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폴리스맨
베선 로버츠 지음, 민은영 옮김 / 엘리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표지부터 무척이나 예쁜 책이다. 



『마이 폴리스맨』은 경찰인 톰을 두고 부인 매들린과 동성 연인 패트릭의 시점으로 풀어내는 끝내 가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다.




『마이 폴리스맨』은 매리언의 시점으로 시작한다. 당신이라고 지칭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처음엔 조금 혼란스러웠다. 매리언이 '나의 폴리스맨'인 톰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라 생각해서이다. 독특하게도 매리언은 남편의 연인인 패트릭에게 이 글을 쓰고 있으며 『마이 폴리스맨』은 매리언과 패트릭의 시점으로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서술한다.


톰의 시점은 나오지 않아 명확하게 밝혀지진 않는다.







패트릭, 이 모든 얘기를 털어놓는 건 나와 톰 사이가 어땠는지 알려주기 위해서다. 우리 사이에 고통만이 아니라 다정함도 있었다는 걸 당신이 알도록. 우리 둘 다 실패했지만 우리 둘 다 노력했다는 걸 알도록.

P. 321







이 소설은 내 예상을 모두 뒤엎는다. 유명한 퀴어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처럼 설렌 관계를 다룰 것이라 생각했으나 『마이 폴리스맨』에선 짧은 행복 뒤엔 긴 고통만이 남는다.



표면적인 줄거리만 읽으면 패트릭의 서술에 더 마음이 간다. 매리언보다 더 애절하고 마이클과 슬픈 헤어짐 이후로 톰에게 조심스레 마음을 열고 깊이 사랑에 빠진 모습이 보인다. 사회가 금기한 사랑에 온 열정을 다하는 로맨티시스트로 보이기까지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왜 매리언보다 패트릭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것일까.


작가가 의도한 서술이 패트릭에게 무게를 좀 더 두고 있기도 하다. 패트릭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하게 감정적으로 다뤘다. 매리언의 입장과 감정은 우리에게 익숙해서 패트릭의 입장이 되어보려는 독자의 무의식적인 시도도 있는 것 같다. 더 슬픈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당신은 빠르게 앞으로 걸어 나왔고, 마음먹은 곳에 다다라 톰의 손을 움켜쥐고 나서야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잘 재단된 조끼를 입고 빽빽한 턱수염을 기른 사람, 1500년대부터 1900년까지의 서양미술을 담당하는 사람의 것이라기엔 놀라울 정도로 소년 같은 미소였다.

P. 100





난 당신을 꽤 좋아했다. 그리고 톰도 당신을 좋아했다. 톰이 당신 말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고 당신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둘이 있을 땐 늘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P. 108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법정 변호사처럼 이리저리 서성거리며 그가 말한 이런 생활에 관한 한 두 가지 진실을 늘어놓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이런 생활. 나의 삶을 뜻하는 말. 타자들의 삶을 뜻하는 말. 도덕적으로 방종한 사람들, 성범죄자들을 가리키는 말. 사회가 고립과 두려움과 자기혐오의 나락으로 밀어낸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

P. 265







나는 당신에게 이날에 대해 절대 말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이건 내 비밀이었다. 당신과 톰에게는 비밀이 있고, 이제 내게도 비밀이 생겼다. 사소하고 해롭지 않은 비밀이지만, 나만의 비밀이었다.

P. 390









나는 기적의 성모 - 익사한 남자를 되살려냈다고 알려진 - 그림이 있는 제단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린 여기 살아야겠다." 베네치아의 가능성을 단 이틀 맛보았을 뿐이었지만 나는 그렇게 말했다. "우린 여기 살아야겠다." 그리고 톰의 대답은 이랬다. "우린 달로 날아가야겠다." 하지만 그의 얼굴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P. 445








스포일러 있어요












톰은 매우 이기적이다.

『마이 폴리스맨』에서 톰의 시점이 나오지 않는 것도 이런 이기적임을 감추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톰은 자신을 사랑하는 두 사람 매리언과 패트릭을 이용해서 모든 이익을 취하려고 한다. 가정이 주는 안정감, 부인이 해주는 가정일, 사회적인 인정을 위한 발판은 매리언에게서 얻고 연인이 주는 사랑, 수준 높은 교양적 지식, 상류층이 누릴법한 문화생활은 패트릭에게서 얻으려 한다. 일반적으로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톰은 패트릭에게 자신을 '공유'해야 한다고 조건을 걸며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는다.




매리언이 최대 피해자이다.

톰과 결혼을 하면서 매리언은 원하는 걸 얹지 않았냐고 물을 수도 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렇겠지만 그 결과는 어떠한가. 매리언은 평생을 톰의 사랑에 목매고 그로 인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매리언은 결혼이라는 행위만 원한 것이 아니다. 결혼을 함으로써 톰이 자신에게 집중했으면 했다. 가정을 돌보고 부인을 사랑하고 오래도록 함께하며 서로에게 정들길 바랐다. 모든 사람은 진정한 사랑을 원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형식적인 것만으로도 만족을 얻겠지만 텅 빈 공허함으로 남은 평생을 고통받는다면 그것보다 불행한 것이 어딨을까.









패트릭의 이야기 속에서 게이의 생각이 어떤지 어떤 식으로 사랑을 얻는지 엿볼 수 있다. 톰을 꼬시면서도 하룻밤 성관계를 원한다. 성소수자가 모이는 술집에 가면서도 사람들의 눈을 피해가는 방법을 능숙하게 해낸다. 바에서 어린 친구를 꼬시기도 하고 직장에서 자신을 감추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지도 안다. 톰과의 관계를 위해 앞에서 매리언을 칭찬하면서 일기장에는 매리언을 흉보는 말을 적어 놓는다. 모두 톰을 안전하게 만나기 위한 거짓 행동일 뿐이다. 여유가 있는 패트릭은 톰과 만남을 이어가기 위해 돈과 시간을 아낌없이 쓴다.




매리언은 패트릭이 감옥에 가고 뇌졸중으로 쓰러진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자책한다. 계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매리언이 패트릭의 직장에 익명으로 편지를 쓴 후 패트릭이 잡혀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패트릭이 감옥에 가게 된 후로 자신의 남편 톰이 직장을 그만두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무척 괴로워한다. 명확하게 매리언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매리언은 남은 평생 죄책감을 갖고 살아가고 톰과 패트릭의 관계를 다시이어주기 위해 노력하다 결국엔 뇌졸중으로 쓰러진 패트릭을 간병하기까지 한다. 매리언의 순수한 사랑은 결국 죄책감으로 스스로를 좀먹는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매리언의 직장동료 줄리아이다. 매리언의 고민을 들어주다 자신이 '전도된 성적 취향'을 갖고 있다고 매리언에게 말해버린다. 그리곤 매리언 곁을 떠나기 위해 직장을 옮긴다. 패트릭과 톰의 행동과는 정 반대의 모습이기 때문에 줄리아의 결정이 더 슬프게 다가왔다. 자신의 욕심, 즉 만족을 이루려고 매리언의 삶을 이용한 톰과는 달리 매리언의 마음을 이해하고 떠나는 줄리에의 심정은 어땠을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두고 남성과 여성이 내린 선택은 확연히 다르다. 톰과 엮이기 위해 거짓 프로젝트를 만든 패트릭과 매리언이 힘들 때 술 한잔하며 이야기를 들어준 줄리에 사이엔 무엇이 있는 것일까.







줄리아가 해변에서 나를 힘껏 붙잡아준 일을 떠올리며 다시 그렇게 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는 되풀이해 말할 뿐이었다. "가엾은 매리언."

P. 409






1950년대 영국 브라이튼에서 성소수자를 어떻게 대했는지 다룬 소설을 흥미롭게 잘 읽었다. 제목을 '나의 순경님'이라고 해도 잘 어울렸을 것 같다. 소설은 다양한 시대의 다양한 삶을 엿볼 수 있다. 비가 추적이는 영국의 거리를 보게 된다면 매리언, 톰, 패트릭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동명의 영화로 아마존 프라임에서 개봉 예정이다. 2022년 11월 4일 개봉이라고 하니 우리나라 극장이나 OTT에서도 올해 안에는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해 본다. 원 디렉션의 해리 스타일스가 나의 순경님 톰 역할을 맡았다고 하니 어떻게 연기했는지 궁금하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마이폴리스맨 #mypoliceman #베선로버츠 #엘리 #엘리출판사 #마이폴리스맨원작소설 #퀴어소설 #영국배경소설 #해리스타일스



패트릭, 이 모든 얘기를 털어놓는 건 나와 톰 사이가 어땠는지 알려주기 위해서다. 우리 사이에 고통만이 아니라 다정함도 있었다는 걸 당신이 알도록. 우리 둘 다 실패했지만 우리 둘 다 노력했다는 걸 알도록. - P321

나는 당신에게 이날에 대해 절대 말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이건 내 비밀이었다. 당신과 톰에게는 비밀이 있고, 이제 내게도 비밀이 생겼다. 사소하고 해롭지 않은 비밀이지만, 나만의 비밀이었다. - P390

줄리아가 해변에서 나를 힘껏 붙잡아준 일을 떠올리며 다시 그렇게 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는 되풀이해 말할 뿐이었다. "가엾은 매리언." - P40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