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원 삼대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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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기적 소리를 내지르며 검은 덩어리의 기관차가 다리 위를 지나갔다. 멀리서도 철로에 걸리는 바퀴 소리와 철교가 아우성치는 듯한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p.52~53

이 소설을 읽으며 세계 최초의 ‘영화’가 떠올랐다. 기억하건대 그 영화는 6분짜리 단편으로 유럽에서 제작된 것이었다. 장면의 전환이나 이야기 따위 없이 그저 기차가 지나가는 모습만 담겨 있었다. 지금 보기엔 한없이 지루해 보이는 영상인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다른 생각을 갖게 됐다. 생각해보면 온통 흙길이었을 세상에 전국 각지를 이을 정도로 기나긴 쇠를 놓고 그 위에 아주 거대한 물체가 빠른 속도로 움직여 사람과 화물을 나르게 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아닌가. 이제 막 기계가 도입되던 시기인데도 사람들은 그렇게 커다란 문명을 만들어냈다. 철도를 놓게 된 것은 기술의 발전도 발전이지만 여전히 사람의 손이 필요했다. 그 사람들은 다 누구였을까. 한국에 철도가 놓인 시기에 우리나라는 우리의 것이 아니었고, 조선인은 조선인이 아니었다. 때문에 노예를 부려먹어 만든 거대한 피라미드처럼, 거기엔 어떤 억압과 폭력이 자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책에 그 씁쓸한 답이 나와 있다. ‘철도는 조선 백성들의 피와 눈물로 만들어졌다.’
황석영 작가에 대해서는 그가 쓴 책보다도 한국 근현대사의 사건들을 모두 겪은 역사의 산증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그의 이력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가 채널예스에서 ‘마터 2-10’(‘철도원 삼대’의 전 제목)을 연재한다는 소식을 얼핏 들었을 때 현재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런데 그게 벌써 이렇게 단행본으로 나오게 되었다.
이 소설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노동 소설이다. 그러나 그 노동은 과거의 의미가 아니다. 노동은 언제까지나 우리의 곁에 있었고, 부당 해고로 굴뚝 위에서 농성을 막 시작한 이진오도 그런 인물이다. 이 소설을 다르게 말하자면 시대의 이야기이다. 이진오의 증조할아버지 이백만과 엄청난 전설을 가진 증조할머니 주안댁에서부터 시작해 철도원이 되고자 했던 할아버지 이일철과 노동쟁의에 뛰어들었던 작은할아버지 이이철, 예지력을 지닌 할머니 신금이와 한국전쟁 때 부상당한 아버지 이지산, 그리고 이진오 자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들을 가로지르며 지난 백년 간 한국이 겪은 거대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놓는다. 이 엄청난 이야기에 몰입하면서, 시대가 진행되는 걸 봐가면서 종국에 현재에 도달하게 된 우리는 어떤 답을 내놓게 될까. 가제본에는 소설 전체의 삼분의 일 정도만이 나와 있어서 얼른 다음 이야기로 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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