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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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의 김지영, 그들의 인생보고서

<82년생 김지영>(조남주, 민음사, 2016)

    

사람들이 나보고 맘충이래”(p.164)

 

맘충은 엄마를 뜻하는 (Mom)’의 뒤에 혐오의 의미로 벌레 충()’을 붙인 비속한 신조어다. 이는 제 아이만 싸고도는 일부 몰상식한 엄마를 가리키거나 공공장소에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젊은 엄마들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는 용어로 사용된다. ‘맘충은 육아하는 엄마 대부분에게 무차별적으로 사용돼 여성들에게 상처를 안겨준다. 2014년 말 맘충이사건이 있었다. 작가 조남주는 육아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의 폭력적인 시선에 충격을 받아 <82년생 김지영>(민음사, 2016)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PD수첩’ ‘불만제로등 시사교양 프로그램 작가 출신으로 소설을 쓸 당시 유치원 다니는 자녀를 둔 전업주부였다. 온라인상에서 사실 여부가 확인 되지 않은 상황에서 엄마들을 비하하는 태도에 문제의식을 느낀 작가는 현재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이 과거에 비해 얼마나 진보했는지 질문하고 있다. 소설은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시리즈 13번째 책으로 한국여성들의 보편적인 삶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성차별의 현 세태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82년생 김지영>은 제목 그대로 1982년생 김지영씨 이야기다. 서른네 살 김지영씨는 홍보대행사에 다니다 딸의 육아를 전담하기 위해 출산과 동시에 퇴사했다. 1982년에 태어난 여아 중 가장 많이 등록되었다는 김지영이라는 이름처럼 소설은 특별한 삶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삼남매 가운데 둘째로 태어나 초중고를 마치고 그럭저럭 대학에 입학하면서 표면적으로는 이보다 평범할 수 없을 정도의 일반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녀가 이상증세를 보인다. 자신의 친정엄마가 빙의한 듯 남편과 시댁식구한테 마음 속 말을 내 뱉어 그들을 당황스럽게 한다. 스스로 자신의 증상을 자각하지 못하는 김지영씨를 남편 정대현씨가 상담을 데리고 가는데.

    

책은 19821994, 19952000, 20012011, 20122015년 등으로 시기를 구분해 김지영이라는 일반적인 한국 여성들의 삶을 보여준다. 80년대 초반에 태어난 김지영. 그 당시 가장 많은 이름처럼 주인공 김지영의 삶은 특별하지 않다. 보통의 삶이다. 하지만 평범한 일상 속 곳곳에 숨어 있는 성차별은 평범하지 않다. 성차별의 역사는 비단 소설 속 김지영의 삶만은 아니다. 소설 밖에서도 익숙한 이야기라 더 씁쓸하다. 딸이라는 이유로 태어나지도 못한 딸들이 있다. 허나 태어나서도 여성에 대한 성차별은 계속된다. 주민등록번호부터 남자는 1, 여자는 2로 시작한다.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법"(p.189)이다.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면 독박육아도 모자라 직장 내에서도 성차별은 이어진다. 성차별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도로에서도 일어난다. 여성 운전자를 보면 남성운전자들은 참지를 못한다. 남자들도 교통흐름에 방해 되는 초보운전자들이 있다. 그럼에도 유난히 여성운전자들에게 너그럽지 못하다. ‘집에서 솥뚜껑 운전이나 하라든가. 애나 볼 것이지라고 폭언을 퍼 붓는다. 대부분의 남성들에게 내 아내, 내 딸과 다른 여성들은 이런 식으로 분리된다. 그들의 아내, 그들의 딸이 다른 남성들에게 된장녀또는 맘층이라고 불리게 될 것이라는 걸 모르는지

 

 

소설은 일상적 차별 속에 놓인 김지영의 삶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러다보니 극적인 사건이나 전환점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크게 갈등이 없어 밋밋하다 못해 심심하게 느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소설은 읽는 이를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김지영의 인생 궤도를 따라가며 시기별 도처에 잠복해 있는 성차별을 그대로 끄집어낸다. 여성이라는 조건이 굴레로 존재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김지영이라는 여자들. 한국여성들 모두 김지영은 아닌지. 소설은 김지영의 조용한 자기 고백으로 세밀한 심리묘사를 잘 드러낸다. 또한 김지영의 담담한 고발로 당연시 되는 그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작가는 2016년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30대 평범한 여성의 삶을 보여주기 위해 평범한 김지영이라는 이름을 선택했지만 소설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평범한 삶을 이야기해서 더 특별한 소설, <82년생 김지영>에서만 만날 볼 수 있는 백미다. 하나 더, 독자가 소설에서 놓쳐서는 안 될 요소가 있다. 핍진성이다. 작품 중간 중간에 보여주는 기사, 통계, SNS 사례 채집 등 풍부하고 탄탄한 자료다. 확률 가족』 『기록되지 않은 노동』 『고용 동향 브리프등의 도서와 여자라고 전교 회장 못 하나요등의 신문 기사를 비롯해 출산 순위별 출생 성비같은 통계청 자료, 호주제 페지: 호주제, 벽을 넘어 평등 세상으로등 행정부 정책 보고서, 경력단절 여성 지원정책의 현황과 과제같은 보건복지포럼 등의 자료가 쉴 새 없이 등장한다. 20년 전 일간지 기사부터 정부부처의 통계자료는 소설이라기보다 보고서를 보는 듯 한 착각이 들 정도로 사실적이다. 이는 제도적 성차별이 줄어든 현시대의 숨어 있는 차별들이 여성들의 삶을 어떻게 억압하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픽션이 아닌 팩션이다. 소설 속 김지영은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삼키거나 눈을 감고 피해버린다. 하지만 젊은 작가 조남주는 김지영의 보편적인 삶을 보여주며 눈 감지 말고 당당하게 목소리 내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우리 모두의 김지영, 한국 여성의 보편적인 삶이 도약하길 바라며 모든 남성과 여성들에게 <82년생 김지영>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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