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 - 하버드대 마틴 푸크너의 인류 문화 오디세이
마틴 푸크너 지음, 허진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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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아닌 책 중에 이렇게 두꺼운 책을 푹 빠져 즐겁게 보다니! 다 두툼한 책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걱정하지 말고 우선 책을 펼쳐보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 것이다.




타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역사에 관한 궁금증으로 책을 펼쳐 들었다. 흥미로운 사건과 요소를 골라 짜임새 있게 쓴 이야기를 읽다 보면 다음 내용이 궁해서 책을 덮을 수 없다. 『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는 문화가 어떻게 변했는지 초점을 두고 15개의 주제 골랐다. 유튜브 채널 <B 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에서 2024년 2월 '이달의 책' 코너 최고에 소개된 책이기도 하다.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최고의 책을 2권 뽑을 수 없어 보너스로 소개한다고 하니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굉장히 매력이 있는 책이라 확신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인 마틴 푸크너는 하버드 대학교 영문학과 비교문학 교수이다. 한국 독자에게 익숙한 이름의 저자는 아니지만 이 책으로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길 것 같다.





목차를 살펴보면 대략 알고 있는 내용 몇 가지가 눈에 띄었다. 하나의 주제를 골라 역사 이야기를 하는 책이 많기에 비슷한 전개를 예상했는데 완전히 오산이었다. 다소 연관성이 없어 보이고 전혀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역사적 사실 간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를 찾아주는 게 이 책의 매력이자 저자의 능력이었다. 네페르티티의 왕비 흉상은 흉상 따로 이집트 투탕카멘의 이야기 따로 알고 있었다. 문화의 단절이 갖는 양면성(극단적으로 보존되기도 하면서 명맥을 잇지 못하고 사라지는)으로 이 두 이야기를 연결해 준다. 한 나라의 왕이 천도를 하면서까지 이끈 변화는 결국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역사에서 잊혔으며 많은 예술품이 완성되지도 못한 채 버려졌다. 그러나 이러한 비운이 후대에 가장 온전한 상태로 전해지는 보호막이 되었다니. 가정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백색가전은 그 수명을 다하고 계속해서 교체되는데 비디오 플레이어나 캠코더 같은 기기는 시대의 변화를 맞이해 창고 깊숙이 들어있다 온전한 상태로 다음 세대에 발견되는 것과 비슷하다.



일본의 우키요에 작품이 유럽 예술가에게 많은 영향을 준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당대 일본 전통 회화를 대표하지 않은 그저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최신 예술 형식이라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됐다. 현대에도 가브리엘 제빈 같은 작가가 호쿠사이의 <가나가와의 거대한 파도>를 모티프로 90년대 게임 디자이너의 소설을 썼다. 무역 이익을 위해 선택된 작품이 이토록 오랜 시간 사랑받고 많은 영향을 받을지 누가 알았을까.










문화의 변화는 다양한 형태를 지닌다 자발적 비자발적 내부 외부 침략을 당하기도 하고 침략하기도 한다. 이 중 무엇이 좋다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가장 안 좋은 것을 하나 고를 순 있다. 바로 고립이다. 순수성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타문화를 배척하고 변화를 기피하면 발전 없이 퇴보할 수밖에 없다.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나 카몽이스의 <우스 루지아다스>만 봐도 다른 문화의 문학을 적극 받아들여 자신만의 것으로 재탄생시킨 예다. 여기에 작가는 케이팝도 덧붙인다. 우리나라 문화가 해외에서 사랑받는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약소국이기에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고 강대국의 장점을 골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우리만의 것으로 잘 버무려 새로운 모습을 빚어냈기에 공감 요소가 많고 새롭고 세련돼 보이는 것 같다.




책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다양한 문화의 혼합적 매력을 갖고 있는 곳이 시칠리아다. 단 하나로 단정할 수 없는 이국적인 매력이 겹겹이 더해진 곳이이다. 다소 거칠고 투박해 보이는 모습도 사랑스럽게 느껴지기에 가장 좋았던 여행지 혹은 가고 싶은 여행지를 묻는다면 주저 없이 이곳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나의 최애다. 시칠리아의 이국적이면서 혼재된 매력의 층을 하나씩 살펴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과는 반대로 나라는 사람은 굉장히 배타적이고 좁은 취향을 갖고 있다. 책도 음악도 영화도 옷도 내가 직접 살펴보고 고르기에 친구들은 추천해 주는 걸 포기한지 오래다. 추천이 아니라 거의 설득에 가까운 영업(?)이 있어야 할까 말까 한 나 스스로가 고집스럽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이 책을 보고 '나의 배타성이 고립과 퇴보로 가는 단절이 될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문화와 음식에 관심이 있는 부분은 살려 열린 태도를 갖고, 배타적이고 고집스러운 취향은 조금 다듬고 받아들이는 문을 열어두면,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을 좀 더 잘 가꾸어 나갈 수 있을 거 같다.








문화와 역사를 좋아하는 독자는 주저 없이 이 책을 골라들었을 것이다. 좀 더 유연한 관점을 원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역사가 증명한 문화의 발전을 본다면 나처럼 고집스러운 부분을 좀 더 유연하게 만들고픈 마음이 들 것이다. 그리고 더 현대 서울에서 열리는 <폼페이 유물전>을 볼 계획이라면 『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 4장 폼페이의 남아시아 여신을 보고 가면 관람이 더욱 즐거울 것이다.




#문장수집


모두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는다. 모든 독창성은 다른 사람에게 빌린 것에서 비롯된다. P. 54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차용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차용했느냐, 또 우리가 발견한 것으로 무엇을 하냐이다. P. 54



문화는 종종 먼 과거와 직면하면서 발전한다. 피루즈 술탄이 그랬던 것처럼 이해하기 힘든 옛 시대의 파편을 발견해서 새로운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P. 95



로마는 다른 역사적 기반에서 다른 언어로 만들어진 문화를 자기네 전통에 접목하는 쪽을 택했다. P. 113



로마의 근간을 이루는 이야기가 된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는 문화 접목의 영광을, 그 가능성과 미묘한 방법을 보여준다. P. 122



복잡한 프레스코화, 아트리움 건물, 극장을 갖춤 폼페이는 로마의 문화적 접목의 결과를 보며 감탄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P. 122



이처럼 여행자는 오해도 하지만 현지 사람들은 너무 익숙해서 관심을 갖지 않는 것에 주목하기도 한다. P. 144



문화 수입이 이루어지면 두 문화가 서로 차용하고 영향을 끼치며 복잡하게 얽혀서 작용하게 되고, 따라서 우월성과 의존성을 둘러싼 불안감을 종종 유발한다. P. 164



무언가가 본래 어디서 나왔는지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이다. 문화는 거대한 재활용 프로젝트이며, 우리는 다음에 사용될 때를 기다리며 그 유적을 보존하는 매개자에 불과하다. 문화에 소유자는 없다. 우리는 다만 다음 세대에 문화를 물려줄 뿐이다. P. 168



<케브라 나가스트>는 문화 차용이 철학과 지혜문학부터 예술과 종교에 이르기까지 의미를 만들어내는 모든 영역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좋은 예이다. P. 200



모든 역사 기록은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왜곡되기 쉽고 모든 일이 끝난 뒤에 설명하려다 보면 시선이 비뚤어지는 법이다. P. 270



문화가 살아남아 번성하는 방법은 카몽이스가 그랬던 것처럼 과거에서 훔쳐 오는 것뿐 아니라 다른 문화에서 발견한 놀라운 요소를 받아들이는 것도 있었다. P. 293



과거의 문화는 새로운 문화가 자라나는 터전이다. '문화 culture'라는 말이 농업 agriculture에서 비롯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과 먼 조상을 연결하고 우리 서로를 연결함으로써 문화를 가꾸어야 한다. 그래야만 의미를 만드는 작업이 계속 이어질 수 있다. P. 430







어크로스에서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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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차용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차용했느냐, 또 우리가 발견한 것으로 무엇을 하냐이다. P. 54 - P54

무언가가 본래 어디서 나왔는지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이다. 문화는 거대한 재활용 프로젝트이며, 우리는 다음에 사용될 때를 기다리며 그 유적을 보존하는 매개자에 불과하다. 문화에 소유자는 없다. 우리는 다만 다음 세대에 문화를 물려줄 뿐이다. P. 168 - P168

문화가 살아남아 번성하는 방법은 카몽이스가 그랬던 것처럼 과거에서 훔쳐 오는 것뿐 아니라 다른 문화에서 발견한 놀라운 요소를 받아들이는 것도 있었다. P. 293 - P293

과거의 문화는 새로운 문화가 자라나는 터전이다. ‘문화 culture‘라는 말이 농업 agriculture에서 비롯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과 먼 조상을 연결하고 우리 서로를 연결함으로써 문화를 가꾸어야 한다. 그래야만 의미를 만드는 작업이 계속 이어질 수 있다. P. 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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