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로스트 키친 - 어떤 마음은 부서지지 않는다
에린 프렌치 지음, 임슬애 옮김 / 윌북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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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로스트 키친>을 읽다 참지 못하고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어 먹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다이너의 모습과 먹어본 적도 없는 음식이 눈앞에 펼쳐지는듯했다. 코끝에선 버터 향이 진하게 풍기는 듯한 착각도 들었다. 밤중에 갓 튀긴 도넛을 구하진 못하지만, 녹진하게 계란물을 머금은 프렌치토스트를 먹으며 에린이 일하는 다이너를 상상해 보고 싶었다.



기다란 조리대 끝에서는 할아버지가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다가 커다란 튀김기에 넣었다. 글리에서 시작해 튀김기로, 튀김기에서 시작해 그릴로 음악이 이어졌다. 할아버지가 뜨거운 기름에서 뜨끈뜨끈한 도넛을 둘, 넷, 여섯 개 꺼내서, 옆에서 진득하게 기다리던, 할머니의 손에 들린 기름종이 깔린 접시 위에 내려놓았다.

P.21




영화에서 본 기억들을 그러모아 에린 아버지의 다이너를 상상하며 주방에서 일하는 에린과 함께 요리를 해볼 수 있었다. 책을 읽고 있노라면 에린의 어깨너머로 프리덤의 풍경과 다이너의 일상이 눈앞에 그려진다.




낯선 이에게 내 두 손으로 정성을 다해 만든 요리 한 접시를 대접하며 친밀감과 연결감을 느끼고, 처음 한 입을 맛본 그가 혀에 닿은 음식의 맛과 질감을 즐기며 표정으로 반응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 그것은 순진하고 커다란 만족감을 주었다.

P.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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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에서 '세상에 가장 멋진 공간들' 중 하나로 꼽히고, <블룸버그>에서는 '바다를 건너갈 만한 가치가 있는 음식점 12곳' 중 하나로 꼽힌 <<더 로스트 키친>>

이곳을 만들기까지 에린 프렌치의 삶은 길 잃은 식당(더 로스트 키친)처럼 삶의 방향을 잃은 듯 보였다.






다소 냉랭한 아버지의 태도와 성인이 될 때까지 벗어날 수 없는 가정환경에 답답함을 마주하며 에린의 대학 합격 소식에 같이 기뻐하고 고민했다. 큰 도시로 나가면, 대학을 졸업하면 희망이 있지 않을까? 자유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복선이 깔린 글을 보면서 불안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당시에는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했던 것이 어떻게 에린을 옥죄고 그의 발목을 붙잡을지 몰라 불안했다.




프리덤은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곳이 아니었다. 우리는 성장기 동안 반복해서 '무언의 알림'을 받았다.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인생을 보람차게 살고 싶다면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고. 프리덤은 꿈을 실현하는 곳이 아니라고.

P.26





애써 참아낸 눈물이 도르륵 굴러떨어졌다. 집에서, 카페에서, 도서관에서

한 장 한 장 읽다 잠시 책을 덮었다. 와락 울어버릴까 바서




다들 낙태해야 한다고 난리였지만, 나는 아기를 낳았다. 그리고 나 같은 벽지 출신 여자아이들에게는 두 번째 기회는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2년의 대학 경험을 뒤로하고 중퇴했다.

P.92




책 막바지에 다달아선 참지 못하고 왈칵 눈물을 쏟았다. 다행이라서, 희망이 있어서, 행복해서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찾고 자신을 구속하는 것에서 해방되어 당당해진 에린과 그의 가족을 보면서 안도의 눈물이 또 났다. 오늘도 울보가 되었다.



로스트 키친이 개업하고 5년이 지났을 때, 디에나, 나의 어머니는 35년 넘게 이어졌던 아버지와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 이혼했다. 아버지를 떠나면서 그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을 가둬두었던 껍데기를 찢고 다시 태어났다. 새로 태어난 어머니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P. 367



7월의 어느 따듯한 아침, 제임은 더는 앳된 티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나, 돌아가고 싶지 않아."

나는 제임을 막지 않았고, 톰은 그 애를 막을 수 없었다.

P. 377





에세이라기엔 소설 같은 에린 프렌치의 삶은 굳이 애써 말하지 않은 우리 주변 누군가의 삶이라 생각했다. 태평양 건너 그 먼 곳도 비슷한 삶이라니... 아들이 아니라서 가시 같은 말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고, 사랑처럼 보이는 속박과 구속에 순응해야 했던 삶도 살아야 했다. 나도 아들로 태어났어야 했다는 말을 무척이나 많이 들었다.



내 평생의 소망은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는 것이었다. 착한 맏딸에게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했다.

P.90




주어진 삶에 순응할 수밖에 없지만 순응하면 할수록 더 깊은 악순환의 굴레에 빠져드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봐왔다. 적나라하고 슬퍼서 본인조차 마주하기 힘들었던 과거를 대중에게 그것도 사라지지 않는 글로 남기는 것은 방금 난 상처에 소금을 뿌리듯 굉장히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에린 프렌치는 아픈 상처를 덮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곪고 아픈 부분을 과감히 드러내고 아픔을 참아가며 치료했다. 그 치료는 <더 로스트 키친>을 보는 나에게도 스며들고 있다.




에린의 힘든 나날을 보면서 느낀 그 마음을 같이 느끼고, 용기 내 일어서는 그 마음을 나누어 받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같이 느끼고, 나 스스로 나를 다독이고 있는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그 마음을 나누어 받았다. 제임이 엄마와 함께 하고픈 그 마음에 어떤지, 디에나가 오랜 세월 견뎌낸 마음이 어떤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 책을 쓰는 작업은 지금껏 했던 일 중에 가장 힘들었다. 글쓰기는 나를 고통스러웠던 시절로 데려가 그때를 다시 경험하게 했고, 세세한 정보와 찰나의 순간들까지 종이 위해 쏟아놓게 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느라 괴로웠지만, 나의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과 힘을 불어 넣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써내려 갔다.

감사의 말 중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 애쓰는 에린의 모습은 나의 한쪽 구석과도 닿아있었다. 가족에게서, 남자친구에게서, 아이에게서, 남편에게서, 직장에서 완벽하려고 애쓰고 인정받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아님을 알지만 불안한 마음은 계속해서 스스로를 옥죈다. 아픈 경험이지만 스스로가 안정적으로 설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닫는다. 약물의존에서 벗어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굳건하고 안정적인 상태로 지내는 것. 그리고 한 발짝 더 나아가 서로를 믿고 위하고 협업하는 직장 동료들까지 안정적이게 서로를 맡길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어머니의 독립을 지지하고 새로운 동반자를 만나 성숙한 지지를 감사하는 에린 프렌치의 모습이 내가 배우고 추구해야 할 모습이라 생각했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함께 삶의 이유를 찾았다. 이곳에서, 외딴 시골 마을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우리는 함께 성장했다. 작은 공동체를 형성해 서로를 안아 일으키고, 응원하고, 사랑했다. 함께 이혼, 화해, 이별, 불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임신, 유산을 견대냈다. 함께 출산, 결혼, 중요한 순간들, 심지어 새로운 사랑도 축하했다.

P. 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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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아픔을 통해 희망과 용기를 싹트게 해준 에린 프렌치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언젠간 나도 나의 이야기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살아갈 용기와 희망을 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리고 '더 로스트 키친'에 방문해 따뜻한 에린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흔들리는 촛불 사이로 잔을 부딪히고 잔잔하게 깔린 음악 위로 웃음소리가 가득 차면서 다 지나왔다고 이제는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고 서로에게 도닥 이면 좋겠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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