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만세 소설, 향
오한기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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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얘기가 많지만 우선 이 말을 못박아두고 싶다. 이 작품은 ‘새로운’ 환상적 리얼리즘 소설이다. 왜 그런지는 차차 설명할 것이고, 이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인간만세>의 구조를 인물을 통해 살펴보자.

책의 서두에 실린 짧은 소설 <상담> 속 진진이 현실에서 나타나 상주 작가 오한기를 협박하고(“문학적으로 당신을 살해할 것이다”, 상주작가 자리를 내놓아라), 초등학생 민활성은 마이크를 들고 달아나다가 오한기가 상상했던 EE라는 존재에게 잡아먹힌다(나중에는 그렇지 않다는 게 밝혀진다만). 문학무용론을 제창하는 화학과 교수 kc와 선배 소설가이자 출세욕이 강한 관장은 둘 다 기득권 꼰대이며, 오한기가 전공한 문학의 근간을 그 바깥과 내부에서 다채롭게 뒤흔든다. 이렇듯 현실의 기반(문학)은 흔들리고 환상이 현실에, 현실이 환상에 주입되어 뭐가뭔지 종잡을 수 없게 되는 이야기인데, 오한기는 그들과 끝까지 싸우지 않고 얼른 백기를 든다. 그는 평범한 심미안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진진과는 협업을 하게 되고, 다시 나타난 민활성에게는 따지지 않으며, 관장에게는 고분고분해지고 kc에게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 “끄끄끄끄”를 외친다. (애초에 똥똥똥거리던 부분이나 공중화장실 음모론을 제기하는 부분을 보면 앞서 언급한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오한기 본인도 정상은 아니라는 짐작이 갔겠지만) 그리하여 환상과 현실을 동시에 상대하다 그것과 똑같아진, 그리고 길들여진 오한기는 끝내 그것들을 ‘우리’라고 부르게 된다(“우리 똥”).

엉망진창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야기가 결국 종지부로 나아갈 수 있었던 건 잃어버린 마이크와 끊임없이 들려오던 ‘똥’ 소리 때문이다. 오한기는 누군가를 끌어들이고 설득하는 목소리를 잃은 대신 자신이 쓴 소설(혹은 상상)이라는 완성품이자 배설물(똥)을 되뇌이면 글을 쓰게 되는 능력을 얻게 된 것이고 그 결과로 상주작가를 하며 소설 <나는 자급자족한다>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며, 또 그때까지의 기록인 <인간만세> 또한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헌데, 왜 이 작품이 새로운 환상적 리얼리즘일까?

‘환상적’을 붙이기에 앞서 리얼리즘을 살펴보자. 이야기 틈틈에 언급되는 리얼리즘은 오한기가 추구하는 목표이자, 동시에 그가 다가서고자하면 반대로 멀어져가는 목표다. 왜냐하면 리얼리즘에 도달할 새도 없이 오한기는 진진과 EE뿐만 아니라 갖은 환상에게 당하고 당하기만 하니까. 당하고 당하다보니, 당하지만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쓰다보니, 본인도 환상과 닮아가고 있으니까. 안 그래도 본인이 쓴 소설들을 자학하느라 바빴었던 오한기, 그러다보니 이제는 지칠대로 지친 오한기는 말한다.

“나는 내가 만들어낸 환상에 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리얼리즘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환상에 지고 있는 리얼리즘 소설로, 새로운 환상적 리얼리즘이라 부르기에 마땅한 것이다. 또한 그리하여 오한기는 무한동력원을 소유한 소설가이며 환상적 리얼리즘의 개척자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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