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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에 빠지는 방법 - 쉽고 재미있는 와인 가이드
그랜트 레이놀즈.크리스 스탱 지음, 차승은 옮김 / 제우미디어 / 2021년 9월
평점 :
와인의 매력에 빠진 것은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으로 여행을 갔을 때 아름다운 기억 때문이다.
작은 골목길에 줄지어 놓인 테이블에서 하우스 와인과 카프레제를 주문하고 여행자의 상기된 얼굴로 즐거움을 만끽했다. 이오니아 해를 바라보는 절벽에 자리한 작은 레스토랑에서 앤초비 파스타와 스테이크와 함께 마신 화이트 와인과 가게 주인이 건네준 리몬 첼로는 아직도 입안에 침이 고이게 한다.
2020년 한국 와인 시장 규모가 1조 원을 돌파했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와인시장 2위를 유지하고 있다. 트렌드에 민감한 소비자와 어디서든 쉽게 와인을 구할 수 있는 인프라 덕이다. 당장에 근처 편의점과 마트만 가도 자그마한 와인 섹션에 전 세계 와인이 즐비하다.
다행히 손쉽게 와인을 접할 수 있게 되었지만 생소한 와인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알아가야 할지 막막한 나에게 <와인에 빠지는 방법>은 아주 좋은 가이드가 됐다. 강렬한 색으로 채워진 와인잔이 그려진 표지부터 책을 접하는 초보의 마음을 한결 편하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아담한 사이즈와 얇은 두께도 말이다. 초보자의 눈높이에 맞춰 질문에 답해주는 이 책은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놓을 세가 없이 후루룩 읽게 된다. 마치 술자리에서 만난 친구가 내가 모르는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와인의 매력에 더 깊이 빠져들게 하는 아주 적절하게 간단하고 재밌는 요령을 제공하는 책이다. 케이팝이 좋아서 다양한 음악과 뮤직비디오를 찾아보지 논문을 찾아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로제 와인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일단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을 조금씩 섞은 것은 아니다. 그렇게 만들면 망한다.
우리도 한 번 시도해보았는데, 입맛만 버렸다.
- P. 26 -
자주 묻는 질문에서 요즘 핫한 내추럴 와인을 쉽게 설명해 준 것과 레드와 화이트를 섞어서 만드는 거 아니냐는 로제 와인의 일반적인 질문에 우리도 만들어봤지만 망했다는 답변이 매우 재밌었다. 괴짜 같기도 하고 와인에 진심인 것 같기도 한 저자의 어투가 그대로 글에 담겨 있었다.
와인을 생산하는 세세한 지역을 구분하다 보면 머리가 아플 지경인데 여기선 유명한 와인 위주로 굵직하게 나누어 조금 알은체 할 수 있는 지식을 전달한다. 그리고 정보가 많이 없는 시칠리아 와인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이야기해 주어 매우 흥미로웠다. 현지에서 많이 즐기지 못해 아쉽지만 매력적인 와인시장 2위인 우리나라에 점점 많은 시칠리아 와인이 수입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와인숍에서 에트나 로쏘를 주저 없이 집어왔다. 에트나 화산지대 특유의 테루아로 미네랄이 풍부하고 오묘한 향이 난다고 하니 예전에 마셨을 땐 아무것도 모르고 인상 쓰며 먹었던 기억을 새로 바꾸고 싶었다.
꼭 알아야 하는 와인 29 파트는 정말 정말 실용적인 부분이라 열심히 읽었다. 어디선가 다 들어봤지만 정확히는 모르는 와인 이름들이었다. 지역과 생산자와 포도 종이 뒤섞여 머릿속에 윙윙 돌던 부분이 간단하게 정리됐다. 내가 마셔본 와인과 시도할 와인을 나누며 읽는 재미도 있었다.
저자가 괴짜 같은 부분은 책의 마지막에 있다. '와인 리스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잘 아는 것처럼 보이는 방법'이라니, 누가 책을 쓰면서 이런 부분을 넣을 생각을 했을까? 트위터에서나 볼 법한 이 내용은 진짜 와인 초보에게 필요한 부분이다. 와인을 구매할 때 쭈뼛대며 목적에도 없는 큰 지출을 한 적이 많은 나에겐 왜 진작에 이 책이 나오지 않았지?라는 의구심도 들게 만들었다. 예산과 범주를 정하고 무엇보다 자신감을 갖는 것! 몰라도 당당하게 조언을 구하라.
와인숍이 통유리로 되어 있고 안에 와인들이 줄줄이 정직하게 세워진 곳을 본 적이 있다. 당시에는 조금 독특한 인테리어네라고 넘겼지만 <와인에 빠지는 방법>을 읽어보니 괜찮은 와인 가게에 정확히 반대로 된 곳이었다. 물론 마트처럼 순환이 빠른 곳과는 다르게 와인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곳이라면 애정을 갖고 보관하며 최적의 상태를 유지해야 할 것 같지만 기대와는 다른 판매자도 있기 마련인가 보다.
입에 레드와인을 듬뿍 묻힌 북극곰을 보니 니스에서 로제 와인을 마시고 싶어 니스를 가려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 책에서 가이드 한 대로 코르크가 아닌 스크루 캡인 로제 와인이나 화이트 와인을 들고 샌드위치 하나 사서 뜨거운 지중해 태양 아래서 차갑게 식힌 와인을 마시는 상상. 백신 접종률이 급격히 올라가고 있는 요즘 다시 여행을 갈 수 있단 희망이 피어오르고 있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와인을 시작하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모르는 이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원제인 How To Drink Wine 보다 국내 제목인 <와인에 빠지는 방법>이 더 어울린다. 책을 읽고 나면 와인에 빠져버린다. 그리고 코끝에 가장 맛있게 먹었던 와인향이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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