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파노라마
릴리아 아센 지음, 곽미성 옮김 / 어떤책 / 2024년 10월
평점 :

안녕하세요, 로렌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책은 『파노라마』입니다.
짧고 강렬한, 추리소설의 긴장감과 함게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깊이 있는 소설 소개할게요.
줄거리 ㅣ
프랑스의 한 인플루언서가 라이브 방송으로 자신의 삼촌의 죽입니다. 성폭행으로 자신의 삶을 망친 삼촌에 대한 복수죠. 이 사건을 계기로 사적 보복과 함께 폭동이 일어나고 온 도시가 투명하게 바뀝니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투명한 공간에서 사생활을 포기하고 안전을 택한 것이죠. 유리벽으로 만든 평화가 쭉 지속되던 어느 날, 가장 투명하고 안전한 마을에서 한 가족이 신기루처럼 사라집니다. 전경찰 현안전 관리인인 엘렌이 이 사건을 맡게 되면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줄거리만 봐도 뒷이야기가 정말 정말 궁금해지지 않나요? 실마리가 없는 것 같은 사건. 경찰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되자 안전 관리인으로 전락한 엘렌이 사건을 맡아 하나씩 풀어나가는 과정이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무엇보다 그 가족은 팍스톤에, 그러니까 도시의 가장 부유한 동네에 살고 있다. (중략) 나는 그들이 최상의 안전 속에 있었음을 보장할 수 있다. 그들이 사는 동네에서는 투명화는 종교다. P. 27
소설이 273쪽인데 250 쪽이 다 되도록 범인이 안 밝혀져요. 이것밖에 안 남았다고?! 긴장감과 두근거림으로 책을 다 읽고 나면 이내 깨닫게 됩니다. 추리소설을 빙자한 현대철학이구먼!

『파노라마』가 프랑스의 굵직한 문학상 후보로 오르고 청소년이 선정한 소설 상을 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잠시 책 읽기는 멈추고 깊이 생각해 볼만한 물음을 던져주거든요.
한편으론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문제도 속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이유가 있기 마련이구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우리는 잘 알지 못하고 판단하는 가벼운 행동을 하고 있을 수도 있구나. 나만의 생각과 판단과 근거를 가지는 것이 꽤 어렵지만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라는 것도요.
사적 보복이 폭동으로 번지고 시민의 힘으로 사회를 바꾼다는 부분은 시민혁명의 나라인 프랑스스러운 발상이라고 느꼈어요. 시민이 공권력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소설가도 정해진 답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서 프랑스 다웠다고도 느꼈고요. 사회가 발전하려면 구성원 간에 끊임없는 의견 충돌과 토론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인간이 세운 유토피아는 완벽할 순 없는 걸까요? 일말의 불안조차 미연에 방지하고 싶어 하지만 다양성의 기회도 말살하게 될 수밖에 없는 걸까요. 그리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기준은 어디에 어떻게 두어야 할까요. 수많은 고민이 담긴 커다란 원반을 지탱하기 위한 무게 중심의 핀은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또한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고민해 보게 하는 『파노라마』였습니다.
주인공 엘렌이 남편 데이비드에 관해 생각한 것, 일찍 돌아가신 아빠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작가의 깊이감이 느껴졌습니다. 타인의 자유, 가족의 죽음과 죽음을 대하는 가족으로서의 생각이 가슴을 울리네요.
나는 결국 떠났다. 나는 떠날 용기를 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소식이 나를 무너뜨리지는 않았다. 나는 울었고, 울 수 있음에 행복했다. 내 안에 균열이 생겼다. 나는 더 이상 안전을 믿지 않는다. (중략) 나는 상처받고, 마모되고, 실망하는 삶이 좋다. 세상 모두가 서로에게 변치 않을 것을 약속하는 이 시대에 나를 떠나기로 한 다비드의 자유를 사랑한다. P. 128
나는 종종 몇 살부터가 노인인지 자문해 왔는데, 어쩌면 자신의 가족 중 하나를 잃은 날부터일지도 모르겠다. 아주 젊어서도 노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고작 열아홉이었다. (중략) 죽은 자들은 언제까지나 죽음을 맞이한 당시의 나이에 머물러 있다. P. 168

프랑스에는 청소년들이 읽고 토론하고 상을 주는 부문이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충분히 생각하고 토론할 수 있는 존재로 청소년을 받아들이는 사회가 부럽네요.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많이 참여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좀 더 애정을 갖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다양한 세상을 엿보고 깊이 있게 생각할 기회를 주신 번역가님과 출판사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 『파노라마』를 읽고 토론해 볼 몇 가지 문제를 생각해 봤습니다.
'잘못한 게 없다면, 모든 것을 드러낼 수 있다' 조건과 명제가 부합한다고 생각하는지?
개인에게 밀폐된 공간과 비밀은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행복의 기준은 무엇인가? 안전이 행복의 최우선 조건이 될 수 있는가?
타인에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자신의 딸을 보호하기 위해 살해를 서슴지 않았던 빅토르 주아네의 판단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등

#문장수집
오스만 남작이 19세기 파리에 위생과 안전을 부여했다면, 빅토르 주아네의 원대한 계획은 윤리적 무결함과 안전의 최적화를 목표로 했다. P. 19
근본적으로 우리에게 감출 게 뭐가 있습니까? 잘못한 게 없다면, 모든 걸 드러낼 수 있지 않습니까? 빅토르 주아네 ㅣ P. 19
투명화는 이전에는 가려져 있던 인간과 인간성 사이의 괴리를 자주 없애 주었다. P. 22
비밀스러움은 급속히 끔찍한 거만함으로 여겨졌다. 보여 주기를 거부하는 행위는 은폐로 치부됐다. P. 30
그럼에도 열린 사고방식을 예찬하는 이 엘리트들이 경비원을 내세우고 폐쇄적으로 사는 이유는, 다른 지역 사람들의 질투심과 부러움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다. “생활수준이 같지 않은 사람들을 도발하는 건 교양 없는 일이죠.” 내 딸의 전 남자친구인 기타리스트 노에가 말했었다. P. 41
마지막으로 그리용에 이주해 온 이들은 가치를 더 이상 인정받지 못하는 것들에 집착하는 소외된 반항아들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빈민가의 불량배, 다른 이들에게는 자유의 신념을 수호하는 투사로 여겨지는 이들. P. 52
도시 사람들은 이런 걸 이해 못 해. 유리 감옥 속에서 안락하게, 세상의 거친 면을 이해하지 못하고 살지. 죽음도, 인간의 숙명도, 기도하는 것조차도 뭔지 몰라. 신을 살해하고 그 자리를 차지했으니까. 매끈하게 다듬어진 이 작은 세상에서는 우리가 야만인이지. 그러나 내가 확실히 말하건대, 이곳의 폭력은 그들의 폭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오. 파블로 ㅣ P. 56
우리는 행복의 테두리 바깥에 사는 걸 낙오라 여겨 우리 존재를 거짓으로, 원하는 모습으로 꾸며 내고 있다. P. 57
나의 가장 큰 자랑은 이 성당이나 유리 주택이 아니라 내 딸에게 남겨 줄 유산입니다. 딸이 밤에도 공격당할 두려움 없이 외출할 수 있는 덜 위험한 세상이죠. 남자들, 이 구역질 나는 존재들이 딸을 강간할 수도, 구타할 수도 없는 세상이요. 이 땅의 천국을 우리가 만들어 내고 있어요. 빅토르 주아네 ㅣ P. 91
관이야말로 투명해야 할 단 한 가지일 거요.
파블로 ㅣ P. 168
아이는 스마트폰을 보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은 서로 곁에 붙어 서서 말이 없다. 각자 스마트폰 화면에 정신을 빼앗긴 채 온라인게임을 하고, 가상의 세계로 들어가 영웅으로 변신한다. 아이들의 영혼은 온전히 다른 세상에 바쳐진다. 종소리가 울리면, 영혼 없는 몸들은 다시 교실로 돌아가 접속을 끊고 자리에 앉는다. 6월의 더위는 이들의 무기력함을 덜어 주지 못한다. P. 180
자신감에 차서 세상을 선과 악이 선명하게 표시된 바둑판처럼 보는 초등학생들을 저는 매일 만나요. 아이들의 세계에 의심과 불확실성, 모호함은 없어요. 저는 그들의 도덕적 엄격함이 두렵습니다. 조엘 르브라 ㅣ P. 189
하지만 속으로 이 한심한 짓을 희망으로 여긴다. 청소년들이 계속해서 규칙을 어긴다면, 아주 소수라도 몇몇은 반항을 계속한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있다. 조엘 르브라가 말했던 끔찍한 완벽을 피할 수 있다.
P. 202
자기 자신의 그림자가 되다. ‘생기를 잃었다’는 의미의 옛날식 표현. 그림자가 되는 것, 자기 자신의 그림자가 되는 건 멋진 일이다. 저마다 나뭇잎 밑으로 자신을 숨길 수도 있고. (중략) 나 역시도 그림자가 됐는데. 태양에 타버린 그림자. P. 220
투명화는 많은 커플들을 파괴한다. 사랑은 진열되면서 증발하고, 노출되면서 폭발한다. P. 250
복종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글을 쓴다. 쓴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는 없을 것이다. 또한 쓰는 일이 치유의 과정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흔적을 남기는 것, 그뿐이다. P. 273
범인을 찾기까지의 과정은 긍정적으로만 여겼던 투명성에 대한 재고이자,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역자후기 ㅣ P. 275
소설 속 모든 것이 투명하게 드러나 비밀이 없는 도시는, 단편적인 사실은 난무하나 진실은 알 수 없고, 모든 것이 공유되나 고민과 해석은 빠져 있으며, 그러므로 ‘진화하지 못하고 소통만 하는’ 도시다.
역자후기 ㅣ P. 277
추리소설로서의 충분한 재미를 주면서 이만큼 우리 사회를 신랄하게 비추는 프랑스 소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중략) 부디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즐거움과 희열을 당신에게도 선사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역자후기 ㅣ P. 278

어떤책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파노라마 #릴리아아센 #곽미성옮김 #르노도상수상작 #소설추천 #프랑스문학 #프랑스소설 #Panorama #LiliaHassaine
투명화는 이전에는 가려져 있던 인간과 인간성 사이의 괴리를 자주 없애 주었다. P. 22 - P22
근본적으로 우리에게 감출 게 뭐가 있습니까? 잘못한 게 없다면, 모든 걸 드러낼 수 있지 않습니까? 빅토르 주아네 ㅣ P. 19 - P19
비밀스러움은 급속히 끔찍한 거만함으로 여겨졌다. 보여 주기를 거부하는 행위는 은폐로 치부됐다. P. 30 - P30
도시 사람들은 이런 걸 이해 못 해. 유리 감옥 속에서 안락하게, 세상의 거친 면을 이해하지 못하고 살지. 죽음도, 인간의 숙명도, 기도하는 것조차도 뭔지 몰라. 신을 살해하고 그 자리를 차지했으니까. 매끈하게 다듬어진 이 작은 세상에서는 우리가 야만인이지. 그러나 내가 확실히 말하건대, 이곳의 폭력은 그들의 폭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오. 파블로 ㅣ P. 56 - P56
우리는 행복의 테두리 바깥에 사는 걸 낙오라 여겨 우리 존재를 거짓으로, 원하는 모습으로 꾸며 내고 있다. P. 57 - P57
자신감에 차서 세상을 선과 악이 선명하게 표시된 바둑판처럼 보는 초등학생들을 저는 매일 만나요. 아이들의 세계에 의심과 불확실성, 모호함은 없어요. 저는 그들의 도덕적 엄격함이 두렵습니다. 조엘 르브라 ㅣ P. 189 - P189
하지만 속으로 이 한심한 짓을 희망으로 여긴다. 청소년들이 계속해서 규칙을 어긴다면, 아주 소수라도 몇몇은 반항을 계속한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있다. 조엘 르브라가 말했던 끔찍한 완벽을 피할 수 있다. P. 202 - P202
나는 종종 몇 살부터가 노인인지 자문해 왔는데, 어쩌면 자신의 가족 중 하나를 잃은 날부터일지도 모르겠다. 아주 젊어서도 노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고작 열아홉이었다. (중략) 죽은 자들은 언제까지나 죽음을 맞이한 당시의 나이에 머물러 있다. P. 168 - P168
추리소설로서의 충분한 재미를 주면서 이만큼 우리 사회를 신랄하게 비추는 프랑스 소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중략) 부디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즐거움과 희열을 당신에게도 선사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역자후기 ㅣ P. 278 - P2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