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자키스 지음, 박상은 옮김 / 문예춘추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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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영혼 조르바를 통해 이성보다 깊은 깨우침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읽고 싶은 책 목록에 빠지지 않고 항상 있던 책이 『그리스인 조르바』이다. 문예춘추사에서 박상은 번역가가 조르바의 유머를 유쾌하게 번역하고 풍성한 주석으로 작품의 이해를 넓혔다고 하기에 주저 없이 도전했다. 화자가 조르바에게 빠져들듯이 나 또한 이 책에 빠져들었다. 조르바가 툭툭 던지는 말과 예측할 수 없는 행동에는 삶을 대하는 가볍고도 즐거운 태도가 담겨 있었다.





철저한 이성의 관점으로 보면 조르바의 말과 행동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창문 너머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거부터 내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의 사람이다. 내가 화자였다면 애초에 말조차도 섞지 않았을 사람이 조르바이다. 그러나 나와 정반대인 사람에게 끌린다는 연애 이론이 동성 간에도 들어맞듯이 화자는 저돌적인 조르바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자신의 갈탄 채굴 사업에 조르바를 감독자로 고용한다.









이 책의 핵심은 크레타 섬에서 갈탄 채굴을 하며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에서 보여주는 조르바의 모습니다. 나이는 자신대로 자신 예순이 넘은 할아버지께서 대여섯 살 꼬마 같은 좁은 시야의 사고관을 보여준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부끄러워 숨길 일을 거침없이 이야기하고 행동으로 보여주면서 독자는 계속해서 조르바의 행동에 의문을 품게 된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가장 큰 난관이 여기다. 바로 여성 혐오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 조르바 때문에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힘들다. 이런 책이 고전 목록에 있다니, 이런 내용을 갖고 어떻게 그리스 문학계는 상을 줄 수가 있을까.




여기에서 큰 결심을 해야 한다. 여성 혐오적인 대목보다는 일반적인 사람과 다른 조르바의 행동과 말에 집중해 보자. 이때부터 이 책의 진면목이 모습을 드러나기 시작한다. 삶이란 이상과는 다른 어두운 면이 있다. 이상적이게 돌아가지 않는 삐거덕거리는 세상에서 뻣뻣한 이성으로 살아가는 건 어울리지 않다는 것을 조르바가 보여준다. 이성과 실존의 괴리감 사이에서 산투르를 뜯으며 노래하고 춤추고 일하고 도망치고 사랑하고 떠나는 조르바는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아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조르바의 일생 안에는 전쟁시 군인이 느끼는 괴리감도 있고,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는 여성의 모습이 있고, 가난한 이의 삶이 있다. 민낯이 주는 불편함을 먼저 받아들이고 조르바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조르바의 말속에 담긴 의미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상보다 실질적인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하루는 케이블을 사러 칸디아의 상점에 들렀다가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네. (중략) 손으로는 강철 케이블을 쓸 만한지 보려고 집어 들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인류가 무엇인지, 인류란 왜,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따위를 생각하거든....... 정말 쓸데없는 생각이지.(중략) 정말 중요한 건 내가 살아 있느냐 죽었느냐 하는 문제야. P. 209








혁명과 전쟁으로 피폐해진 삶을 살아내려면 무엇이 중요할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은 곳에서 나를 무력하게 만든 곳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전쟁도 가난도 겪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나 꿈이 좌절되고 무력감을 느끼는 삶이라는 점에서는 조르바가 살던 시대와 같다고 느낀다. 먹고살기 위해 무언가 해야 하지만, 열심히 일해도 쳇바퀴처럼 제자리 도는 현실. 사회를 이끄는 곳에서 만행하는 허례허식. 우리의 삶과 크레타 섬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저 살아내기 위한 투쟁에 가깝다.







난 원래 그런 놈일세. 내 안에 들어앉은 악마가 소리를 지를 때마다 그가 시키는 대로 하지. (중략) 하지만 그때 춤추지 않았더라면 난 정말 미쳐버렸을지도 모르네. 몹시 슬퍼서 말이야. P. 108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건 필라프니까 필라프 생각만 하게. 내일이면 눈앞에 갈탄 광산이 있을 테니 그때 갈탄 광산 생각을 하면 되네. 이러다간 죽도 밥도 안되네! P. 55




조르바를 통해 답답한 마음에 숨통이 조금 틔었다. 같이 춤추고 마시고 눈앞에 있는 것에 집중한다. 바꿀 수 없는 과거가 아니라, 닿을 수 없는 미래가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에 집중하라고 조르바가 말한다. 세상엔 이치가 있지만 딱 들어맞는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세상이 아님을, 어리석은 것처럼 보이지만 세상의 물살에 몸을 맡기는 것. 그게 조르바가 보스를 울릴 뻔한 어리석음이란 조언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무것도 부족한 게 없다고! 정말 아무것도! 단 하나만 빼고 말일세- 어리석음! 그게 바로 자네가 부족한 것이라네, 보스......." (중략) 나는 하마터면 울 뻔했다. 조르바가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P. 427





주어진 삶을 너무 무겁지 않게 대하는 태도와 매일 마주하는 일상의 편린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선사한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조르바처럼 몸의 언어로 말하고, 따뜻한 광대로 세상을 바라보면 좋겠다.







#문장수집


나는 주머니에서 여행의 작은 동반자, 단테가 쓴 <신곡>을 꺼냈다. (중략) 손에 든 작은 책 한 권으로 나는 자유의 환희를 만끽했다. 어떤 구절을 읽든, 이른 아침에 읽는 문장의 운율은 남은 하루 내내 메아리 치리라. P. 16



나는 귀를 막고 그 무시무시한 마귀를 쫓아내려 황급히 내 길동무인 단테의 책을 폈다. (중략) 지난 수백 년 동안 이탈리아 시인들의 입술은 단테의 시구를 노래했다. 소년과 소녀가 사랑 노래로 사랑을 배웠듯이, 이탈리아의 청년들은 피렌체인이 쓴 정열 넘치는 시구로 해방의 날에 대비했다. 몇 세대에 걸친 시인의 영혼과의 교류가 속박된 영혼을 모두 자유롭게 풀어주었던 것이다. P. 52





예순 정도의 야위고 키가 크며 눈이 반짝이는,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유리창에 코를 박고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중략)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노인의 열정적인 시선으로, 불길이 타오르는 것처럼 강렬한 눈빛이 마치 나를 조롱하는 듯했다. 사실이든 아니든,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P. 17




나는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믿지 않네. 오직 나, 조를바를 믿지. (중략) 하지만 조르바만이 내가 지배할 수 있고 꿰뚫어 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서 그렇다네. (중략) 그의 강함이 부러웠다. 인간을 그토록 경멸할 수 있는 강함, 그러면서도 인간과 함께 살고 일하려 하는 것이 존경스러웠다. P. 83




인간은 타락했네. 몸의 언어를 잊고 입으로만 이야기하려고 해. 하지만 입이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단 말인가? P. 109




모든 인간은 어리석다네. 하지만 내가 봤을 때 가장 어리석은 짓은 어리석은 짓을 아예 저지르지 않고 사는 거야. P. 213



조르바 속의 악마 중에 승리한 것은 결국 마음씨 따뜻한 광대였다. P. 309



조르바는 웃음을 터트렸다. "다 마음먹기에 달렸다네." (중략) 그토록 당당하고 대담무쌍하게 돌아가는 그의 정신과 닿은 곳마다 불꽃이 번쩍 타오르는 그의 영혼에 나는 감탄해 마지않았다. P. 320



"난 이제 해방되었어! 자네는 어떤가?"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가 부러울 뿐이었다. P. 327



나는 순간순간 죽음을 생각하네.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두려워하지 않지. P. 386



조르바는 인간과 물질의 목적이 즐거움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했다. P. 387



"자네가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 것보다 더 길지 않아. 어쨌든 자네는 긴 줄에 묶여 있다네, 보스. 자네야 왔다 갔다 하며 자유의 몸이라고 믿겠지만, 절대 그 줄을 자르지는 못할 걸세. 그리고 그 줄을 끊지 못하는 사람은........" P. 426





나는 내 친구들에게 이 위대한 영혼에 대해 곧잘 이야기했다. 우리는 이 배우지 못한 자의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와 이성보다 깊은 깨우침에 감탄했다. P. 434






문예춘추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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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케이블을 사러 칸디아의 상점에 들렀다가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네. (중략) 손으로는 강철 케이블을 쓸 만한지 보려고 집어 들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인류가 무엇인지, 인류란 왜,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따위를 생각하거든....... 정말 쓸데없는 생각이지.(중략) 정말 중요한 건 내가 살아 있느냐 죽었느냐 하는 문제야. P. 209 - P209

난 원래 그런 놈일세. 내 안에 들어앉은 악마가 소리를 지를 때마다 그가 시키는 대로 하지. (중략) 하지만 그때 춤추지 않았더라면 난 정말 미쳐버렸을지도 모르네. 몹시 슬퍼서 말이야. P. 108 - P108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건 필라프니까 필라프 생각만 하게. 내일이면 눈앞에 갈탄 광산이 있을 테니 그때 갈탄 광산 생각을 하면 되네. 이러다간 죽도 밥도 안되네! P. 55 - P55

"아무것도 부족한 게 없다고! 정말 아무것도! 단 하나만 빼고 말일세- 어리석음! 그게 바로 자네가 부족한 것이라네, 보스......." (중략) 나는 하마터면 울 뻔했다. 조르바가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P. 427 - P427

인간은 타락했네. 몸의 언어를 잊고 입으로만 이야기하려고 해. 하지만 입이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단 말인가? P. 109 - P109

모든 인간은 어리석다네. 하지만 내가 봤을 때 가장 어리석은 짓은 어리석은 짓을 아예 저지르지 않고 사는 거야. P. 213 - P213

조르바는 웃음을 터트렸다. "다 마음먹기에 달렸다네." (중략) 그토록 당당하고 대담무쌍하게 돌아가는 그의 정신과 닿은 곳마다 불꽃이 번쩍 타오르는 그의 영혼에 나는 감탄해 마지않았다. P. 320 - P320

나는 순간순간 죽음을 생각하네.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두려워하지 않지. P. 386 - P386

"자네가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 것보다 더 길지 않아. 어쨌든 자네는 긴 줄에 묶여 있다네, 보스. 자네야 왔다 갔다 하며 자유의 몸이라고 믿겠지만, 절대 그 줄을 자르지는 못할 걸세. 그리고 그 줄을 끊지 못하는 사람은........" P. 426 - P426

나는 내 친구들에게 이 위대한 영혼에 대해 곧잘 이야기했다. 우리는 이 배우지 못한 자의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와 이성보다 깊은 깨우침에 감탄했다. P. 434 - P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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