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운 사랑들 밀란 쿤데라 전집 2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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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삶과 사랑. 이 둘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자웅동체 같은 것이다. 그만큼 사랑이 한 사람의 삶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사랑이 삶에 차지하는 부분에 대해, 더 크게는 삶에 대해 각자만의 사고와 관념이 있다. 그렇다면 밀란 쿤데라는 어떤 생각을 품고 있을까. 그의 생각을 여러번 읽어 온 그의 장편소설들을 통해 어느 정도 느껴왔었지만, 이 소설은 그의 생각의 집합체였다. 이 단편소설집을 통해 그는 그 특유의 방식으로 사랑과 삶에 대해 특정한 생각들을 내비친다.

 내가 느낀 바로는 뒷부분에 배치된 소설들로 갈수록 이야기하는 범위가 차츰차츰 좁아진다. 처음에는 인간의 삶과 정체성에 대해 규명하며, 후반부로 갈수록 사랑이 부각되고 그의 의미와 삶에서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개인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우리는 각자 자신의 삶을 매순간 살아가고 있다. 그러한 삶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어떤 행위를 하고 여러 선택들을 한다. 그 행위들과 선택들이 옳은 것인지 혹은 그 반대인지 모른 채. 그러나 훗날 뒤돌아보면 그 때 있던 일들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삶의 의미는 그 흐름 속에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게 밀란 쿤데라의 견해이고 이는 다음과 같은 인상 깊은 문장에서 잘 나타난다.


우리는 눈을 가린 채 현재를 지나간다. 기껏해야 우리는 현재 살고 있는 것을 얼핏 느끼거나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나중에서야, 눈을 가렸던 붕대가 풀리고 과거를 살펴볼 때가 돼서야 우리는 우리가 겪은 것을 이해하게 되고 그 의미를 깨닫는다.


  그렇다면 어떤 사건에 대한 관점은 영원히 고수될까. 그럴 수도 있겠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기억 속을 이전보다 더 들춰보게 된다. 이런 기억 속에선 누구나 자신의 화려했던 면면이나 즐거웠던 추억만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현재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과 본인이 처한 현실에 대해 불만을 품고는 한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쿤데라는 이런 기억은 그저 기억에 불과할 뿐이라며 옛 기억은 새로운 현재의 기억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식으로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것. 그것이 행복의 조건이다.

 사랑은 육체로부터 기인하는 것인지 정신에 기인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등장한다. 나도 이런 고민에 빠진 적이 있다. 특정 인물을 사랑할 때 과연 그녀의 외적 요소들과 그녀가 행해온 일련의 행동양식들이 내게 사랑의 감정을 유발한 것인지 혹은 그녀의 본질(파악하는 게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지만)에 빠져버린 선지 혼란스러웠다. 쿤데라도 나와 동일한 생각에 잠겼었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동지애를 느꼈다. 물론 그의 고민과 나의 고민의 깊이는 수준이 달랐겠지만.

 육체적 탐닉은 매우 강렬하다. 어떤 것을, 가령 성적으로 상대를 원하거나 이성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 원할 때 이는 아주 강력한 심리적 기인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에는 사랑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통상적으로는. 하지만 이에 따라 발생한 사랑은 그 목적을 달성한 뒤에는 그 사랑이 금방 식어버리는 모습을 종종 보이곤 한다. 이에 따라 육체적 사랑은 불완전한 사랑이다. 반대로 정신적 사랑, 상대의 본질에 의해 사랑에 빠졌다는 경우를 살펴보자. 이때 문제가 있는데, 상대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물음과 자신이 판단한 상대방의 본질이 실제 상대의 본질과 괴리가 생겼을 때 모순이 생긴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정신적인 사랑 역시 불완전성을 띄게 된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든 사랑은 의미가 없는 것이며 불완전한 것일까.

인간의 삶은 사회 속에서 진행된다. 많은 시선 속에서 우리는 바쁜 나날들을 보낸다. 우리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자신의 어떤 특정한 기준에 맞춰 찾지 않는다. 우리는 사회 속 타인의 시선, 좁게는 이성의 시선, 속에서 규정되고 이 속에서 정체성을 찾는다. 이런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이 또한 불가능한 것이 사랑과의 모순 때문이다.

 사랑의 전제조건은 상대방의 시선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린 사랑의 대상에게 잘 보이기를 희망하며 그의 시선 속에 존재하길 원한다. 하지만 시선들을 무시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해버린다면 사랑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되고 삶 자체도 부정하는 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우린 이런 시선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선의 부재가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하나의 시선, 사랑하는 이의 눈이다. 사랑만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이 책의 제목인 ‘우스운 사랑들’의 의미가 조금 이해가 된다. 불완전한 사랑이지만 우리의 삶과 분리할 수 없는, 의미가 없지만 결코 의미가 없을 수 없다는 모순 속에서 우스움을 갖는 게 사랑이기 때문에 이런 제목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사실 인간의 본질 자체가 불완전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사랑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단 생각이 든다.

 결국 삶과 사랑은 그 순간 그게 옳은지 그른지 알 수 없다. 단지 그 순간을 느끼면서 즐기면서 사랑하면서 살아갈 뿐. 그게 바로 삶의 의미이고 행복이지 않을까. 아모르 파티. 매순간을 즐기고 사랑하며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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