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너에게 겨울에 내가 갈게
닌겐 로쿠도 지음, 이유라 옮김 / 북폴리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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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판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겨울마다 길고 긴 잠에 빠진다. 그런데 왕자의 키스는 소용이 없다고?!







『여름의 너에게 겨울에 내가 갈게』는 웹소같은 콘셉트에 진한 로맨스를 곁들인 일본 소설이다. 가벼운 클리셰에 진중한 사랑을 담았기에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여자 주인공 유키는 겨울만 되면 깊은 잠에 빠지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된다. 유키를 좋아하게 된 아니, 사랑하게 된 나쓰키는 여름에 만난 유키가 겨울이 되면서 사라지자 유키를 찾기 위해 수소문을 한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흥미진진한 이들의 사랑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와토 씨는 어깨를 흔들흔들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여름 한때의 연인이야, 하며 살짝 미소를 띠었다. P. 48








불치병을 가진 여자 주인공이란 설정은 아마 작가의 투병생활에서 나온 게 아닐까 싶다. <스타 셰이커>와 『여름의 너에게 겨울에 내가 갈게』로 2021년 한 해에 두 번이나 수상한 작가 닌겐 로쿠도는 급성 림프성 백혈병으로 투병한 힘든 시간을 경험했다. 글쓰기와 어머니의 헌신으로 병마를 이겨내고 계속해서 글을 쓰고 있다. 귀중한 경험이 바탕이 되어 병원의 모습과 환자를 묘사한 부분이 굉장히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유키가 조금 비틀거리며 걸어와서 의자를 당겼다. 오늘의 주빈. 드디어 깨어난 잠자는 숲속의 공주. P. 191




『여름의 너에게 겨울에 내가 갈게』은 현대의 모습과 고전 로맨스가 가진 절절함과 진중함이 잘 섞여있다고 해야 할까. 오늘의 씨씨(같은 학과나 대학교 내 커플을 이르는 말)가 내일의 남남이 될 수도 있는 대학교 연애생활에 사랑이란 무엇일까 깊이 생각하고 깨닫는 과정이 잘 녹아들어 있다. 병원에서도 확실한 진단을 내릴 수 없는 병을 가진 여자 주인공 유키는 죽음의 공포와 인간관계에서 쌓아가는 신뢰를 적절히 다룰 수 없어 힘들어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긴 겨울 동안 잠을 자야 하기에 누군가 돌봐주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온전히 가족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기에 가족과도 같은 헌신을 해줄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나쓰키는 사랑에도 서툴지만 유키와 일반적이지 않은 사랑을 하는데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 몇 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깨닫게 되는 그 과정이 우리의 삶과 매우 밀접하게 닿아 있다.





우리의 삶은 선형이 아니다. 비례하는 직선이 아니라 단계별로 성장하는 계단형 혹은 떨어지고 올라감을 반복하는 심박수처럼 수많은 산과 계곡을 그리며 서서히 올라간다. 변화를 이끄는 곳에는 커다란 힘이 작용하는 사건이 있다. 『여름의 너에게 겨울에 내가 갈게』에서는 신뢰와 특별함이라 생각한다. 여자 주인공 유키는 독특한 삶을 살면서 사람 간에 갖는 신뢰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됐을 것이다. 자신의 병을 믿어주지 않는 의사와 선생님 그리고 친구들. 8개월 이상 지속하기 힘든 관계와 죽음처럼 기나긴 잠을 겪으면서 자신의 삶이 지속될 수 있는다 믿음을 가지는 것조차 지나친 욕심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작가는 나쓰키의 시점에서 서술하고 있다가 마지막에 유키의 관점에서 서술한 꼭지가 한 꼭지 나온다. 독자인 우리도 유키의 고뇌 즉, 작가의 투병 시절 가진 불안감과 두려움을 한 번 예상해 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반대로 나쓰키가 가진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오만은 곳곳에 잘 드러난다. 특히 유키의 여동생 후유미를 통해 계속해서 언급한다. 대학교 친구이자 동아리 친구인 도모미를 통해서도 그리고 유키의 가장 친한 친구 에나를 통해서도 상기시킨다. 나쓰키 본인이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생각하면서 갖는 책임감과 중압감은 결국 유키를 의심하는 형태, 일종의 배신감으로 추락한다. 그리고 그 특별함을 버릴 때 자유를 얻고 유키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정상이었다. 유키는 유키의 정상으로 살고 있었다. 단지 학교가, 인간관계가, 사회가..., 인간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정상성이 유키의 정상을 비정상이라고 결정지었을 뿐이었다. P. 328









영미권 작품을 주로 읽었기에 일본 작품이 주는 느낌이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선후배 사이에 경직된 분위기가 있는 동아리 회식 문화, 대학교 수업 출석 확인을 실물 출석 카드로 하기도 하고, 학생 명단을 종이로 뽑아서 교수님이 가지고 다니기도 한다. 전자화에 빠르게 적응한 한국인 독자가 보기엔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올법한 장면들 같았다.





도모미는 귀찮아하면서도 가방을 찾아 예비 출석 카드를 건넨다. 이렇게 남을 잘 챙기는 점에는 고개를 들 수가 없다. P. 126





반대로 현대적인 요소도 많이 나오는데 바로 케이팝과 마블 캐릭터다. 넷플릭스 드라마와 스타워즈 레고도 나오는데 이 모든 요소가 누구나 아는 공통적인 배경지식이 된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음악학과 소유의 실외용 스피커 두 대에서 곧바로 소녀풍 케이팝이 흘러나왔다. P. 56



화면상의 커서가 위치하던 <기묘한 이야기>의 시즌 2 최종화가 멋대로 재생되는 바람에 당황해서 리모컨을 조작해 멈췄다. P.151



프로필 사진은 입을 마스크로 덮은 치켜 올라간 눈매의 외국인이었다. 끝까지 보지는 않았지만, 어깨의 붉은 별 마크를 알아보고 무심코 말했다. "<캡틴 아메리카> 재미있지." (중략) 옛날에 본 영화를 떠올리자 추측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중략) 윈터 솔저는 개조되어 겨울 땅에서 사는 냉철한 암살자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가장 친한 친구인 캡틴 아메리카를 생각하고 있다. P. 190




발바닥에는 레고 블록이 박혀 있었다. 바닥과 거의 비슷한 크림색이라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블록을 빼내고 비틀비틀 일어서서 현관에 장식한 밀레니엄 팔콘호 옆에 놓았다. 상자도 설명서도 진작 버렸기 때문에 어디서 나온 부품인지는 모르겠다. P. 219







남자 주인공인 나쓰키가 여자 주인공 유키를 찾기 위해 유키의 본가를 찾아가는 장면에서도 예상한 것과 달라서 신기했다. 나쓰키는 나고야행 기차표를 친구에게 사는데 심지어 종의 표다. 유키의 동생 후유미는 나쓰키에게 크게 불편하고 어색함 없이 대한다. 유키의 어머니 도코와 아버지 레이지는 나쓰키에게 굉장히 호의적으로 대한다. 매력적인 유키의 캐릭터 때문인지 수많은 이성은 유키에게 관심을 두고 있고 가질 수 없는 유키를 깎아내리기도 한다. 단 한 명 있는 가장 친한 친구 에나는 일반 남자들 보다 키가 크고 덩치가 좋아 남자로 오해받기도 한다. 그리고 유키의 모든 것을 이해해 주는 굉장히 너그러운 마음을 지니고 있으며 중요한 순간에 나쓰키를 도와준다.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일본 소설 『여름의 너에게 겨울에 내가 갈게』를 보면서 독자들도 소중한 유키의 여름을 만끽해 보면 좋겠다.










"내일 또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사람을, 깨어 있는 채로 기다려주는 밤거리를 좋아해." 이 관계의 이름 같은 건 지금 어찌 되어도 좋다. 지금은 그저, 이 사람 곁에 있을 수 있다면 그걸로 좋다. 틀림없이 그런 여름이다. P.43








"하지만 좋아하게 되는 게 아니라, 어느새 좋아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 게 아닐까?" P. 81







그때 나는 이 사람을 따라 연기가 자욱한 술집을 빠져나갔다. 그제야 비로소 남에게 맞추지 않으면 숨을 쉴 수 없던 내 모습에서 한 발짝 나아갈 수 있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분명 나는 '창작'과 마주하는 갈등의 출발선에 설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P. 205














북폴리오에서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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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토 씨는 어깨를 흔들흔들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여름 한때의 연인이야, 하며 살짝 미소를 띠었다. P. 48 - P48

"내일 또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사람을, 깨어 있는 채로 기다려주는 밤거리를 좋아해." 이 관계의 이름 같은 건 지금 어찌 되어도 좋다. 지금은 그저, 이 사람 곁에 있을 수 있다면 그걸로 좋다. 틀림없이 그런 여름이다. P.43

- P43

"하지만 좋아하게 되는 게 아니라, 어느새 좋아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 게 아닐까?" P. 81 - P81

유키가 조금 비틀거리며 걸어와서 의자를 당겼다. 오늘의 주빈. 드디어 깨어난 잠자는 숲속의 공주. P. 191 - P191

그때 나는 이 사람을 따라 연기가 자욱한 술집을 빠져나갔다. 그제야 비로소 남에게 맞추지 않으면 숨을 쉴 수 없던 내 모습에서 한 발짝 나아갈 수 있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분명 나는 ‘창작‘과 마주하는 갈등의 출발선에 설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P. 205 - P205

정상이었다. 유키는 유키의 정상으로 살고 있었다. 단지 학교가, 인간관계가, 사회가..., 인간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정상성이 유키의 정상을 비정상이라고 결정지었을 뿐이었다. P.328 - P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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