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 컬렉션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 기념판) - 전11권 - 가난한 사람들 + 죄와 벌 + 백치 + 악령 +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석영중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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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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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만세 소설, 향
오한기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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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얘기가 많지만 우선 이 말을 못박아두고 싶다. 이 작품은 ‘새로운’ 환상적 리얼리즘 소설이다. 왜 그런지는 차차 설명할 것이고, 이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인간만세>의 구조를 인물을 통해 살펴보자.

책의 서두에 실린 짧은 소설 <상담> 속 진진이 현실에서 나타나 상주 작가 오한기를 협박하고(“문학적으로 당신을 살해할 것이다”, 상주작가 자리를 내놓아라), 초등학생 민활성은 마이크를 들고 달아나다가 오한기가 상상했던 EE라는 존재에게 잡아먹힌다(나중에는 그렇지 않다는 게 밝혀진다만). 문학무용론을 제창하는 화학과 교수 kc와 선배 소설가이자 출세욕이 강한 관장은 둘 다 기득권 꼰대이며, 오한기가 전공한 문학의 근간을 그 바깥과 내부에서 다채롭게 뒤흔든다. 이렇듯 현실의 기반(문학)은 흔들리고 환상이 현실에, 현실이 환상에 주입되어 뭐가뭔지 종잡을 수 없게 되는 이야기인데, 오한기는 그들과 끝까지 싸우지 않고 얼른 백기를 든다. 그는 평범한 심미안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진진과는 협업을 하게 되고, 다시 나타난 민활성에게는 따지지 않으며, 관장에게는 고분고분해지고 kc에게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 “끄끄끄끄”를 외친다. (애초에 똥똥똥거리던 부분이나 공중화장실 음모론을 제기하는 부분을 보면 앞서 언급한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오한기 본인도 정상은 아니라는 짐작이 갔겠지만) 그리하여 환상과 현실을 동시에 상대하다 그것과 똑같아진, 그리고 길들여진 오한기는 끝내 그것들을 ‘우리’라고 부르게 된다(“우리 똥”).

엉망진창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야기가 결국 종지부로 나아갈 수 있었던 건 잃어버린 마이크와 끊임없이 들려오던 ‘똥’ 소리 때문이다. 오한기는 누군가를 끌어들이고 설득하는 목소리를 잃은 대신 자신이 쓴 소설(혹은 상상)이라는 완성품이자 배설물(똥)을 되뇌이면 글을 쓰게 되는 능력을 얻게 된 것이고 그 결과로 상주작가를 하며 소설 <나는 자급자족한다>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며, 또 그때까지의 기록인 <인간만세> 또한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헌데, 왜 이 작품이 새로운 환상적 리얼리즘일까?

‘환상적’을 붙이기에 앞서 리얼리즘을 살펴보자. 이야기 틈틈에 언급되는 리얼리즘은 오한기가 추구하는 목표이자, 동시에 그가 다가서고자하면 반대로 멀어져가는 목표다. 왜냐하면 리얼리즘에 도달할 새도 없이 오한기는 진진과 EE뿐만 아니라 갖은 환상에게 당하고 당하기만 하니까. 당하고 당하다보니, 당하지만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쓰다보니, 본인도 환상과 닮아가고 있으니까. 안 그래도 본인이 쓴 소설들을 자학하느라 바빴었던 오한기, 그러다보니 이제는 지칠대로 지친 오한기는 말한다.

“나는 내가 만들어낸 환상에 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리얼리즘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환상에 지고 있는 리얼리즘 소설로, 새로운 환상적 리얼리즘이라 부르기에 마땅한 것이다. 또한 그리하여 오한기는 무한동력원을 소유한 소설가이며 환상적 리얼리즘의 개척자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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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만세 소설, 향
오한기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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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한기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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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동네
손보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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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동네 / 손보미

나에게도 그리고 당신에게도

어렸을 적 살던 작은 동네가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동네가 무지하게 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기억의 작은 파편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그 동네는 ‘작은’ 동네일 것이다. 그 동네는 대부분 추억의 정경으로서, 오늘의 내가 무언갈 잃어버렸다고 느껴질 때마다 들여다보는 화폭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도 나를 쥐고 있다면, 좀체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면, 그래서 ‘고통스럽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소설의 화자는 어머니의 죽음과 이혼했던 아버지로부터의 느닷없는 연락, 유명 연예인의 실종을 경험하면서 짧게 요약되었던 작은 동네에서의 과거를 향해 의심의 촉을 세우고 탐정처럼 치밀하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그들 가족과 거리를 두었던 동네 사람들, 어머니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 옆집 할머니와 그 집에 살던 개, 화재로 인해 동네 사람 모두가 죽음을 겪고 그 죽음을 개를 키우면서 달래려했던 것, 화자가 태어나기 전에 죽은 오빠, 소나무 숲에 혼자 살았던 젊은 여자. 어리지만 나름의 분별력으로 삶을 체득하고 선택을 내리면서 살아왔다고 믿던 화자는 과거를 복습하면서 지금도 불가해한 것들을 문장으로 건져 올린다. 그 불가해는 말하자면 ‘실종’이다. 모두가 고통을 당해왔다고들 말하지만 누군가는 ‘실제로’ 사라진다. 그 누군가들은, 화려한 과거가 있었지만 불행히 남들의 구설수에 오르고, 몰락하고, 실종된다. 그런데, 그런데

아무도 그 ‘실종’은 기억하지 않는다. 그전까진 가십거리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온 소문들이 거짓말처럼 잠식된다. 모두가 겪어온 것이나 다르지 않다고 말하지만 그것에 너무도 무관심한 남편처럼 사람들은 기억하지 않는다. 화자는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화자는 그 실종에 몰두해서 증거와 정황 없는 사건에 갖가지 질문을 남긴다. 하지만 도저히 답이란 게 나오지 않는데, 그 중심에는 어머니가 서있다. 언제나 화자가 일정 거리 바깥으로 나가지 않기를 바래왔던, 그녀를 보호하는 걸 지상과제로 삼은 어머니가. 어머니는 동네 사람 중 가장 화려한 옷차림으로 시내를 다녔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를 동경했으며, 자신만의 삶을 위해 고향 섬에서 몰래 나왔다. 그런 어머니는 이상하게 동네사람과 어울리지 않았고, 소나무 숲에 살던 이상한 젊은 여자만을 유일한 친구로 대했다. 화자는 이를 이해하지 못했고,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는다. 나를 보호하면서도 나를 방임한 어머니. 그건 무얼 의미하는 걸까. 하지만 그녀는 죽었고, 그러므로 화자는, 지금으로선

증오해마지 않던 아버지와 만나 그 고통스러운 질문들을 던져야 한다. 아버지와 만나서 질문을 쏟아내고 그에 대한 답을 듣는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예상하지 못한 답들이 나와서 놀랐다. 과거가 거짓이었으며, 거짓이다 믿고 싶은 일이 실제라는 대답이었다. 그리고 슬프게도, 그 예상 밖의 일들은 결국 어머니의 행동을 수긍하게 한다. 하지만 어머니가 그런 행동을 해서 돌려받았던 게, 과연 있었을까?

어머니는 한시름 놓았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제 좀 안심이 된다.” 뭐가 안심이 되느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너의 인생이.”
너의 삶.
너의 행복.
너의 안전.
- p.83

이 거짓말 같은 과거를 건네받은 화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과거에 있었던 일들, 사라지고 실종된 것들-거짓이든 진실이든-을 오롯이,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 견딜 수 없다면, 같은 의도의 다른 일면들을 환상처럼 가져보는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가 일러주었듯 팔을 앞으로 휘젓고 발을 힘차게 차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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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 삼대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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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기적 소리를 내지르며 검은 덩어리의 기관차가 다리 위를 지나갔다. 멀리서도 철로에 걸리는 바퀴 소리와 철교가 아우성치는 듯한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p.52~53

이 소설을 읽으며 세계 최초의 ‘영화’가 떠올랐다. 기억하건대 그 영화는 6분짜리 단편으로 유럽에서 제작된 것이었다. 장면의 전환이나 이야기 따위 없이 그저 기차가 지나가는 모습만 담겨 있었다. 지금 보기엔 한없이 지루해 보이는 영상인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다른 생각을 갖게 됐다. 생각해보면 온통 흙길이었을 세상에 전국 각지를 이을 정도로 기나긴 쇠를 놓고 그 위에 아주 거대한 물체가 빠른 속도로 움직여 사람과 화물을 나르게 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아닌가. 이제 막 기계가 도입되던 시기인데도 사람들은 그렇게 커다란 문명을 만들어냈다. 철도를 놓게 된 것은 기술의 발전도 발전이지만 여전히 사람의 손이 필요했다. 그 사람들은 다 누구였을까. 한국에 철도가 놓인 시기에 우리나라는 우리의 것이 아니었고, 조선인은 조선인이 아니었다. 때문에 노예를 부려먹어 만든 거대한 피라미드처럼, 거기엔 어떤 억압과 폭력이 자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책에 그 씁쓸한 답이 나와 있다. ‘철도는 조선 백성들의 피와 눈물로 만들어졌다.’
황석영 작가에 대해서는 그가 쓴 책보다도 한국 근현대사의 사건들을 모두 겪은 역사의 산증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그의 이력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가 채널예스에서 ‘마터 2-10’(‘철도원 삼대’의 전 제목)을 연재한다는 소식을 얼핏 들었을 때 현재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런데 그게 벌써 이렇게 단행본으로 나오게 되었다.
이 소설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노동 소설이다. 그러나 그 노동은 과거의 의미가 아니다. 노동은 언제까지나 우리의 곁에 있었고, 부당 해고로 굴뚝 위에서 농성을 막 시작한 이진오도 그런 인물이다. 이 소설을 다르게 말하자면 시대의 이야기이다. 이진오의 증조할아버지 이백만과 엄청난 전설을 가진 증조할머니 주안댁에서부터 시작해 철도원이 되고자 했던 할아버지 이일철과 노동쟁의에 뛰어들었던 작은할아버지 이이철, 예지력을 지닌 할머니 신금이와 한국전쟁 때 부상당한 아버지 이지산, 그리고 이진오 자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들을 가로지르며 지난 백년 간 한국이 겪은 거대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놓는다. 이 엄청난 이야기에 몰입하면서, 시대가 진행되는 걸 봐가면서 종국에 현재에 도달하게 된 우리는 어떤 답을 내놓게 될까. 가제본에는 소설 전체의 삼분의 일 정도만이 나와 있어서 얼른 다음 이야기로 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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