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동네
손보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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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동네 / 손보미

나에게도 그리고 당신에게도

어렸을 적 살던 작은 동네가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동네가 무지하게 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기억의 작은 파편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그 동네는 ‘작은’ 동네일 것이다. 그 동네는 대부분 추억의 정경으로서, 오늘의 내가 무언갈 잃어버렸다고 느껴질 때마다 들여다보는 화폭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도 나를 쥐고 있다면, 좀체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면, 그래서 ‘고통스럽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소설의 화자는 어머니의 죽음과 이혼했던 아버지로부터의 느닷없는 연락, 유명 연예인의 실종을 경험하면서 짧게 요약되었던 작은 동네에서의 과거를 향해 의심의 촉을 세우고 탐정처럼 치밀하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그들 가족과 거리를 두었던 동네 사람들, 어머니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 옆집 할머니와 그 집에 살던 개, 화재로 인해 동네 사람 모두가 죽음을 겪고 그 죽음을 개를 키우면서 달래려했던 것, 화자가 태어나기 전에 죽은 오빠, 소나무 숲에 혼자 살았던 젊은 여자. 어리지만 나름의 분별력으로 삶을 체득하고 선택을 내리면서 살아왔다고 믿던 화자는 과거를 복습하면서 지금도 불가해한 것들을 문장으로 건져 올린다. 그 불가해는 말하자면 ‘실종’이다. 모두가 고통을 당해왔다고들 말하지만 누군가는 ‘실제로’ 사라진다. 그 누군가들은, 화려한 과거가 있었지만 불행히 남들의 구설수에 오르고, 몰락하고, 실종된다. 그런데, 그런데

아무도 그 ‘실종’은 기억하지 않는다. 그전까진 가십거리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온 소문들이 거짓말처럼 잠식된다. 모두가 겪어온 것이나 다르지 않다고 말하지만 그것에 너무도 무관심한 남편처럼 사람들은 기억하지 않는다. 화자는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화자는 그 실종에 몰두해서 증거와 정황 없는 사건에 갖가지 질문을 남긴다. 하지만 도저히 답이란 게 나오지 않는데, 그 중심에는 어머니가 서있다. 언제나 화자가 일정 거리 바깥으로 나가지 않기를 바래왔던, 그녀를 보호하는 걸 지상과제로 삼은 어머니가. 어머니는 동네 사람 중 가장 화려한 옷차림으로 시내를 다녔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를 동경했으며, 자신만의 삶을 위해 고향 섬에서 몰래 나왔다. 그런 어머니는 이상하게 동네사람과 어울리지 않았고, 소나무 숲에 살던 이상한 젊은 여자만을 유일한 친구로 대했다. 화자는 이를 이해하지 못했고,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는다. 나를 보호하면서도 나를 방임한 어머니. 그건 무얼 의미하는 걸까. 하지만 그녀는 죽었고, 그러므로 화자는, 지금으로선

증오해마지 않던 아버지와 만나 그 고통스러운 질문들을 던져야 한다. 아버지와 만나서 질문을 쏟아내고 그에 대한 답을 듣는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예상하지 못한 답들이 나와서 놀랐다. 과거가 거짓이었으며, 거짓이다 믿고 싶은 일이 실제라는 대답이었다. 그리고 슬프게도, 그 예상 밖의 일들은 결국 어머니의 행동을 수긍하게 한다. 하지만 어머니가 그런 행동을 해서 돌려받았던 게, 과연 있었을까?

어머니는 한시름 놓았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제 좀 안심이 된다.” 뭐가 안심이 되느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너의 인생이.”
너의 삶.
너의 행복.
너의 안전.
- p.83

이 거짓말 같은 과거를 건네받은 화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과거에 있었던 일들, 사라지고 실종된 것들-거짓이든 진실이든-을 오롯이,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 견딜 수 없다면, 같은 의도의 다른 일면들을 환상처럼 가져보는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가 일러주었듯 팔을 앞으로 휘젓고 발을 힘차게 차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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