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토끼 (리커버)
정보라 지음 / 아작 / 202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10가지의 호러/스릴러/SF 장르에 해당하는 이야기들이 담긴 소설집.

불편하고 잔인한 내용도 많다고 하길래 마음의 준비하고 읽었는데

많이 불쾌하지는 않았다.


【저주 토끼】 …p.09

‘나’의 가족은 대대로 저주를 담은 물건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다. 가업으로 만든 물건을 개인적인 저주에 사용하면 안된다는 규칙이 있는데, 할아버지는 그 규칙을 깨뜨려버린 경험을 몇번이고 나에게 들려준다.

개인적으로 전래동화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이야기.

할아버지가 해주는 이야기는 자본주의로 인해 다른 사람을 끌어내리고 올라가려는 사람의 권선징악을 보여주는데, 결말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저주 용품을 계속 만들며 생활을 이어가고 있고, 그럼에도 나 이후의 세대까지 이런 생활을 지속하게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씁쓸하고 여운이 남는 이야기. 

물론 이런 해석은 모두 개인적인 생각이다


【머리 …p.35】

화장실에서 나오려던 찰나, 그녀는 변기 속에서 튀어나온 ‘머리’ 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게 된다. ‘머리’는 그녀를 어머니라 부르며 그녀가 버리는 것들로 몸을 이루어 살아가도록 해달라고 말한다.

그나마 가장 비위 상했던 이야기. 웹툰 기기괴괴와 이토준지 공포만화가 떠올랐다.

이야기의 머리를 이루는 것은 오물, 휴지 등인데

개인적으로는 그 뿐만 아니라 의미를 좀 더 넓혀서 개인이 살아가면서 쓰게되는, 편리를 위해 만들고 버려지는 물건과 흔적, 더 넓게 본다면 내가 쓴 댓글이나 카톡, 메일같은 데이터 같은 것들도 포함하는, 그렇게 확장해서 생각해 보았다.

사람이 쓴 물건, 읽은 책, 사용하는 말 등을 보면 그 사람의 취향과 성격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내가 남긴 것들이 나보다 더 나 같은 것이 된다면?

이라는 생각을 들게하는 이야기.


【몸하다】…p.83

원인을 알 수 없는 문제로 피임약을 처방받은 ‘영란’은 피임약을 먹고 남자 없이 임신을 하게 된다. 알 수 없는 임신에 의사는 아이 아빠가 있어야 한다며 재촉하고, 영란의 부모도 아이 아빠가 되어 줄 남자를 찾는데 혈안이 된다.

모든 우선순위가 주인공 영란이 아니라 아이가 되며, 그 아이가 잘 성장하기 위해서는 남자가 필요하다는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은 소설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영화 <더 랍스터>가 생각나는 이야기었다. 영화에서 사회는 이상적인 커플의 관계를 강제로 규정하고 그것에 따르지 않으면 동물로 만들어 버린다. 살기 위해 이상적인 커플 보이게끔 노력하는 인물들은 남편을 찾기위해 혈안이 된 소설 속 인물들을 떠올리게 한다.


【재회】 …p.295


폴란드에서 대학원 학위과정을 밟고 있던 나는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폴란드 인으로 남다른 취향을 가진 그와 한 아파트에 생활하며 2차대전을 겪은 그의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를 이해하게 된다.


재회는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야기이다. 여운이 깊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불행한 현실에서 만나게 된 두 남녀가 삶에 단단히 묶여 떠나지 못하고 남은 것들을 보고, 자신도 어딘가에 묶여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풀어줄 사람을 기다리는. 묶여 있다는 것은 불안함을 벗어나는 안정감을 줌과 동시에 무력함을 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언제나 지금보다는 조금 전이 가장 좋은 순간이었고, 앞날보다는 지금이 가장 좋은 순간이었다.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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