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불편한 공존
마이클 샌델 지음, 이경식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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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다는 착각』의 마이클 샌델 교수의 신간이 나왔다.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는 엄밀히 말하자면 개정판이긴 하다. 하지만 책의 반 정도를 새로 썼기 때문에 신간이라고 봐도 괜찮을 것이다. 이 책은 1996년에 출간됐고, 한국에는 2012년 『민주주의 불만』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왔다. 27년 만에 개정판을 내면서 마이클 샌델 교수는 현시점에서 필요로 하는 이야기를 책에 넣었다.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이 책은 한마디로 '고진감래'라고 할 수 있다. 처음 한 두 챕터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책을 읽다 보면 조금씩 이해가 가고 마지막에 가서야 전체적인 흐름이 잡힌다. 하나씩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이 하나의 큰 그림을 이루듯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책을 펼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드는 생각은 민주주의에 관한 책이 맞나 싶었다. 미국 정치 역사를 열거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생소 용어투성이에 남의 나라 역사와 경제학자, 주 의원, 정부 기관과 대표자 이름이 나오니 분명 한국말인데 외국어를 읽는 기분이었다. 익숙한 미국 대통령 이름만 나와도 반가워서 읽다 보면 공약과 정책은 또 너무 낯설었다. 대학교 신입생 때 정치학 입문 수업을 들었던 게 생각났다. 대학 신입생 때 정치학 입문을 신청하고 수업을 못 따라가서 나와 정치는 안 맞는다 생각했는데 인간은 어리석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패기 넘치게 정치 책을 펼쳐 들다니.





그래서 민주주의 이야긴 언제 나오는 건데......?









부족한 나의 배경지식과 정치 경제 이해도를 극복하기 위해 그리고 조금이라도 민주주의를 알. 기. 위. 해. 모든 단락과 챕터를 요약하고 용어 개념을 정리하며 책을 읽어 나갔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든 여정이었으나 그 끝에는 달콤한 성취감과 미국이 걸어온 민주주의의 길이 희미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에서 말하는 민주주의는 미국 독립 이후 현재까지 걸어온 정치 경제 역사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해서 정부를 세우고 미국인 스스로 나라를 어떤 방향으로 어떤 정치제도로 치리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농업 중심에서 제조업 중심으로 그리고 세계화와 금융업의 발달로 이어져오면서 정치철학이 어떻게 바뀌었고 어떤 이념이 서로 부딪쳤는지 그 전체적인 흐름을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책에서 거론하는 정치인과 정치 이념의 모든 장단점을 열거하지는 않는다. 나 같은 일반 독자와 대중이 잘 모르는 부분이면서 중요한 요점만 짚어준다. 이것이 마이클 샌델 교수의 장점이자 단점인데, 문제만 제기하고 명확한 답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영화도 소설도 열린 결말이 더 작품성 있다고 하지 않는가. 마이클 샌델 교수는 현시대에 딱 떨어지는 답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며 독자에게 사실을 전달하고 생각해 보게 한다.





정치는 필요한 것과 가능한 것 사이에 일어나는 지속적인 협상 과정이다. P.387





우리는 모두 시간이 지나면서 옳다고 믿는 것이 변하거나 혹은 잘못됐다고 깨닫는 경험을 해봤다. 당시에는 명확한 답이 없던 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객관화해서 볼 수 있다. 당시에는 잘못되거나 마음에 안 드는 결정이어도 결국 더 나은 결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한다. 미국 정치 역사에는 무수히 많은 이런 결정이 존재했다. 요즘은 너무도 당연한 임금노동을 당시에는 자유노동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각자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지금은 노예가 없지만 당시에는 노예소유와 무임금 노동이 당연했다. 국제무역이 멈추면 우리 일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음을 경험한 현재지만 19세기 초에는 국제 통상으로 미국 경제가 무너질 것이라고 염려했다. 결과를 미리 알고 있는 우리겐 쓸모없어 보이는 이 모든 주장과 대립이 있었기에 국민자치가 제대로 길을 걸어갈 수 있던 것이다.








노예 노동도 노예제 폐지(법적으로 봤을 때) 이전에는 자유노동자의 비참함을 근거로 타당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공화주의자들이 시민은 덕을 갖추어야 한다든가 잭슨주의자들이 중앙집권적 경제 권력을 두는 것은 견제해야 하는 것 등은 현시대에도 충분히 근거 있는 주장이다. '거대함의 저주'는 규모의 경제 부분은 큰 혜택을 주었으나 노동자의 노동가치는 평가절하시켰다. 우리 사회엔 좋다 나쁘다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는 문제가 가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확하게 옳지 않은 것, 지켜야 할 것은 있다고 책에서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비록 자유노동자 각자에게 특정한 주인이 따로 있지는 않지만, 그들 자신은 가진 것 없이 가난한데 다른 사람이 자본을 가지고 있는 상황 때문에 노예가 된다. P. 107



자유노동과 노예제를 구분하는 것은 노동에 대한 동의 여부가 아니라 독립성에 대한 전망, 즉 언젠가는 자기 소유의 생산수단을 가지고 고용주나 노예주가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일할 기회 여부였다. P. 117





과거나 현재나 자기 소유의 생산수단 혹은 자본을 마련하기는 매우 어렵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더 나은 미래를 기대했지만, 현실의 고용주나 자본 소유자는 임금노동자의 급여나 처우 개선에 관심이 전혀 없다. 마트에서 18년 근무한 직원의 월급이 아직도 170만 원이라는 뉴스를 접하곤 한숨이 나왔다. 19세기 미국이나 현재의 한국이나 노동자의 현실은 변한 것이 없다. 국민의 대부분이 노동자임에도 자치에 관여하거나 할 수 있는 부분이 없는데 어디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역대 미국 대통령의 정책을 보면서 열불이 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트럼프야 또라이 이미지가 있기에 선거공약을 안 지켰다고 해도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그러나 오바마는 한국에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고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타이틀로 선구자에 정의로운 이미지가 있어서 굉장한 충격을 안겨줬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이면서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국력을 갖고 있는 나라의 가장 높은 정책자가 이럴 수 있나 싶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결국 인간은 특히, 권력이나 재산을 많이 가진 인간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대통령이라고 해도 결국 속한 정당과 정당에 기부라는 명목으로 로비하는 기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자금이 에너지 사업과 금융업에서 나오고 있고 실로 그 금액은 나 같은 소시민의 상상을 뛰어넘을 것이다.





숭실대 철학과 김선욱 교수의 해제도 도움이 됐다. 책을 3분의 2쯤 읽었을 때 과연 내가 이해한 게 맞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 참지 못하고 해제를 펼치곤 독서의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있었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우리의 사회적 삶을 감싸고 있는 자본의 힘에 대해 시민의 민주주의적 역량으로써 어떻게 대항하여 '모두가 바람직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공공선 또는 공동선을 창출할 것인가'에 주목한다. 이것이 샌델 교수가 이 책에서 집중하고 있는 정치경제학의 목표이며, 우리가 모르는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P. 428







미국을 이해하기 위해 한국 독자들 특히, 젊은 세대가 책을 꼭 읽었으면 한다. 미국은 우리나라 정치 경제와 가장 밀접한 나라 관련이 있는 국가다. 우리가 받아들인 민주주의는 미국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우리는 점점 미국을 닮아간다. 수많은 한국의 인재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고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그 체재와 관념을 한국으로 가져와 접목시키기 때문이다. 경제 정치적으로도 의존도가 높다 보니 미국의 정책에 영향을 많이 받고 또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약소국의 입장에서 무조건적인 수용을 하기 보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의 구절처럼 우리도 우리의 미래를 진지하게 토론하고 판단해야만 한다.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온갖 힘들의 형태를 새롭게 구성하고자 하는 시민적 열망은 이제 우리에게 여름이 지나면 과연 가을이 올 것인가를 놓고 진지하게 토론하고 또 판단하라고 말한다. P. 390





와이즈베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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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필요한 것과 가능한 것 사이에 일어나는 지속적인 협상 과정이다. - P387

비록 자유노동자 각자에게 특정한 주인이 따로 있지는 않지만, 그들 자신은 가진 것 없이 가난한데 다른 사람이 자본을 가지고 있는 상황 때문에 노예가 된다. - P107

자유노동과 노예제를 구분하는 것은 노동에 대한 동의 여부가 아니라 독립성에 대한 전망, 즉 언젠가는 자기 소유의 생산수단을 가지고 고용주나 노예주가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일할 기회 여부였다. - P117

마이클 샌델 교수는 우리의 사회적 삶을 감싸고 있는 자본의 힘에 대해 시민의 민주주의적 역량으로써 어떻게 대항하여 ‘모두가 바람직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공공선 또는 공동선을 창출할 것인가‘에 주목한다. 이것이 샌델 교수가 이 책에서 집중하고 있는 정치경제학의 목표이며, 우리가 모르는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 P428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온갖 힘들의 형태를 새롭게 구성하고자 하는 시민적 열망은 이제 우리에게 여름이 지나면 과연 가을이 올 것인가를 놓고 진지하게 토론하고 또 판단하라고 말한다. - P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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