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부터 일만 광년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지음, 신해경 옮김 / 엘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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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과감한 설정, 거침없는 문체


지금 읽어도 놀랍고 충격적이다.




『집으로부터 일만 광년』안에 13편의 단편 소설이 담겼다. <엄마가 왔다>와 <구원>을 제외한 나머지 11편은 독립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나면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커다란 관념 세계 안에 담긴 유기체처럼 느껴진다.



제임스의 소설이 흥미로운 이유는 작가의 희망과 바람이 소설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인류는 멸망 위기를 극복하고 살아남는다. 주인공은 시련을 극복하려 노력하고 인류의 발전은 실패를 거름 삼아 계속 발전하는 양상을 띄고 있다. 조금은 비관적이고 자조적인 문체를 띄면서도 그 안엔 인류가 만들어 놓은 문화와 역사를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스포일러 있음**





<눈은 녹고 눈은 사라지고>는 시작부터 놀라움과 궁금증의 연속이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도 연상되기도 했다. 에티오피아의 산등성이가 등장하는 것도 놀라웠다. 소설을 읽기 전 우연히도 에티오피아 다큐멘터리를 봤기 때문이다. 인류 문명의 시작이자 발전의 가속도에 올라타지 못한 아프리카 대륙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설은 읽을수록 더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팔이 없는 소녀와 늑대는 어떻게 만났을까? 왜 야생인은 소녀를 쫓는 것일까? 늑대는 왜 발작을 하고, 본즈는 누구일까? 소설을 읽을 때보다 읽고 나서 더 많은 상상을 하게 했다. 뉴스레터에 나온 대로 눈이 존재하지도 않는 아프리카 대륙을 배경이지만 제목은 왜 눈(snow)가 등장할까? 인류가 멸망한 건 빙하기를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상상력엔 한계가 없는 듯했다.







<엄마가 왔다>와 <구원>은 비교적 다른 단편에 비해 이해하기 쉬운 소설이다. 인류의 위기, 특정하자면 건장하고 잘생긴 남성의 위기를 역발상으로 구해낸 이야기다. 아프리카 노예무역이 생각나기도 했고, 성차별을 꼬집은 이야기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각기 다른 종류의 외계인의 방문에 상반된 태도를 나타내는 지구 대표자들의 모습도 재밌다. 인간이 지닌 단순한 의식체계를 보여주는 것 같으면서도 선입견을 콕 집어 이야기로 풀 수 있는 작가의 능력이 놀랍기도 했다.








<허드슨베이 담요로 가는 영원>는 슬픈 사랑 이야기에 놀라운 결말을 담겨 있다. 시간 여행이 가잔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보여주는 이야기다. 조예은 작가의 <러브, 칵테일, 좀비>의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도 떠올랐다. 자녀를 소유물처럼 여기는 아버지가 결국엔 자녀의 불행을 자초할 수밖에 없는 전형적인 이야기임에도 미래에서 온 사람의 사랑고백엔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뭉클한 감정이 담겨 있다.






<다이아몬드 가득한 하늘에 계신 어머니>는 이 책 제목인 『집으로부터 일만 광년』이 담긴 편이다. 결말을 알고 나서야 제목의 다이아몬드를 이해할 수 있었다. 모자간의 애증과 사랑,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은둔과 외로움, 아주 먼 미래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고용불안과 마약범죄는 인류와 뗄 수 없이 영원한 숙명임을 여실히 드러낸다. 반전과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는 마치 한 편의 영화 같기도 했다. 전화위복이기도 하며 주인공 골램의 실수이자 우연이기도 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은 어디까지였나 가늠해 보기도 했다.







중간중간 나오는 과학 용어, 역사 이야기는 작가의 지적 세계가 얼마나 많은 것을 품고 있는지 엿볼 수 있게 해주었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본명은 앨리스 브래들리 셸던이다.)는 유년 시절 부모님과 함께 아프리카와 인도를 여행했고, CIA 정보원, 군 정보원, 예술 비평가, 화가 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했으며 실험심리학으로 박사학위도 받았다. 아마도 글을 쓰기 위한 자료조사보다 작가가 알고 있는 방대한 지식의 조합으로 글을 쓴 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보았다. 작가 본명과 성별을 숨긴 채 글을 써야 했던 시대가 가진 인식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더욱더 과감하게 글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집으로부터 일만 광년』안에 담긴 남성적으로 느껴지는 묘사와 시선이 우리게 주는 충격까지도 소설적이라는 추천사에 격렬한 동의를 표한다.






1960년~70년대 미국 SF 소설이 낯설기도 하고,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과감하고 놀라운 필력을 담아낼 그릇이 부족하여 시간을 많이 들여 읽었다. 그러나 『집으로부터 일만 광년』은 나에게 새롭고도 놀라운 미래를 그려보는 계기를 주었다. 현대의 소설과 영화와는 다른 미래를 상상해 봤고, 또 하나의 멋진 여성 작가를 알게 됐다. 고도로 발전된 미래에도 여전히 사랑받는 대중음악이 있고, 반복된 역사에서 배울 점을 찾아 새롭게 마주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도 재밌었다. '바삭바삭 시리얼'로 기억되는 지구를 찾는 여행을 하는 먼 미래에도 제임스의 소설이 사랑받길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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