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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랜더 1
다이애나 개벌돈 지음, 심연희 옮김 / 오렌지디 / 2022년 9월
평점 :

허무맹랑한 생각일지언정, 아무리 봐도 지금 내가 있는 곳은 18세기 후반의 관습과 정치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이었다.
P.111
무엇이 나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모르겠다. 의식하지 못한 채로 마음을 빼앗겼다는 게 맞는 거겠지.
타임슬립물이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어릴 적 봤던 <하늘은 붉은 강가>라는 만화책이다. 낯선 과거로 가는 것에 두려움보다는 호기심과 설렘이 더 컸다. 누군가 나를 보호해 줄 사람을 만나는 설정이기 때문이다. 소설로 읽는 『아웃랜더』는 조금 더 현실적으로 다가와서 약간의 긴장감을 갖고 읽었다.

『아웃랜더』는 2차 세계대전을 무사히 마친 영국 종군 간호사 클레어가 종전 기념으로 남편과 함께 결혼식을 올린 스코틀랜드에 두 번째 신혼여행을 오면서 시작한다. 6년간의 전쟁 기간 동안 떨어져 있었기에 다시 시작하는 의미로 똑같은 장소로 다시 신혼여행을 왔지만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200년 전으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되면서 겪는 이야기다.
이국적인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18세기 하이랜드 지역의 모습과 사람들의 모습을 아주 잘 묘사했다. 잘 짜인 전개와 긴박함도 읽는 재미지만 수위 높은 로맨스와 동물학과 해양생물학을 전공한 다이애나 개벌돈의 자연 묘사도 무척 아름답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표현하기 힘든 주인공 클레어의 내면 묘사와 관찰을 토대로 한 생각이 참 마음에 들었다. 주인공 클레어가 종군 간호장교였기에 의학 관련 지식과 민간요법이 나오는 부분도 매우 흥미로웠다.

우연히도 최근에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서거로 인해 많은 미디어가 영국 왕실 계보를 언급했다. 얽히고설킨 왕실 역사에 필연적으로 『아웃랜더』의 배경이 되는 18세기 스코틀랜드와 영국의 관계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미국 작가 타국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것도 흥미로웠고, 영국인 입장의 시각이 많이 녹아 있는 것도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신기하게도 630쪽이 넘는 『아웃랜더』 1권은 눈 깜짝할 새에 후루룩 넘어갔다. 배우 윤여정 님처럼 『아웃랜더』 이야기에 푹 빠져버린 것이다.
『아웃랜더』는 1991년도 나온 소설이긴 해도 주인공 클레어의 당찬 모습과 똑똑함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낯선 곳에서도 기죽지 않고 자신이 살았던 20세기 가치관을 200년 사람들에게 거리낌 없이 이야길 할 줄 아는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곳곳에 있는 아주 작은 아쉬움은 30년 전에 쓰였기 때문에 문학적 허용(?)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스포일러 있음**


주인공 클레어가 굉장히 멋지게 나온다.
6년간의 전쟁에서 수간호사로 일하면서 생명을 부지한 것도, 수많은 전쟁 부상자를 치료한 것도 멋있었다. 비록 의사가 아니라 간호사라는 설정이 조금 아쉬웠지만 1940년대가 배경이었기에 받아들이기로 했다. 의학지식은 시대를 막론하고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것임을 절실히 느꼈다. 특히 200년 전 가벼운 질병에도 생사가 오가던 시절에는 말이다. 168cm로 작지 않은 키의 클레어지만 여성이기에 체구나 체력적으로 약해서 계속해서 겁탈을 당할 일이 생기는 게 화도 나도 답답했다. 그래도 나중에 칼을 사용하는 법을 배운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후반부에 제이미와 다툴 때 클레어가 한 말은 내가 약자로써 가진 세뇌된 생각을 일깨워 주었다. 만약 내가 클레어와 같은 상황이면 저런 태도를 지니고 거침없이 말할 수 있을까? 낯선 곳에서 누군가를 신뢰하며 의지할 수 있을까? 저런 긴박스러운 상황에서 이성을 유지하고 차분하게 판단할 수 있을까? 소설에 푹 빠져 읽으면서도 현실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는 나를 보면서 뭔가 씁쓸하기도 하면서 이 소설의 흡입력을 몸소 체험했다. 밥 먹을 때도 궁금해서 읽었고, 자고 일어나면 뒷이야기가 궁금해 책을 찾았다. 독자의 현실에 영향을 주면 엄청난 글이 아닌가!

이국적인 스코틀랜드 모습이 흥미롭다.
전통복장인 킬트를 입고 씨족마다 다른 색상의 타탄 무늬와 그 시절 의복과 성채 등 소설에서 묘사하는 것이 흥미롭고 재밌다. 특히 춥고 척박한 지역에서 속옷도 안입고 치마를 입는 남성의 복장은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웃랜더』에서는 굉장히 멋있게 묘사를 했지만 현대인인 나에겐 멋지기보단 흥미로운 역사사료 같다.
영국군과 대치하는 매켄지 가문의 모습은 강자보다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여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역사는 강자의 입장에서 서술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다이애나 개벌돈이 묘사한 낯선 이름의 나무와 풀, 꽃, 새 등은 직접 가서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동명의 넷플릭스 드라마가 인기를 얻은 후 스코틀랜드 관광이 늘었다는 게 아마 이런 이유 같다. 현대 도시에 살면서 알아볼 수 있는 동식물이 몇 안 되는 걸 깨닫기로 했다. 구체적인 이름보다 나무와 꽃 등으로 뭉뚱그려 고유한 정체성을 흐릿하게 만드는 현대사회에 안타깝기도 했다. 효과 좋은 현대 의약품이 뛰어나기는 해도 자연이 주는 치유와 베풂은 등한시하고 있다고 느끼기도 했다. 따듯하게 우려 마시는 차 한 잔에도 좋은 효과를 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소설이 주는 맛이 있다.
『아웃랜더』를 읽기 전에 동명의 넷플릭스 드라마를 몇 편 봤다. 첫 화의 중반을 넘어가니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어 자제해야 했다. 장면 전환과 짧은 대사에서 알 수 없던 주인공의 내면과 스코틀랜드의 아름다움을 소설에서 만끽할 수 있었다.
특히 의식하지 못한 행위와 낯선 곳에서 느끼는 감정이 와닿았다. 깊이 사색할 기회가 없이 바쁜 현대를 살아왔기에 느끼는 감정을 명확하게 말로 표현하거나 정의 내리기 어려웠다. 클레어를 통해 나의 생각을 명확하게 짚어주는 것이 신기했다.

주인공 제이미와의 관계도 다각적으로 바라보고 생각하게 하는 부분도 참 좋았다. 단편적으로 낯선 곳에서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좋아하고 의지하는 감정과 사랑으로 넘어가는 복잡 미묘한 감정을 클레어가 생각하고 고민해 보고 때로는 질투도 느끼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결혼했으니 제이미를 남편으로 단정 짓는 것이 아니라 실제 남편인 프랭크를 사랑하는 마음과 다른 매력의 제이미를 사랑하는 마음을 동시 갖는다. 그리고 언젠간 자신이 속한 세계로 가기 위해 제이미에게 완전히 마음을 주지 않는 고민을 하는 것도 좋았다. 일반적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사랑에 매몰되는 주인공을 묘사하기 마련인데 클레어는 자신이 처한 상황과 확실히 알지 못하는 제이미의 이익 등을 계속해서 고민하고 비교해 보려 한다.


그리고 수위 높은 장면 묘사! 아니 이 책이 19금이 아니라니요.
나만 얼굴을 붉히고 읽은 것인가요? 개인적으론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365일>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 것 같다. 굉장히 예의 바르고 조심스러운 제이미의 태도와 대사에 매우 흡족했다. 아마 무례하기 짝이 없는 랜들 대령과 대비돼서 더 그렇게 느낀 것도 있겠지만 젊고 키도 크고 몸도 좋고 따지면 집안도 좋고 교육도 잘 받은 상대가 성관계에 매우 정중한 태도로 임하면 읽는 독자도 매우 만족스럽다. 여성 독자의 마음을 아주 잘 아는 다이애나 개벌돈의 남주 설정에 박수를 보낸다. 소설에선 정확하게 클레어의 나이가 나오진 않지만 제이미가 클레어 보다 10살 정도 어린것 같다. 키는 30cm 정도 크고 몸무게도 30kg 정도 차이 난다고 나오니 서양 판타지 백 점이네요.

빠른 시일 내에 2권을 구해서 봐야겠다. 국내에는 『아웃랜더』 1,2 권만 나오고 다음 시리즈는 준비 중이다. 조속히 번역되어 시리즈 모두가 나오길 기대해 본다. 드라마도 2014년에 시작해 시즌 6까지 나오고 완결이 아직 안 났다고 한다. 이렇게 맛만 보여주고 애타게 할 건가요? 오렌지디 힘내주세요!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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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맹랑한 생각일지언정, 아무리 봐도 지금 내가 있는 곳은 18세기 후반의 관습과 정치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이었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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