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새똥 맞은 할아버지 ㅣ 브로콜리숲 동시집 42
유홍례 지음, 이유란 그림 / 브로콜리숲 / 2023년 5월
평점 :
동심은 힘이 세다!
『새똥 맞은 할아버지』
유홍례 (지은이), 이유란 (그림) | 브로콜리숲
세월이 흐름에 따라 사람도 늙어간다. 생로병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게 삶이다. 하지만 동심으로 꾸려진 『새똥 맞은 할아버지』 동시들을 읽으면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분임을 느끼게 한다.
2차 백신을 맞은 후유증으로 힘든 시간을 견디며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머리글)을 때, 시인을 일어서게 한 것이 동심이다. 시인은 물에 떠내려갈 때 하얀 드레스를 입은 아이가 물 밖으로 끌어 올려 주고 사라지는 꿈을 꾼다. 동심과 손잡게 이끌어 준 수호천사라고(머리글) 여기며 시인은 힘을 낸다. 얼마나 힘든 시기였을지 가늠이 되어 콧등이 시큰해진다. 동심 아이를 만나 힘을 낸 게 고마울 따름이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길어 올린 동시들은 미소 짓게 하고, 애틋하게 하고, 그립게 한다.
아랫마을이 궁금해/바람 썰매 타고 쌩쌩 달려온 눈//
온 세상이 수북수북/ 하얀 놀이터 만들고//
신나게 뛰노는 아이들 발밑에서/ 덩달아 소리치는 중//
뽀드득 빠드득/뽀드득 빠드득// (함박눈 전문)
물활론으로 만나는 함박눈이다. 함박눈은 하늘 세상에서 땅세상이 궁금한 아이의 캐릭터를 지녔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 함박눈은 땅세상으로 내려와 온통 하얀 눈 놀이터를 만든다. 아이들이 신나게 뛰노는 발밑에서 함박눈도 덩달아 신나서 소리친다. 뽀드득 빠드득.
겨울 추위에도 웅크리지 않고 가슴을 쫙 펴는 해맑은 아이 이미지로 함박눈을 형상화했다. 동심의 힘이다. 눈 온 날, 발소리가 유의미하게 다가올 듯하다.
작은 품속으로 /훅 파고든 바람//
얼마나 추웠으면 /내 허락도 받지 않고 들어왔을까?//
얼떨결에 폭!/ 여민 옷깃 속에서//
오싹오싹 오스스/오싹오싹 오스스// (겨울바람 전문)
매서운, 살을 에는 겨울바람도 시인의 동심을 만나면 사랑스러운 바람이 된다. 얼마나 추웠으면 들어가도 되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허락받지도 않고 아이 품속으로 파고들었을까? 얼떨결에 품었지만 오스스 떨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지금껏 겨울바람을 밀어내기만 했지, 품으려고 한 적은 있는지 자문해 본다. 세상을 보는 시인의 따스한 시심이 전해진다.
산책길 옆 / 아기 업은 꼬부라진 나무//
“꽉 잡거라 떨어질라/ 둥가 둥가 둥가 둥.”//
슬쩍 봐도/ 딱!
어릴 적 / 날 업어주던 우리 할머니// (할머니 나무 전문)
시인은 산책길 옆에 등 굽은 나무도 예사로이 지나치지 않는다. 꼬부라진 나무를 보고 어릴 때 업어주던 할머니를 되살린다. 꼬부라진 나무는 다정한 할머니로 치환된다. 손주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바라며 등을 내주던 할머니 나무, 애틋하고 정겹다.
유홍례 시인의 동시들은 과장되지 않고 자연스럽다. 감상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미지가 내 세계로 치환된다. 동심으로 빚었기 때문이다. 동심은 이토록 힘이 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