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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커처 ㅣ 창비청소년문학 140
단요 지음 / 창비 / 2025년 8월
평점 :
캐리커처를 그려본 적이 있다. 시간차를 얼마 두지 않고 그린 두 번의 캐리커처는 나 자신마저도 낯설 만큼 너무나 달라서 놀랐다. 크게 달라지지 않은 ‘나’라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 두 작가가 펼쳐낸 작품은 그가 본 내 모습 중 각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도드라지게 표현하였던 것이다. 당시에는 ‘캐리커처 작가의 실력이 천차만별이구나’ 정도의 불만섞인 푸념을 했었는데, 이 책 <캐리커처>를 읽고 나니 꼭 실력의 차이만은 아니었을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로 태어난 이상, 내가 바라보는 나와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 일치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라는 건 그 상대의 수만큼 존재한다. 캐리커처를 그려준 화가가 서로 다른 나의 모습을 부각시켜자신만의 ‘나’를 그려주었던 것처럼. 아마 또 다른 캐리커처 샵에서 내 모습을 그려달라고 부탁한다면 아마 앞의 두 그림과는 전혀 다른 ‘나’의 모습이 도화지 위에 펼쳐질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에게 그가 바라보는 나의 모습 중 좋은 부분만을 취사선택해서 과장, 확대하여 그려달라고 부탁하는 정도일까.
그러므로 모두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판단하고 관계를 맺는다는 건 처음부터 성립할 수 없는 일이다. 성별, 출신지, 나이, 국적, 성적, 재산, 사회적 지위, 외모, 능력, 신체적 조건 등… 셀 수 없이 많은 변수들 곱하기 나와의 관계라는 수많은 경우의 수가 형성되고 그 결과값에 따라 우리는 어떤 한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여 어떤 관계를 맺을지를 결정한다. 이렇게 기울어진 세상 위에서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라는 물음에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서 천만 년처럼 느껴졌던 하루도, 아무 일 없이 텅 비었던 하루도 언제나 그렇게 시작되어 그렇게 끝난다. 공평하고 단호하게, 기쁘고 또 슬프게도, 그리고 감사하게도. 나는 무언가 절실한 열망 하나가 내 안에서 끝나 간다는 걸 알았고, 그게 어떤 모습으로인가 다시 시작되리라는 것을 알았다.-139쪽”
그렇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란 그저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아나가며 끊임없이 변화해나가는 내 캐리커처를 스스로의 힘으로 조금씩 완성해 가려고 노력하는 것에 불과하다. 어쩌면 그렸던 모습을 모두 다 지우고 처음부터 새로 그려야 할지도 모르지만. 벅차고 힘들다고 느껴질 때마다 <캐리커처>소설 속 주인공들을 떠올리며 잠시 미소지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