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테이아 - 매들린 밀러 짧은 소설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새의노래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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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단 95쪽 밖에 안되는 짧은 소설이란 것이다.

1시간 남짓 한 시간에 느끼는 전율이 길고 긴 여운을 남길 것이라고 장담한다.





매들린 밀러의 짧은 소설 『갈라테이아』가 출간됐다. 2013년 미국에서 전자책으로 출간된 이후 약 10년 만에 드디어 한국어로 만날 수 있게 됐다. 고전 연구자의 정체성을 갖고 수많은 독자의 요청에도 아주 느린 집필을 고집하는 작가. 신화 속 이름조차 없는 인물에 주목한 작가는 자기 전 번개처럼 스친 생각을 글로 담았다고 한다. 게다가 앞서 <아킬레우스의 노래>와 <키르케>를 번역한 이은선 번역가가 맡아 작업했기에 매들린 밀러의 문체와 흐름을 이했을 것이라 한껏 부푼 기대감을 충족시키기에 더할 나위 없다.





우리가 이 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단 95쪽 밖에 안되는 짧은 소설이란 것에 있다.

피그말리온이 만든 조각상으로 이름조차 없는 이 인물에게 매들린 밀러가 어떤 이야기를 담았는지 반드시 읽어봐야 한다. 1시간 남짓 한 시간에 느끼는 전율이 길고 긴 여운을 남길 것이라고 장담한다.





신화가 가진 대중성과 보편성 덕분에 독자는 갈라테이아의 삶을 상상할 수 있다. 또한 여성이라면 삶으로 체득한 두려움과 공포를 알기에 갈라테이아가 느끼는 감정을 더욱더 공감하게 한다. 그렇기에 독자는 비록 100쪽 남짓의 소설에서 수많은 것을 이해하고 상상할 수 있다.









매들린 밀러는 『갈라테이아』의 여러 이야기 중 사람이 된 이후 결혼 생활을 택했다.


피그말리온이란 이름은 이 소설에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남편 혹은 그라고 불리는 갈라테이아의 소유주이자 창조주가 있다. 신의 축복으로 너무나도 사랑한 조각상이 사람이 되어 자신의 아내가 되지만, 결국 '물건'에서 온 사람은 진짜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한다.





갈라테이아는 자신이 석상이었던 것을 알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아니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 갈라테이아의 과거는 허공의 메아리처럼 내릴 곳을 찾지 못하고 공중에 흩어진다. 간호사에게도 의사에게도 남편에게도 그들이 원하는 말을 해주고 모습만을 보여줘야 받아들인다. 이 부분에서 굉장한 좌절감을 느껴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자(남편인 피그말리온)에 의해 생명을 부여받았으나 갈라테이아의 삶의 의미와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다름’을 감추어야 한다. 상앗빛 피부, 황금 신발, 숨도 차지 않고 계절의 변화도 느낄 수 없는 갈라테이아에게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일 수 없는 긴장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야 하는 불편한 시간을 강제로 살아야 한다.







고통으로 점철된 삶은 갈라테이아에게 무엇을 주었을까. 피그말리온 신화는 철저히 피그말리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자신의 조각상을 너무나도 사랑해서 여신이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갈라테이아의 의지와 행복은 어디에도 없다. 단지 아름다운 존재는 사랑받을 것이고 그 사랑으로 행복할 것이라는 어떠한 논리와 근거도 없는 생각이 우리를 지배했음을 깨닫게 될 뿐이다.




『갈라테이아』가 주는 이야기의 핵심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여성을 객관화 시키는 것은 ‘존중받는 인격체’가 될 수 없다. 남편(피그말리온)의 관심은 온통 자신과 시각적인 아름다움에만 있다. 자신이 얼마나 조각상에 공을 들였는지, 조각상은 그저 자신에게만 아름다워야 하고 기쁨을 줘야 한다.




딱 한 군데 힘든 부위가 있다면 손가락이다. 남편은 게으른 여느 조각가들의 작품과 다르게 뻣뻣하거나 축 늘어지지 않은 진짜 손가락처럼 보이게 하려고 1년이나 공을 들였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P. 14




그가 손으로 뭔가를 가리키며 얼굴을 찡그렸다. “저게 뭐지?” 나는 내 배를 내려다보았다. 희미한 은색 실금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중략) “당신이 돌이라면 깎아서 없애버릴 텐데.” P. 25









갈라테이아는 이 길고 긴 고통을 끝내기 위해 결단을 내린다.

우리 중 일부는 같은 결정을 내리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것만이 답이 아니란 것을 안다. 지난한 싸움을 견뎌오면서 수많은 시도와 도전이 있었고, 결국 젖은 낙엽처럼 살아남는 것이 승리가 됨을 우리는 알게 됐다.




키르케가 길고 긴 세월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견뎌온 것처럼 지금의 우리도 지금을 견디길 바란다. 작가의 결말 뒤에 나는 한 가지 이야기를 덧붙이는 상상을 했다. 갈라테이아가 물 위로 떠올라 파포스에게도 돌아가는 것을, 자신의 삶을 살아가 보는 기회를 얻는 상상을. 자기 안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강인한 면을 마주하는 엄청난 모험을 했다고 그래서 자신을 굳게 믿는 법을 배웠다고 그렇게 상상해 본다.





매들린 밀러는 현대의 신화를 창조하고 있다. 호메로스도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적어 내리며 이런 희열을 느꼈을까. 많은 독자가 삶의 주체가 되고, 내면의 강함을 이끌어 내는 갈라테이아를 만나보면 좋겠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이 이야기에 이면에 있는 수많은 신화와 통념을 찬찬히 훑어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여러 감정이 솟는 부분에서 자신만의 이유를 발견하면 좋겠다. 이야기 안에서 유영하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 고분고분하지 않은 여성 독자가 되길 바라면서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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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 군데 힘든 부위가 있다면 손가락이다. (중략) 그러니까 나는 남편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손을 유지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된다. P. 14





나는 돌이었고 여신이 내게 숨결을 불어넣었지만 임신은 현실 자체였다. P. 26




나는 두 손으로 몸을 가리고 어린애처럼 나지막이 끙끙거렸다. 얼굴아, 빨개져라. 빨개져라. 나는 기도했다. 빨개지지 않으면 저이가 나를 죽일 거야. P.33




파도가 우리 입을 향해 출렁거렸다. 바로 지금이에요, 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나는 기도했다. P. 45




피그말리온의 해피엔딩은 몇 가지 혐오스러운 사실을 받아들인 다음에라야 해피엔딩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착한 여자는 남자를 만족시키는 것 말고는 존재 이유가 전혀 없다는 발상, 여성의 성적 순결에 대한 집착, ‘새하얀’ 상앗빛 피부가 완벽하다는 통념, 여성의 현실보다 우선시되는 남성의 환상.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 갈라테이아에게 할애된 대사는 없다. 심지어 이름도 부여되지 않고 그냥 ‘여자’라고 불린다. P. 53 l 한국 독자들에게 - 매들린 밀러




그런 남자의 아내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만한 사례가 오늘날에도 너무나 많다. 하지만 수 세기에 걸친 다양한 삶을 망라할 정도로 넒은 바다가 되어준다는 것이 훌륭한 신화의 미덕이다. 그 안에서 유영하며 여러분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길 바란다. P. 55 l 한국 독자들에게 - 매들린 밀러






변신 이야기에서 갈라테이아는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하고 그저 ‘상아로 만든 여인’으로 지칭되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우리 여성은 주체가 아니라 객체이자 통제와 억압과 비현실적인 기대의 대상이었고, 그런 현실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P. 57 l 옮긴이의 말 - 이은선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지 않은 이 작품 속의 갈라테이아처럼. 나도 침묵하지 않는 여성들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여자아이들에게 이 역자 후기를 바친다. P.60 l 옮긴이의 말 이은선







새의노래*에서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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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 군데 힘든 부위가 있다면 손가락이다. 남편은 게으른 여느 조각가들의 작품과 다르게 뻣뻣하거나 축 늘어지지 않은 진짜 손가락처럼 보이게 하려고 1년이나 공을 들였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P. 14 - P14

그가 손으로 뭔가를 가리키며 얼굴을 찡그렸다. "저게 뭐지?" 나는 내 배를 내려다보았다. 희미한 은색 실금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중략) "당신이 돌이라면 깎아서 없애버릴 텐데." P. 25 - P25

딱 한 군데 힘든 부위가 있다면 손가락이다. (중략) 그러니까 나는 남편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손을 유지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된다. P. 14 - P14

나는 돌이었고 여신이 내게 숨결을 불어넣었지만 임신은 현실 자체였다. P. 26

- P26

나는 두 손으로 몸을 가리고 어린애처럼 나지막이 끙끙거렸다. 얼굴아, 빨개져라. 빨개져라. 나는 기도했다. 빨개지지 않으면 저이가 나를 죽일 거야. P.33 - P33

파도가 우리 입을 향해 출렁거렸다. 바로 지금이에요, 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나는 기도했다. P. 45 - P45

피그말리온의 해피엔딩은 몇 가지 혐오스러운 사실을 받아들인 다음에라야 해피엔딩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착한 여자는 남자를 만족시키는 것 말고는 존재 이유가 전혀 없다는 발상, 여성의 성적 순결에 대한 집착, ‘새하얀’ 상앗빛 피부가 완벽하다는 통념, 여성의 현실보다 우선시되는 남성의 환상.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 갈라테이아에게 할애된 대사는 없다. 심지어 이름도 부여되지 않고 그냥 ‘여자’라고 불린다. P. 53 l 한국 독자들에게 - 매들린 밀러 - P53

그런 남자의 아내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만한 사례가 오늘날에도 너무나 많다. 하지만 수 세기에 걸친 다양한 삶을 망라할 정도로 넒은 바다가 되어준다는 것이 훌륭한 신화의 미덕이다. 그 안에서 유영하며 여러분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길 바란다. P. 55 l 한국 독자들에게 - 매들린 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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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이야기에서 갈라테이아는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하고 그저 ‘상아로 만든 여인’으로 지칭되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우리 여성은 주체가 아니라 객체이자 통제와 억압과 비현실적인 기대의 대상이었고, 그런 현실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P. 57 l 옮긴이의 말 - 이은선 - P57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지 않은 이 작품 속의 갈라테이아처럼. 나도 침묵하지 않는 여성들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여자아이들에게 이 역자 후기를 바친다. P.60 l 옮긴이의 말 이은선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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