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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을 깨는 날개짓, 경계를 넘는 충돌
<버드 스트라이크>(구병모, 창비, 2019)
“태어날 때부터 초원조의 축복을 입고 저마다 새의 영혼이 깃든다는 종족이 눈앞에 있었다”(p.50)
때때로 사람들은 ‘새가 되어 훨훨 날아봤으면…’라는 생각을 한다. 세상삶이 힘들거나 답답할 때 창공을 나는 새가 되어 훨훨 날아오르고 싶은, 틀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최근에 ‘익인(翼人)’을 소재로 영어덜트 소설을 출간한 작가가 있다. 바로 구병모다. 구병모 작가는 제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은 <위저드 베이커리>로 영어덜트 소설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이번에 선보인 <버드 스트라이크>(창비, 2019)는 2011년 잠깐 잠을 자다 꾼 꿈이 모티프가 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하늘을 날 수 있는 아이가 등장하는데 시원하게 높이 나는 게 아니라 추락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며 꿈이야기를 전했다.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극대화하고자 했다는 작품은, 2011년 구상을 시작해 초고를 완성하기까지 7년여가 걸렸다고 한다. 작가의 공들임 만큼이나 영어덜트 소설의 진화를 확인할 수 있다.
‘버드 스트라이크’는 비행기와 새가 부딪히는 현상으로 한국어로는 조류 충돌(鳥類衝突)이라고 한다. 책은 날개를 가진 익인들과 도시 사람들 간의 갈등으로 시작한다. 소설의 주인공 ‘비오’는 다른 익인들에 비해 몸집은 크고 날개는 작다. 보통의 익인들과 신체구조가 다른 돌연변이다. 어느 날, 비오는 도시인들이 데려간 익인들을 찾으러 고원 지대의 익인들과 도시 청사 건물을 습격한다. 작은 날개를 가진 비오는 습격 직후 도시인에게 붙잡히고, 그런 그의 앞에 시청의 우두머리인 시행의 이복동생 ‘루’가 나타난다. 비오는 루를 인질로 삼아 도시를 탈출한다. 인질로 익인들의 공동체에 오게된 루지만 비오의 가족은 적의가 없는 시선으로 호의를 베푼다. 루는 그곳에 머물면서 어딘가 모르게 자신과 비슷한 비오의 처지를 보면서 가까워진다.
루가 머물게 된 고원에 사는 익인들은 전통적인 공동체를 유지한다. 익인들로부터 자원을 수탈하는 도시인들과 달리 거대한 홀림목, 은색 뿔을 가진 은각마를 보호하면서 자연과 공생하는 삶의 방식을 지향한다. 그럼에도 비오는 “초원조의 축복을 받을 자격을 다 갖추지 못하고 태어났”(p.106)기에 혈통이 변질되지 않도록 ‘혼인을 해선 안’(p.106)되는 차별을 받는다. 이렇듯 공동체의 누군가가 우리와 다르면 사람들은 그를 틀렸다고 치부한다. 책은 사회에서 다름이 아닌 틀린이는 혐오와 편견의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준다.
다름을 혐오와 편견으로 보는 이들에게 루는 “비오와 같은 아이를 품지 못할 만큼, 초원조의 날개는 그렇게 작은가요”(p.107)라고 반문한다. 왜 비오는 성인식에서 배제되어야 하고, 혼인이 허용되지 않아야 한단 말인가. 루가 익인 우두머리 지장을 향해 쏟아낸 말이지만, 시행과 그의 비서 사이에 태어난 “다소 어중간한 위치”의 자신이 받는 편견과 부조리한 차별에 대한 외침은 아닐까. 사회는 ‘혈통 보존’을 위해서, “날개가 작아서”(p.11)라는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세상의 비오와 루들에게 명확한 선을 그으며 차별을 서슴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불안과 우려를 잠재우기 위한 조치가 누군가에게는 “영원한 유목민 내지는 이주자의 낙인”(p.121)이 될 수도 있는데 말이다.
소설은 차별과 배제 뿐 아니라 도시인들을 통해 수탈과 식민지배를 드러내기도 한다. 도시 사람들은 장식을 위해 “살아 있는 은각마한테서 눈을 적출”(p.95)하고, 익인들의 몸 구조를 연구하기 위해 그들의 무덤을 몰래 파헤치고 익인을 생포해 실험하는 등 잔인한 행태를 서슴지 않는다. 그렇게 “빼앗길 것이 남아 있는 한, 도시가 존재하는 한 완전한 평화란 익인들에게 꿈만 같은 이야기”(p.117)였다. 피지배자의 능력때문에 계속 빼앗기고 짓밟힐수 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 판타지 속에서만 벌어질 것 같은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현재의 어느 곳에서는 진행형이다.
날개가 작고, 좀 흔들리면 어떤가. 작은 날개로 덮지 못한다면 “그냥 그대로 꼭 안아주면 돼”(p.11)지 않을까. 살아가다보면 바람을 맞을 때도 있고 바람에 몸을 맡기면서 저항해야 할 때도 있다. 날개를 가진 자라면 “흔들리지 않고 휘청거리지 않고 날 수는 없”(p.170)다. 아낌없이 흔들리고 불안하게 솟구쳤다 꺼지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성장하고, 자신만의 비행법을 찾지 않을까. 소설은 인간의 아이를 잉태한 시와를 아내로 맞는 다니오를 통해 있는 그대로 품어주기를 보여준다. 다니오는 비오가 손가락 한 마디만 한 날개를 내놓는 순간을 보고 키우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우리의 귀한 익인 아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p.93)며 포용한다. 다친 이를 감싸서 회복시키기 위한 다니오의 날개. 세상은 아직 따스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우리의 삶이 무언가와 부딪히지 않고서 얻어낼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버드 스트라이크’라는 제목을 쓴 이유를 밝혔다. 혐오와 차별, 수탈과 식민지배를 아무 소리없이 받아들인다면 변화가 있었을까. 루가 고원지대의 지장에게 왜 비오는 배제되어야 하냐고 작은 목소리를 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더불어 도시인들의 수탈을 ‘오래전부터의 통상조약’(p.94)으로 치부해버리고, 작은 날개짓을 하지 않았다면 기득권자의 수탈과 지배를 멈칫하게 할 수 있었을까.
소설은 판타지의 세계를 묘사한다. 그럼에도 현실 사회에서 드러나는 혐오, 편견 등의 문제를 적나라게 짚는다. 작가는 날개가 있다고 굳이 높고 멀리 날아야 할 이유는 없다고 한다. 그저 “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p.122)하다는데. 큰 날개를 가진 이는 그 크기의 모습으로 작은 날개를 가진 세상의 비오는 그들의 방식대로 품고 살아가면 그만이다. 삶의 방식은 누구나 다르다. 작가는 루의 말을 빌어 “삶의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 무언가는 옳고 바람직하거나 다른 것은 그릇되다는 것을 말하지는 않”(p.296)는다고 전한다. 다름은 다른 것일 뿐 틀린 삶이 아닌 것이다. 작품은 영어덜트 소설이다. 그럼에도 청소년 뿐 아니라 성인독자까지도 아우를수 있는 스펙트럼을 지녔다. 이 순간 “그를 만나고 싶다”(p.299)면 루처럼 날기를 주저하지 말고, 비오처럼 자신과의 충돌을 마다하지 않기를. 버드 스트라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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