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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락궁이야, 네 집을 지어라 ㅣ 모해 창작동화 1
안수자 지음, 정인성.천복주 그림 / 모해출판사 / 2020년 11월
평점 :
『한락궁이야, 네 집을 지어라』는 신화를 바탕으로 서사를 빚고 있다. 다양한 화소를 지니고 있는 우리 신화인데도 그리스 로마신화처럼 아이들이 볼 수 있는 책들이 많지 않음을 인식한 작가는 제주신화 '한락궁이와 서천꽃밭'을 가져와서 스토리텔링을 했다.
천년장자가 아버지인 줄 알고 자란 한락궁이가 천부가 서천꽃밭의 꽃감관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천년장자의 무서운 개들에게 쫓겨 흰 사슴을 타고 도망간 그 길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한락궁이가 아버지를 찾아가는 길이 정말로 그렇게 쉬웠을까? (지은이의 말 중에서)
꼬리를 잇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행간을 읽는 작가의 탁월한 상상력이 작용했음을 볼 수 있다.
아리아는 할머니와 둘이 산다. 며칠 전 할머니가 갑자기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한다. 친할머니가 아니지만, 세상에 의지할 사람은 할머니밖에 없다. 아리아는 할머니가 죽을까봐 두려워서 병원에 가지 못한다. 불안하고 무서운 아리아는 할머니의 비밀 서랍에서 『한락궁이야, 네 집을 지어라』라는 책을 발견한다. 할머니 책 속에서 한락궁이가 걸어 나온다. 할머니가 직접 그려놓은 책을 매개로 환상 세계로 들어간다.
둘은 할머니의 상상 속 숲인 천태산에서 숨트일꽃을 찾는다. 아리아는 할머니를, 한락궁이는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서다. 둘은 눈 속에 묻혀 얼어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약초꾼 수피아를 만나 살아난다. 친구가 된 세 사람은 숨트일꽃을 찾기 위해서 천태산으로 가지만 찾지 못한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생명을 걸어야 하는 상태에 이른다. 주요등장인물이 완수해야할 과제의 가치가 크면 클수록 쉽게 이루어질 수 없음을 보여준다.
한락궁이는 아버지가 있는 서천꽃밭에 가기 위해 힘들게 서천강을 건넌다. 하지만 아버지는 없고, 꽃밭은 꽃 한 송이 찾아볼 수 없어서 절망한다. 한락궁이가 숨트일꽃을 잃어버려서 깊은 꽃들이 깊은 잠에 빠진 것이다. 한락궁이는 서천꽃밭을 살리기 위해서도 숨트일꽃을 찾아야 한다.
한락궁이는 숨트일꽃을 찾아서 어머니를 살리고 서천꽃밭도 살릴 수 있을까? 아리아도 중환자실에 있는 할머니를 살릴 수 있을까? 극적 질문을 던지며 전개되는 서사는 읽는 내내 긴장감을 놓지 않게 한다.
하지만 찾으려는 숨트일꽃은 보이지 않고 멸망꽃이 나타난다. 한락궁이는 멸망꽃을 가지고 가서 천년장자를 죽이겠다고 한다. 한락궁이의 분노와 멸망꽃이 만나서 한락궁이를 파괴적으로 변하게 한 것이다. 급기야 말리는 아리아에게 폭력을 쓴다. 그러면 엄마와 서천꽃밭을 살릴 수 없을 거라는 수피아의 외침에 한락궁이는 폭력을 멈춘다. 정신을 차린 한락궁이는 멸망꽃을 불속에 던져버린다. 그제야 숨트일꽃이 나타난다.
“나와 멸망꽃은 양면 거울의 앞뒷면과 같단다. 넌 앞면인 멸망꽃만 보고 있었던 거지. 거울 앞에 서면 절대로 뒷면은 볼 수 없잖아.” (p.98.)
“… 한락궁이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버린 거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텐데 정말 고마워. 네가 우리 모두를 살렸어.” (p.96.)
멸망꽃과 숨트일꽃은 어둠과 빛 같은 존재이다. 양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할 때, 잘못된 선택을 했다면 과감히 거울을 깨는 용기가 필요하다. 한락궁이가 멸망꽃을 불속에 던져 태우듯이.
아리아, 한락궁이, 수피아는 숨트일꽃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많은 일을 겪는다. 특히 선택이 잘못된 것을 깨닫고 바로잡는 부분은 행동하는 용기를 보여주고 있다.
『한락궁이야, 네 집을 지어라』 는 신비로운 배경,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위기에 몰리는 주요 등장인물, 긴장감 있는 구성으로 서사전개가 흥미진진하다. 환생꽃, 숨트일꽃, 피오름꽃, 살오를꽃, 웃음꽃, 울음꽃, 멸망꽃도 서천꽃밭 이미지를 돕고 있다. 또 수피아를 돕는 놈, 얼굴만 사람인 사람물고기, 몸은 인간이고 머리는 메기인 메기사람 등도 신비로움을 주고 있다.
상상력을 바탕으로 개성 있는 서사를 보여주는 『한락궁이야, 네 집을 지어라』 는 독자를 책 읽는 즐거움에 기꺼이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