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윌북 클래식 호러 컬렉션
에드거 앨런 포 지음, 황소연 옮김 / 윌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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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을 기다린 윌북의 호러컬렉션이 드디어 출간됐다.


무더운 여름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어 줄 컬렉션이 나와주길 고대했는데 온몸을 꽁꽁 얼리는 추운 겨울을 맞이해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냈다. 첫사랑 컬렉션도 한눈에 보고 반했는데 호러컬렉션은 더더욱 아름답다.





예쁜 표지도 한몫하지만 오랜 시간 사랑받는 클래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번역이라 생각한다. 원문의 뜻을 가장 적합하게 모국어로 전달하는 번역이야말로 사랑받는 작품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통로인 것이다. 차별 없는 번역과 올바른 표현을 지향하는 윌북 출판사를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호러컬렉션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에드거 앨런 포의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이렇게 세 권이다. 오싹한 제목과 더불어 공포물을 못 보는 나이기에 주저함이 좀 생기긴 했지만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이 어떤 건지 알고 싶었다. 이 중에서도 추리 소설의 시초로 자주 언급되기도 하고 공포 문학의 선구자인 에드거 앨러 포의 작품인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을 골라 보았다.










에드거 앨러 포의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은 무서우면서 아름다웠다. 기괴하고 매혹적이었으며 쓸쓸하고 차가웠다.


대부분의 작품이 실제와 상상의 경계선에 있는 회색빛 죽음을 서술했고, 인간 본성 안에 깊이 자리 잡은 욕망을 꺼내 마구잡이로 펼쳐 놓은 것 같았다.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의 첫 단편 작품인 '어셔가의 몰락'을 읽었을 때는 당혹스러움에 마지막 부분을 두세 번 정도 다시 읽었다. 내가 이해한 게 맞는지 확인하는데 정말로 집이 무너져 내릴 줄이야! 제목부터 매력적인 '검은 고양이'에선 내면의 광기와 동시에 갖는 두려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안으로 와락 불어닥친 돌풍 때문에 우리는 날아갈 지경이었다. 폭풍이 몰아치는데도 너무나 공포스러우면서도 아름답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이상하게 기이한 밤이었다.


P.30 ㅣ 어셔가의 몰락




그 대목에서 나는 순전히 객기로 손에 쥐고 있던 지팡이로 벽을, 사랑하는 아내의 시체가 세워진 지점을 세차게 두드렸다. 그래도 신은 마왕의 송곳니에서 나를 보호하고 지켜주시겠지 하고서!


P.105 l 검은 고양이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은 일반적인 사건의 진행이나 사고를 따르지 않았다. 사랑과 애정의 표현이 상대방을 죽음에 몰아넣거나 신체의 일부를 소유하고픈 기괴한 욕망으로 표현하거나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기괴한 일이 일어난다. 글 안에서 일어나는 초자연적인 현상에서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고 죽음을 상상하게 된다.









에드거의 작품 속에서는 죽은 시신이 관에서 깨어나 나오는 내용이 많다. 사랑하는 사람이 어딘가에서 살아 있을 거란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누구나 하는데 에드거도 이 생각을 많이 했나 보다. 더불어 관 안에 뉜 자신을 상상했나 보다. 정신을 잃고 좁고 어두운 관 안에서 깨어나 살려고 몸부림칠 때 밀려오는 두려움. '때 이른 매장'에선 매장한 관 안에서 살아 나올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기도 한다. 마치 이런 종류의 죽음을 수도 없이 많이 생각한 것처럼 느껴진다.




'미라와의 대화'에서부터는 에드거의 글의 깊이가 깊어졌다고 느껴졌다. 저자의 박식함과 다양한 주제에 관심이 있음이 느껴지고 독자인 나도 에드거의 슬픔에 글이 주는 공포에 익숙해졌음을 느꼈다. 죽음을 '잠드는 것'으로 그러나 세상이 내는 소리를 다 귀담아듣고 있을 수 있는 '침묵의 시간'으로 묘사하였다. 작가에게 죽음이란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고 그 너머에 무언가 있음을 알게 된 것 같았다.




어른이 되어 읽은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읽어 참 다행이다. 어릴 적에 읽었다면 글이 주는 공포감에 검정고양이조차 쓰다듬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했다. 단순한 글 너머에 있는 작가의 생각은 어떤 것일지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생각할 수 있는 어른 독자이기에 '윌리엄 윌슨' 작품도 곱씹어 볼 수 있다. 이름도 외모도 똑같은 동급생은 내 안의 다른 자아일 것이다. '리지아'와 '베르니스'는 사랑했던 그러나 나와 같은 생각을 갖지 않은 상대였을 수도 있다. '붉은 죽음의 가면극'은 마치 아라비안나이트 같은 이국적인 느낌을 주었다. 그 안에 색이 다른 붉은 창은 피로 얼룩진 사건을 암시하는 듯했고, '절룩 개구리'에선 복수의 기회를 잡은 이방 노예에게 연민이 느껴졌다. 작가는 글 속에서 자유로웠다. 가장 큰 두려움인 죽음과도 마주했고 살인도 마주했다. 고대의 지식을 직접 들었고 누군가의 뒤를 쫓기도 했다.




19세기 초 급변하는 사회와 발전하는 과학이 에드거의 글 곳곳에 묻어 나온다. 골상학과 고고학을 담고 있으며 북유럽의 어부와 중동의 이국적인 건축양식뿐만 아니라 유대인에 대한 일종의 선입견도 그대로 글에 드러난다. 200여 년 전 글을 읽고 바로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번역이 잘 되었단 말이기도 하다. 자연스럽게 읽혀서 금세 글에 빠져들 곤 에드거 특유의 으스스한 분위기에 팔과 등골이 오싹해진다.





기상이변으로 별장에서 공포 소설을 읽었던 메리 셸리와 바이런처럼 이례적인 한파에 따뜻한 집에 머물며 윌북의 호러컬렉션을 읽어 보는 건 어떨까.







나와 이름이 같은 그 녀석은 거드름을 떨지 않고 조용히 위엄을 풍기는 성격이라 아킬레우스의 발뒤꿈치 같은 약점은커녕 그저 장난의 통렬함을 즐길 뿐 조롱거리가 되는 법이 없었다.


P.68 ㅣ윌리엄 윌슨




애석하게도 인간의 양심은 종종 무덤에 들어가야만 풀리는 천 근 같은 짐을 짊어지곤 한다. 그렇기에 모든 죄악의 본질은 새어 나가지 않는다.


P.107 l 군중 속의 남자




허풍으로 드릴지 모르겠지만...... 이건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런 식으로 죽는다면 참으로 장엄하겠구나, 하느님의 힘이 드러난 그 경이로운 광경 앞에 서서 시시하게 내 살 궁리나 하고 참으로 어리석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지요.


P.141 l 소용돌이 속으로의 하강




아내는 감정 기복이 심한 나를 두려워했다. 게다가 나를 피하기만 하는데 어찌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몰랐겠는가. 하지만 나는 그것이 기쁘기만 했다. 인간이 아니라 악마의 증오심을 가지고 아내를 혐오했기 때문이다.


P.222 l 리지아








출판사에서 책으로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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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와락 불어닥친 돌풍 때문에 우리는 날아갈 지경이었다. 폭풍이 몰아치는데도 너무나 공포스러우면서도 아름답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이상하게 기이한 밤이었다. - P30

그 대목에서 나는 순전히 객기로 손에 쥐고 있던 지팡이로 벽을, 사랑하는 아내의 시체가 세워진 지점을 세차게 두드렸다. 그래도 신은 마왕의 송곳니에서 나를 보호하고 지켜주시겠지 하고서! - P105

나와 이름이 같은 그 녀석은 거드름을 떨지 않고 조용히 위엄을 풍기는 성격이라 아킬레우스의 발뒤꿈치 같은 약점은커녕 그저 장난의 통렬함을 즐길 뿐 조롱거리가 되는 법이 없었다. - P68

애석하게도 인간의 양심은 종종 무덤에 들어가야만 풀리는 천 근 같은 짐을 짊어지곤 한다. 그렇기에 모든 죄악의 본질은 새어 나가지 않는다. - P107

허풍으로 드릴지 모르겠지만...... 이건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런 식으로 죽는다면 참으로 장엄하겠구나, 하느님의 힘이 드러난 그 경이로운 광경 앞에 서서 시시하게 내 살 궁리나 하고 참으로 어리석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지요. - P141

아내는 감정 기복이 심한 나를 두려워했다. 게다가 나를 피하기만 하는데 어찌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몰랐겠는가. 하지만 나는 그것이 기쁘기만 했다. 인간이 아니라 악마의 증오심을 가지고 아내를 혐오했기 때문이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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