수도 있겠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기억 속을 이전보다 더 들춰보게 된다. 이런 기억 속에선 누구나 자신의 화려했던 면면이나 즐거웠던 추억만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현재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과 본인이 처한 현실에 대해 불만을 품고는 한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쿤데라는 이런 기억은 그저 기억에 불과할 뿐이라며 옛 기억은 새로운 현재의 기억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식으로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것. 그것이 행복의 조건이다.

 사랑은 육체로부터 기인하는 것인지 정신에 기인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등장한다. 나도 이런 고민에 빠진 적이 있다. 특정 인물을 사랑할 때 과연 그녀의 외적 요소들과 그녀가 행해온 일련의 행동양식들이 내게 사랑의 감정을 유발한 것인지 혹은 그녀의 본질(파악하는 게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지만)에 빠져버린 선지 혼란스러웠다. 쿤데라도 나와 동일한 생각에 잠겼었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동지애를 느꼈다. 물론 그의 고민과 나의 고민의 깊이는 수준이 달랐겠지만.

 육체적 탐닉은 매우 강렬하다. 어떤 것을, 가령 성적으로 상대를 원하거나 이성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 원할 때 이는 아주 강력한 심리적 기인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에는 사랑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통상적으로는. 하지만 이에 따라 발생한 사랑은 그 목적을 달성한 뒤에는 그 사랑이 금방 식어버리는 모습을 종종 보이곤 한다. 이에 따라 육체적 사랑은 불완전한 사랑이다. 반대로 정신적 사랑, 상대의 본질에 의해 사랑에 빠졌다는 경우를 살펴보자. 이때 문제가 있는데, 상대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물음과 자신이 판단한 상대방의 본질이 실제 상대의 본질과 괴리가 생겼을 때 모순이 생긴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정신적인 사랑 역시 불완전성을 띄게 된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든 사랑은 의미가 없는 것이며 불완전한 것일까.

인간의 삶은 사회 속에서 진행된다. 많은 시선 속에서 우리는 바쁜 나날들을 보낸다. 우리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자신의 어떤 특정한 기준에 맞춰 찾지 않는다. 우리는 사회 속 타인의 시선, 좁게는 이성의 시선, 속에서 규정되고 이 속에서 정체성을 찾는다. 이런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이 또한 불가능한 것이 사랑과의 모순 때문이다.

 사랑의 전제조건은 상대방의 시선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린 사랑의 대상에게 잘 보이기를 희망하며 그의 시선 속에 존재하길 원한다. 하지만 시선들을 무시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해버린다면 사랑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되고 삶 자체도 부정하는 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우린 이런 시선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선의 부재가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하나의 시선, 사랑하는 이의 눈이다. 사랑만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이 책의 제목인 ‘우스운 사랑들’의 의미가 조금 이해가 된다. 불완전한 사랑이지만 우리의 삶과 분리할 수 없는, 의미가 없지만 결코 의미가 없을 수 없다는 모순 속에서 우스움을 갖는 게 사랑이기 때문에 이런 제목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사실 인간의 본질 자체가 불완전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사랑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단 생각이 든다.

 결국 삶과 사랑은 그 순간 그게 옳은지 그른지 알 수 없다. 단지 그 순간을 느끼면서 즐기면서 사랑하면서 살아갈 뿐. 그게 바로 삶의 의미이고 행복이지 않을까. 아모르 파티. 매순간을 즐기고 사랑하며 살아가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체성 밀란 쿤데라 전집 9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누구인가. 누구나 한 번쯤 던져봤을 법한 질문이다. 이런 질문은 정체성의 문제로 귀결된다. 나는 어떻게 정의되는 가에 대한 물음. 이런 질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밀란 쿤데라는 이 책에서 다양한 방면으로 제시한다. 과거와 현재의 정체성 파악의 기준, 우정과 사랑에 의한 정체성의 정의를 자연스레 소설에 녹여 보여주는 쿤데라의 힘은 여느 그의 소설을 읽을 때처럼 놀라웠다.

  한 사람의 정체성은 어떻게 정의되는가, 그리고 정체성의 개념은 무엇인가. 총 세 가지 정도로 정체성은 정의된다. 우선 과거에 우리는 무엇으로 우리를 규정하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찾았을까? 그 답은 직업에 있다. 과거 사회에서는 자신의 삶을 바치는 어떤 과 자신을 동일시했다. 농부의 정체성과 어부의 정체성은 분명 다른 것이었다. 그들은 본인의 직업에서 삶의 의미나 자신 스스로의 연속성을 찾았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이런 모습을 포착하기란 여간 쉬운 게 아니다. 본인이 좋아하고 평생을 바쳐 매진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오히려 희귀할 정도이다. 현대 사회인들은 본인이 종사하는 일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이러한 직업으로 부터의 정체성 확인의 결핍이 현대인의 불안, 정체성의 혼란의 원인 들 중 하나이다.

  정체성이란 한 사람이 성장하면서 유지하는 어떤 하나의 총체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총체성을 위해 필요한 것은 우정이다. 왜 우정인가? ‘친구라는 존재는 의 과거에 대해 기억한다. 그것이 비록 내가 오래 전에 잊어버린 기억일지라도 그의 기억 속에서는 선명할 수 있다. 그리고 그가 그 기억에 대해 에게 이야기 해줌으로써 는 과거의 를 기억할 수 있고, 항상 과거의 이야기를 가지고 다닐 수 있게 되어 자아의 총체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런 기능은 우정의 부차적인 기능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현대 사회에서는 이런 기능이 주가 되어버렸고, 이를 위해 친구와 우정이 일종의 계약이 되어버렸다고 쿤데라는 소설 속에서 탄식한다.

  마지막으로 정체성은 타인과 자신을 구별하는 개념이다. 타인과 나는 무엇으로 구분되는가?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이의 시선이다. ‘는 다른 많은 사람들의 눈에서 모든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는 어떤 사람에겐 단 하나의 존재, 세상의 전부이다. 사랑으로부터의 정체성 확인은 앞선 두 개의 정체성 확인을 모두 포함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을 통해 우린 과거를 추억할 수도 있으며, 그에게 모든 것을 바치고, 그가 나의 세성이라 인정함으로 본인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소설 속 여주인공인 샹탈이 낯선 시선으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했던 마음이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으로의 정체성 확인으로 전환되는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결국 내가 나일 수 있는, 나의 정체성을 찾고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랑이다. 쿤데라의 소설들을 읽으며 느끼는 생각이지만 쿤데라의 모든 소설을 관통하는 사랑이 삶의 근원적인 힘인 듯하다. 그러한 그의 소설 속 생각들과 관점들은 상당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평생을 배회하며,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러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상대에게 사랑받고, 그의 눈길을 받게 되면 우리는 달라진다. 배회했던 지난날들을 뒤로한 채 곧을 길을 걷게 된다. 사랑은 이렇게 누군가를 하나의 총체적인 인간으로, 정체성을 가진 인간으로 만들어 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 이탈로 칼비노 전집 10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떤 책을 읽든지 읽기 전에 책의 제목을 보고 내용을 상상해 보기 마련이다. 이러한 규칙 아닌 규칙을 이 책에도 적용시키며 생각해봤다.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라는 제목으로 보아하니 여행에 관한 소설인 듯 했다. 그리고 이 예측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남성독자혹은 당신이라 불리는 주인공이 을 찾아 여행을 다니는 건 맞았으나, 여행과 동등하게 혹은 더 높은 지위를 갖은 것은 독서즉 읽는 행위였다.

  책을 읽는 초반에는 읽어 나가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문장 자체부터가 너무 화려한 나머지 어렵게 느껴졌다.그러나 계속 읽으면서 이런 문장 구조와 표현들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 밖에도 독서가 어려웠던 이유는 책의 구조에 있었다. 책의 구성은 액자식인데, 기존에 읽어 왔던 액자식 소설들과는 사뭇 달랐다. 크게 두 가지 액자가 소설 속에 등장하는데, 크게 주인공인 남성독자루드밀라의 관계 속에서 진행되는 이야기가 첫 번째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 속에서 등장하는 10가지 소설, 이렇게 액자식 소설의 형태를 띤다. 10가지 소설과 주인공들 간의 관계의 이야기가 번갈아 계속 서술되다 보니 초반에는 읽는 동안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이 역시 읽다보니 신선함으로 작용하여 소설에 더 흥미를 불어 넣었다.

더 독특한 점은 책 속에 들장하는 10가지 소설이 초반부로만 이루어졌다는 데에 있다. 이런 설정으로 작가는 소설을 쓰고 읽는 행위에 대해 독자들이 생각해보도록 만든다. 초반부만 나온 모든 소설들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그리고 그 흥미가 정점에 달할 때 쯤 소설은 끝이 난다. 그래서 나머지 독서의 몫은 책 속의 독자에게 그리고 책 밖의 독자인 나이게 옮겨간다. 나머지 뒷부분들은 독자 스스로 창출해야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10가지 소설들이 모두 각자의 제목을 갖는데, 그 제목들을 모두 합치면 또 다른 소설의 첫 부분이 된다. 칼비노는 소설의 초반부의 역할과 그에서 파생되는 읽는 즐거움을 일깨워 주고 싶었던 듯하다. 실제로 우리는 서점에서 책을 사기 전, 책들의 앞부분을 읽어 보고 그 책에 대해 판단하고 구매할지 하지 않을지 결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초반부가 책의 전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초반만 보고 그 뒷부분을 살살하며 그 책을 구매할 것이므로.

  나의 독서는 어떠한가. 나도 독서에서 읽는 책의 초반부가 가장 중요하다. 허나 초반에 책이 마냥 쉽게 읽히진 않는다. 가장 흥미롭지만 반대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소설의 처음이다. 하지만 그 속에 뛰어들어 자연스레 녹아들게 되면 그 뒤는 알지 못할 힘이 날 소설의 뒷부분으로 끌고 간다. 이상하게도 힘들이지 않고 몰입한 채로 책을 읽게 된다. 물론 초반부가 충분한 흥미유발에 성공해 중간에 그 책을 덮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이 소설을 통해 읽는다는 행위에 대해 더 생각해보게 됐다. 그리고 그 행위의 중심엔 상상력과 작가와의 소통이 있다. 읽는 내내 우린 계속될 다음 이야기를 끊임없이 상상하며 작가와 텍스트를 매개로 소통하지 않는가. 초반부로만 이루어진 소설. 신박하고 흥미로운 발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점의 아쉬움이 남는다. 그 점은 바로 책의 모든 소설들이 정점에 이르러 끝나버려 그 뒷이야기를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내 상상력이 채워나가야겠지만 그래도 그 뒷이야기가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다. 10가지 소설들을 온전히 읽을 수 없어 그 점이 아쉬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볼린저 밴드 투자기법
존 볼린저 지음, 신가을 옮김, 김정환 감수 / 이레미디어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80여 년 전 물리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개념>을 발표했다는 문장으로 이 책은 시작된다. 마찬가지로 끝에서도 저자는 상대성에 대한 언급으로 책을 시작했으니 상대성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 하겠다며 책을 마무리 한다. 이런 언급들에서 알 수 있듯이 볼린저 밴드의 핵심은 상대성에 있다. 그저 주가의 절대적인 움직임과 가격에 대한 기준으로 투자하던 이전 기법에서 벗어나 볼린저는 상대성에 기준을 두어 그것을 바탕으로 투자의 틀을 제공한다.

  그렇다면 볼린저 밴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우선 캔들차트를 토대로 21일 단순 이동 평균 곡선을 캔들 차트 위에 그려 넣는다. 그 다음 이 곡선을 중심으로 변동성을 기준으로 하여 2 표준편차만큼의 밴드를 구축하면 볼린저 밴드가 완성된다. 컴퓨터만 있다면 밴드를 그리기는 아주 쉽다. (증권사 프로그램이나 네이버 금융에서도 이런 차트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러하듯 이렇게 그려진 차트를 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투자해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러한 중요성을 이미 알고 있었던 듯 볼린저는 차트 해석 방법과 실제 매매 기법에 초점을 맞춰 책의 내용을 기술한다. 사실 다른 많은 투자 관련 책들은 그 기법들을 세밀하게 설명하기 보다는 주식시장의 역사나 기법의 역사를 나열하는데 지나치게 지면을 할애해 독서를 힘들게 한다. 그러나 이 책에선 볼린저 밴드 기법을 독자에게 이해시키고 실제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볼린저 밴드를 활용한 투자기법은 총 세 가지가 나온다. 스퀴즈와 추세 추종 그리고 반전이다. 스퀴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소한 개념일 것이다. 스퀴즈는 영어의 뜻 그대로 밴드의 폭이 좁아진 상태에서 한동안 진행되는 상태이다. 밴드의 폭이 지속적으로 좁은 상태라는 건 변동성이 일정 기간 동안 낮은 상태를 유지한다는 뜻이다. 한편 변동성은 낮은 상태에서 높은 상태로, 높은 상태에서 낮은 상태로 움직이는 성질을 갖는다. 즉 밴드의 폭이 좁은 상태에선 그 폭이 넓어지며 주가가 상승 혹은 하락할 높은 확률을 갖는다. 이런 기회를 활용해 이익을 얻는 방법이 첫 번째 기법인 스퀴즈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이름만 들어도 이해가 갈 것이다, 밴드를 활용하여 특정 종목을 시장의 추세가 상승세인지 하락세인지를 파악해 이익을 취하는 방법이 추세 추종이다. 이 때 추세의 시작과 끝을 파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데, 그 진단법에 대해서도 충분한 설명이 되어있다. 마지막 기법인 반전도 말 그대로 어떤 추세가 끝날 시점을 예측해 미리 포지션을 취해 이익을 얻는 방법이다.

  이 책을 접하기 전에는 사실 볼린저 밴드, 하물며 밴드가 무언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우연찮게 읽게 된 볼린저 밴드 투자기법은 그 방법에 대해 아주 세세하지만 쉽게 설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이 중요성을 갖는 이유는 또 있다. 주식 시장에 적용이 많이 되지 않던 상대적 관점을 온전히 적용하여 상대적인 현재 주가를 파악하는 것의 중요함과 다양한 지표들의 상대적 상태에 대해 강조한 점에 그 중요성이 있다. 단지 최저점 혹은 최고점을 매수 혹은 매도의 타이밍으로 본 게 아닌 상대적인 틀 속에서 최고점과 최저점을 매매 타이밍으로 제시한 그의 관점은 가히 놀랍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들로 볼린저 밴드는 여전히 중요하게 활용되고 있다. 나 또한 이 책을 통해 배운 볼린저 밴드 투자기법을 실제 주식 시장에 적용시켜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주의 구조 - 시간과 공간, 그 근원을 찾아서
브라이언 그린 지음, 박병철 옮김 / 승산 / 200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의 역사는 기존의 것을 부정하고 좀 더 나은 것으로 대체하고 발전시킴의 연속이다. 모든 인간사가 그렇겠지만 과학만큼 변증법적 발전을 끊임없이 해왔고, 진행하고 있는 분야가 또 있을까? 과학의 역사는 어떤 에 대한 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입증되며 으로 나아가며 계속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자면 천동설에서 지동설로의 변화, 뉴턴의 이론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의 전환 등이 있다. 이렇듯 과학은 발전의 연속선상에서 그 성질을 가진다.

  보통 과학, 물리학이라 하면 다들 겁에 질려 손사레를 친다. 나이도가 어려울뿐더러 현실적으로 적용하거나, 심지어는 그 내용 자체를 이해하기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그동안 이러한 이유로 과학에 관심조차 갖지 않았었다. 허나 인터스텔라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 우주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그래서 우주를 알고 싶었고, 이에 따라 처음 집어든 책이 코스모스였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우주에 대한 흥미는 더 증폭되었다. 그리고 비교적 최근의 자료와 더 깊이 있는 독서를 원하게 됐고, 결과적으로 이 책을 읽기까지에 이르렀다. 이러한 귀결은 아주 내게 상당한 만족감을 안겨주었다.저자인 브라이언 그린은 어려운 개념들을 최대한 쉽게, 그러나 깊이 있게 전해준다. 물론 한 번 읽고 나서 책의 내용 전부를 이해했다고는 못한다. 그러나 이것은 내 개념 이해의 문제이지 책 자체는 독자에게 매우 친근하게 다가온다.

  감히 단언하건대, 이 책을 읽기 전,후의 나는 사고의 폭이 다르다. 이전의 사고의 범위가 지엽적인 부분, 예컨대 특정 장소나 지역, 에만 국한되었다면 지금은 지구나 우주 더 크게는 시공간까지도 엿보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사고의 확장은 계속적으로 생각하고 고민하지 않으면 금방 이전의 상태로 회귀하겠지만, 현재 나의 정신 상태는 지적 만족감으로 몹시 고양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절대적 개념들에 대해 위문을 던지게 됐다. 절대적이라 여겨졌던 많은 것들이 깨지고 부서지며, 상대적인 것이라 밝혀졌다. 점의 형태라 여겼던 가장 작은 입자들이 진동하는 끈의 형태일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사실보다 더 충격적인 것도 있다. 우리가 절대불변으로 여기는 시공간마저도 상대적인 것이다. 더욱이 이 시공간마저도 어떤 구성요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사실들을 책 속에서 계속 접하다 보면 충격을 받지 않는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이다.

  결국 인간의 감각을 통해 인지하는 이 세계는 진짜 (본질적인) 세계의 극히 일부이다. 우린 극소의 세계를 보지 못하며, 극대의 세계를 상상하지도 못한다. 초끈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는 10차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우린 어떻게 현실을 인식하는가. 단지 3차원의 공간과 추가적으로 1차원의 시간까지 밖에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도 어리석게도 모구가 각자 아는 게 혹은 본인이 진리라는 듯 행동한다. 앞서 말했듯 우리의 인식은 불완전하고 (이것은 절대적 진리이다), 모든 것들은 상대적이기에 모두가 옳을 수도, 그를 수도 있다. 물리학은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그저 지식 전달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 인간의 불완전함을 알게 해준다는 점에서 물리학은 굉장한 역할을 하고 있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이런 모습들은 더욱 두드러지게 보인다. 그동안 인간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인 줄 알고, 그 안의 최고 지배자인 인간이 우주의 최고인 것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지구는 태양의 도는 위성 중 하나에 불과했고, 태양계는 우리 은하수 은하의 변두리에서 그 중심에 있는 블랙홀을 도는 무수한 행성계 중에 하나였다. 더 나아가 우리 은하수 은하 자체도 셀 수도 없이 많은 은하수 은하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이제 지구가 우주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대한 실감이 좀 난다. 말 그대로 지구는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먼지만도 못한 존재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안에 70억의 인구가 서로가 왕인 듯 다투고, 싸우고, 서로를 총과 핵으로 겨누고 있다.

우린 욕심을 조금 버릴 필요가 있다. 위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삶의 시간과, 서로가 갖기 위해 다투는 물질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신이 있다면, 그리고 그가 이 우주를 창조했다면, 이런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이 우주를 만든 게 아닐까? 그는 모든 일들을 계획 속에서 완전하게, 이유를 가지고 행하는 분이니까.

  우주에 대해 폭발적으로 많은 걸 알게 된 현대에서 우리는 좀 더 겸손한 자세로 삶에 임해야하지 않을까. 우주에서 인류는 단 하나 뿐인 종이고 극,,극소수에 불과한 종이다. 우린 서로 협력하며 인류라는 하나의 종을 유지하고 발전시켜야만 한다. 인류라는 커다란 하나의 공동체가 그 안에서 동종간의 싸움으로 (핵전쟁 같은) 스스로 자멸한다면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이쯤 되면 내가 읽은 책이 물리학 책인지 고전 소설인지 모르겠다. ‘우주의 구조우주와 물리학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커다란 교훈을 전해준다. 거듭 말하지만 이런 이유로 일반인들도 물리학을 접하고 공부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