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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 아수라 병원 ㅣ 웅진책마을 107
원유순 지음, 소복이 그림 / 웅진주니어 / 2020년 2월
평점 :
질문에서 비롯한 상상력의 확장
『바닷속 아수라 병원』
내가 내린 곳은 낡아빠진 난파선 앞이었어. 삐딱하게 기울어진 선체는 사방이 녹이 슬어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바스러질 것 같았어. 깨진 창문에는 미역 줄기와 다시마 즐기가 커튼처럼 일렁였어. 그 모습이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어.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요즘 용궁은 이런가 싶었어. (p.49.)
『바닷속 아수라 병원』은 작가가 상상력을 확장하여 형상화한 작품이다. 경험하지 않은 것, 현재에 없는 대상을 직관하고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능력을 상상력이라고 한다. 상상력이 풍부한 작품을 읽으면 머릿속이 환해지고 읽는 재미가 가미된다.
몇 해 전, 노르웨이의 바닷가에 향유고래 한 마리가 파도에 떠밀려 왔다. 열 살 정도밖에 안 되는 고래의 뱃속에 무려 백 킬로그램에 달하는 쓰레기가 공처럼 뭉쳐 있었다. 그 기사를 본 작가는 ‘육지에 동물병원이 있듯이, 바닷속에 물고기들을 위한 병원이 있다면…?’ 하는 질문을 했고, 질문은 상상력으로 이어져 『바닷속 아수라 병원』을 탄생시켰다.
동물병원 수의사인 엄마가 사라진다. 아빠와 승리는 엄마를 찾기 위해 애쓰지만 찾을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승리는 엄마의 휴대폰으로 온 문자를 받고 바닷속으로 가게 되는데….
『바닷속 아수라 병원』은 별주부전의 상황과 겹쳐서 남생이의 등장, 용왕의 등장이 친숙하다. 그래서 승리가 남생이를 타고, 돌고래를 타고 물속으로 가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바닷속 아수라 병원은 낡아빠진 난파선이다. 다시마 이파리들이 이어붙인 칸막이 안에는 산호 껍질과 조개껍데기로 만든 병상이 줄지어 있다. 초라한 병상에는 바다 생물들이 앓고 있다. 승리는 인간들이 만든 재앙을 직접 보게 된다.
한참 만에 상어의 배 속이 눈에 들어왔어. 상어의 배 속에는 그야말로 각종 잡동사니가 그득했어. 페트병을 비롯해 플라스틱 컵, 플라스틱 빨대, 찌그러진 알루미늄 캔, 비닐봉지 같은 생활 쓰레기들이 가득했어. 정말 끔찍했지. (p.66.)
남생이는 바닷속 사태에 대해 말한다.
“백년 넘게 살다 보면 세상 이치쯤은 훤히 꿰뚫어 볼 수 있지. 그러나 여전히 알 수 없는 건 왜 우리가 인간들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 거야.”(p.92.)
죄 없는 바다 생물들이 인간들 때문에 고통받는 것을 남생이가 항변하고 있는 것이다.
남생이를 따라 바닷속 아수라 병원을 다녀온 승리는 생태의식이 성장한다. 그래서 바닷속을 지키겠다는 생각을 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중요성도 깨닫는다. 엄마처럼 적극적으로.
하지만 승리 혼자 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에, 모두 관심 갖고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열린 결말 안에 담고 있다.
『바닷속 아수라 병원』은 ‘바닷속에 물고기들을 위한 병원이 있다면…?’하는 질문에서 비롯한 상상력 확장의 실제를 음미할 수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