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에게는 모든 음악이 진혼곡이 될 수도 있다. 이 책의 모든 문장이 진혼이었다. 저자가 슬픔의 지도를 따라 걸은 발자취는 역사의 뒤안길로 스러져간 이들의 발자국이었다. 이들의 발자국이 묻히지 않도록 나는 제대로 걷고 있는 걸까. 대단한 삶을 살지는 않지만 적어도 나한테만큼은 솔직한 삶, 타인의 고통에 눈 감지 않는 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한다. 그럼에도 말랑한 삶만 좇고 있는 건 아닌지 억울하게 스러져간 이들 앞에서 숙연해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비겁하다는 걸 알았다. 나는 이 책의 독자여서 다행이었다. 저자는 가슴 아픈 글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몰라서 좌절했다고 한다. 그 좌절을 내가 겪지 않아, 그 아픔을 직접 마주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사람들은 고통스럽고 괴로운 기억은 지우고 싶어 한다. 아픔은 잊고 행복한 시간만 기억하고 싶어 한다. 특히 내 아픔이 아닌 타인의 아픔, 타인의 고통은 '왜 아직까지 저러는대'라며 치워버리고 묻어버리려고 한다. 나도 그랬나 보다. 이 책의 독자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만난 건 행운이다. 행간의 아픔을 마주할 때마다 바튼 숨을 내뱉아야 했지만, 눈으로 가슴으로 저자의 다크 투어에 동참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우리는 마주하고 싶지 않아도 학살의 실체, 부정할 수 없는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 이것이 곧 살아남은 자의 도리, 해야 할 일이지 않을까.
슬픔, 아픔의 감정을 글로 옮기면 간혹 그 슬픔에 눈물 흘릴 것을 애써 짜내려는 신파극이 있다. 이 책은 아프다. 하지만 그 아픔을 억지로 짜내지 않는다. 그저 행간에서 전달되는 그 슬픔에 스며든다. 담담하면서도 어둡지 않게 부려 놓는 이야기, 그래서 더 한 걸음 한 걸음에 울컥 눈물이 차오른다. 모든 이가 이 책, 저자의 다크 투어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내 삶의 지점,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길 위에서, 다크 투어를 하면서 만날 수도 있으려니. 그렇다면 적어도 아픈 영혼이 잠든 그곳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는 관광객으로만 자리하지 않을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