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날 하자
나태주 지음 / 샘터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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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정에서 트롯 가수 나태주는 알아도 시인 나태주는 모른다며 너스레를 떤다. #늙은나태주 속 시인은 사람 냄새 폴폴 나는 이웃 할아버지를 생각나게 한다. 그의 시는 정갈하고 담백한 한차림이 생각난다. 누군가는 사회와 동떨어진 한낱 인간의 고백이라고 하지만 세상의 빛이 어떻게 한 가지 일 수 있을까. 그의 나이를 헤아려 보면 시만 50여년 써왔다. 그 시 안에 강산의 변화를 담고, 사람의 눈물을 흘려보내고 역사의 바람을 맞지 아니했겠는가. 구구절절 다 담지 않았지만 그 세월도 지나와보면 결국 사람이지 않는가. 그 사람에 대한 마음, 그리움, 애틋함, 포근함 등 여러 무늬로 새겨져 있다. 언제 읽어도 얼굴에 어두운 표정을 오래 담아두지 않고, 고운 단어로 갈무리하였어도 가볍지 않은 #나태주 시인의 #좋은날하자 시집 한 권이 23년 2월 4일 #입춘을 맞이하는 자세로 딱이다. #시인의말 초반에 너무 많은 시를 썼던게 아닌가 고민한 흔적을 남겼다. 세월이 악하고 시끄럽고 어려울수록 그의 시가 더 반짝이고 고운 울림으로 귀에 닿는다. 더 많은 시를 남겨주길 바래본다.


■ 산이 비었다 / 숲이 비었다 / 개울이 비었고 / 개울 물소리마저
비었다 / 한 사람, 오직 / 한 사람이 없어서 / 설악산이 비었고 /
백담사가 비었고 / 만해 마을이 비었고 / 끝내 나마저 비었다.
- 비었다 56쪽



■ ....중략.... 그 자리 지켜 있으면 / 어느새 너는 꽃이 되고 /
새암물 되고 강물이 되고 / 드디어 산이 되기도 할 것이니 /
나도 당분간은 너를 지켜 / 여기 있으마 / 부지런히 숨 쉬며 /
졸지 않고 다른 꿈 꾸지 않고 / 여기 있으마.
- 너 거기에 92-93쪽


■ 조금만 함께 가지 했지요 / 그러나 꽃향기가 좋아 풀 향기가 좋아
멀리까지 와버리고 말았어요 / 할 얘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지요
그저 그런 얘기 이 얘기 저 얘기 / 서로 나누다가 그만 눈물이 글썽
가슴이 찡하기도 했지요 / 이젠 돌아갈까 그래요
등 뒤에서 꽃들이 웃고 / 새들이 웃겠지요
- 산책 130쪽

□ 애틋함만 오롯이 남도록 담백한 수묵화 같은 고운 시. 감정선의 기복 마저도 낮은 구릉이 그려내는 능선 같아서 읽고 또 읽게 되는 시. #나태주 #좋은날하자_산책



■ .....중략....... / 돌아보아 그래도 / 그런 날이 그리운 날이었어요 /
다시는 돌아갈 수도 없는 날들.
- 그래도 그리운 날 150-151쪽



■ 아무것도 되지 않고 싶었고 / 아무것도 되지 않았던 사람
다만 사람이 되고 싶었고 / 윤동주 자신이 되고 싶었고
오직 소원이 있다면 / 시인이 되고 싶었던 사람.
- 윤동주2 204쪽



■ .....중략....... / 잊혀지고 버려지므로 오히려 변하지 않을 수 있었다니!
- 반전 232쪽



◆2023년 봄여름 물방울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인사발령을 분주한 시기,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고 새 위치, 새 직함 속에 두렵고 설레는 이들에게 #나태주 시인 #봄날의이유 한 편이 큰 위로가 될 것이다.

[그대 같은 사람 하나 / 세상에 있어서 / 세상이 좀 더 따스하고 / 서럽고도 벅찬 봄날이 / 조금쯤 부드럽게 / 흘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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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 아일랜드 - 희귀 원고 도난 사건
존 그리샴 지음, 남명성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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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전반적인 배경은 플로리다 해변이 펼쳐지는 휴양지이다. 관광지가 갖는 들뜨고 가벼운 마음으로 빠르게 사건을 접하듯 이야기를 읽어갈 수 있는 #스릴러액션 #하이스트무비 느낌의 소설이다.

● heist movie : 범죄자들이 모여 무언가를 강탈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영화

heist는 '강도, 강탈'이라는 뜻으로, 하이스트 무비는 범죄자들이 무언가를 훔치기로 모의하고 이를 실행하는 과정을 복잡한 플롯으로 표현하는 갱스터ㆍ범죄영화의 하위 장르다. 하이스트 무비는 필름 누아르 장르의 영향을 받아 처음에는 어두운 내용과 언해피엔딩을 지향했으나 차츰 코믹한 요소가 가미되고, 범죄자들이 반전에 반전을 거쳐 강탈에 성공하는 결말로 변화되어 갔다. 유럽의 케이퍼 픽션의 낭만적인 범죄인 상에 영향을 받은 이러한 영화들을 따로 구분해 '케이퍼 무비(caper movie)'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대개는 하이스트 무비와 구분하지 않고 동의어로 쓰인다.

대표적인 하이스트 무비로는 <스팅>(1973년),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1999년), <이탈리안 잡>(2003년), <오션스 일레븐>(2001년) 시리즈 등이 있고, 한국영화에는 최동훈 감독의 <범죄의 재구성>(2004년), <타짜>(2006년), <도둑들>(2012년) 등이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하이스트 무비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표지를 비롯하여 초반부 희귀 원고 탈취 과정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펼쳐진다. #액션스릴러 위주이겠다 싶은 장면이 곧이어 #첩보물 형식을 갖다가 #로맨스로 마무리 짓나 추측 하게 한다. #존그리샴 소설이 갖는 단순한 듯 간결한 사건 전개이면서도 재미를 더한다. 현대 사건추리 소설이 갖는 집요하게 파고들며 너저분한 사건의 전개는 모두 건너뛴다. 왠지 모두의 해피엔딩이 기대되는 이야기이다. 사건은 '위대한 개츠비' 및 제럴드의 수기 원고를 보관한 대학 도서관의 탈취 과정은 앞으로 이야기 전개가 펼쳐질 방향에 대해 가늠하게 만든다. 그 가늠은 몇 장 가지 않아서 공범 중 일부가 잡히면서 전개 향방을 어지럽힌다. 또한 옴니버스 형식으로 소개된 인물들이 이 사건과 연계되면서 이야기의 마지막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소설 전개 중 가장 많은 인물 직업은 작가인데 #존그리샴 작가상일지 모르지만 재미있는 이야기가 500쪽을 넘을리 없다고 하더니 #카미노아일랜드 소설은 400여쪽이고 마치 재미있게 반나절 안에 읽을 수 있다. 또한 캐릭터가 다양해서 시각의 균형감각이 느껴지면서도 등장인물 브루스를 너무 매력적으로 그려서 그가 사건에 개입한 것인지 페이크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작가들의 글 작업 과정에 대한 수다, 희귀 원고에 대한 풍부한 지식 등 곁가지로 볼 수 있는 글에 대한 재미를 더한다. 범죄수사물 혹은 케이퍼픽션을 좋아한다면 #카미노아일랜드 소설은 분명 재미있을 것이다.

​◆ 줄거리
희귀 원고를 사라지고 나서 일부 범인은 잡았지만 원고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추적 중에 독립서점을 운영 중인 브루스 케이블에게 넘어갔을 확률이 높다며 작가이자 강사인 머서에게 내부 접근자로 다가가기를 일레인은 제안한다. 보험회사의 담당자인 일레인은 머서가 가졌던 여러 배경을 활용하여 브루스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드는데....


◆ 문장​

■ 네 사람은 24시간 전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트레이와 마크는 털이란 털은 모조리 밀어 버렸다. 수염, 머리, 심지어 눈썹까지. 데니와 제리는 깎을 수염은 없었지만 대신 머리 색을 바꾸었다. .... 중략..... 그들은 자신들이 감시 카메라에 잡혔다는 사실과 FBI의 안면 인식 기술 및 능력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들은 분명 실수를 저질렀다. 그럼에도 어떤 실수였는지 떠올리려는 노력은 빠르게 사그라들고 있었다. 이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본문 40쪽 중에서

- 영화 '도둑들' 팀처럼 완벽하면서도 발빠르고 대담한 범죄 현장을 함께 보는 듯 하다.



■전날 아무리 밤늦게까지 일했더라도 다음 날이면 틀림없이 아침 7시에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출근해, 배송받은 책을 옮겨서 꺼내고 매대를 정리하고 재고를 관리하고 바닥 청소를 했다. 본문 74쪽 중에서

- 완벽한 인물처럼 보이는 브루스 일과 중 일부다. 책을 좋아하고 글을 쓰는 작가를 존경하며 그들의 후원을 아까지 않으면서 대형 서점이 아닌 소형 서점인데도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며 글에 대한 안목이 높고 심지어 책을 쉼없이 읽는다. 희귀 원고에 대한 안목, 수완으로 심지어 부자다. 전형적인 완벽 인물을 그려놓고 그가 범죄자일지 모른다는 떡밥을 준다.



■도둑과 그쪽 변호사는 우리가 개입했다는 걸 눈치조차 채지 못해요. 그들은 우리의 존재를 절대 알지 못하고, 우린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요.

본문 112쪽 중에서

- 추적자들마저 원고의 온전한 회귀만을 바란다. 이야기가 너저분하게 흘러가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이는 사업을 잘 알고 다각도에서 예술을 보죠. 책이란 책은 모조리 읽는 데다가 수백 명의 작가며 에이전트, 편집자와 알고 지내요. 그 사람들이 가끔 그이를 찾아와서 의견을 듣고 가요. 조언은 말할 것도 없고, 다만 그이는 직접 요청을 받지 않으면 절대 참견하지 않아요. 그이가 당신을 좋아하고 당신 작품을 높이 평가하니까 아마 도움이 될 만한 얘기를 해 줄 거예요.

본문 217쪽 중에서

- #존그리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이런 완벽한 설정이 있다. 그 설정 덕분에 로맨스가 더해지는 부분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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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 에디터스 컬렉션 13
다자이 오사무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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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속 배경 및 분위기와 유사하다. 한 남자의 내외적인 절망과 현실 도피 등이 그려졌다면 #사양 속 중심인물인 가즈코 역시 비슷하다. 전쟁 이후 사회가 급속하게 변화하고, 귀족 신분에 의지하여 생활하던 가정이 가장의 죽음 뒤에 경제적으로 어려워졌을 뿐 아니라 계급 의식을 벗어나지 못해 사회에 부적응하며 사회로부터 괴리감을 느끼면서 도태된다. 일본 사회 전반에 깔린 우울, 미래 사회에 대한 불안, 혼란 등이 그려지면서 전후 사회가 가졌던 느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가즈코는 왜곡된 사랑이지만 이를 통해 자신의 처지와 불안을 밀어내고 미래를 향해 한 발 내딛는 혁명과 같은 삶을 살고자 한다. #사양 소설은 #인간실격 보다 먼저 발표된 작품인데, 전쟁 후 가치관의 상실, 허무하고 어두운 미래에 대한 불안이 느껴진다. ​



□ 희생자. 도덕적 과도기의 희생자. 당신도 나도 분명히 거기 해당하겠지요. 본문 188쪽 중에서

전쟁의 광풍, 무가치하고 폭력적인 바람에 휩쓸려 이끄는대로 살아야했지만 결국 전후 사회는 혼란과 무질서였고, 불안과 두려움은 인물들 속에 그대로 녹아있다. 이야기 초반 자주 등장하는 뱀은 인물의 마음에 자리잡은 불안을 보여준다.



■ 그런 불안은 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마음속에서 지워버릴 수 없었는데 오늘 아침 식당에서 곧은 사람은 일찍 죽는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입에 올렸다가 나중엔 다시 주워 담지도 못하고 결국 울어 버리고 말았지만 아침 설거지를 하면서 문득, 뭔가 내 가슴 속 깊은 곳에 어머니의 생명을 옥죄는 불길한 작은 뱀 한 마리가 들어앉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불안한 마음은 더욱 커졌다.
본문 19쪽 중에서



■ 아무리 애써봐도, 이젠 도저히 버텨낼 수 없을 것 같은 초조. 이것이 불안이라는 감정일까. 가슴속에 고통스러운 격랑이 밀려드는데 마치 소나기를 뿌린 하늘에 희뿌연 구름떼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거칠게 뒤덮여 지나가는 것처럼 심장을 옥죄었다 풀었다 하여, 나의 맥박은 엉겨 붙어 제대로 숨조차 쉴 수 없고 눈앞이 가물거리다 새까매진다. 본문 63쪽 중에서


이야기 초반에 등장하는 가즈코와 어머니의 시선은 집 안에 갇혀 있다. 귀족으로서 화려하게 살던 집과 비교하며 시골로 이사 와서 거주하는 집의 정원에서 바라보는 풍경. 그리고 풍경 너머로 보이는 바다. 그 사이에는 마을이 거주하지만 그들의 칩거는 외딴섬과 같은 것이다. 가즈코는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책을 읽어 교양을 갖추고 수준 높은 의식을 가졌지만 귀족으로서 기품을 가진 어머니를 향한 애정을 품었다. 결국 마을과 어머니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을 가진 것이다. 시선의 차이는 전쟁 중 가즈코가 노동 징용 차원에서 육체 노동을 위해 보급받았던 지카타비. 노동용 작업화를 착화하고 밭일을 하는 자신이 느끼는 이중적 감정에서 알 수 있다. 어머니과 같은 귀족 기품을 타고날 수 없는 존재, 사회적 변화를 감지하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두고 지카타비를 통해 자신이 현실에 조금씩 적응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 작년엔 아무 일이 없었다. / 재작년엔 아무 일이 없었다./ 그 전 해 역시 아무 일도 없었다. /
그저 그렇게, 허무하게 내 몸에 남은 건 이 지카타비 한 켤레뿐인 무상함이다.
본문 50쪽 중에서


전쟁으로 상실과 상처, 아픔이 '아무 일이 없었다'는 노래 불려진다는 것은 가즈코의 고백처럼 '허무'일 것이다. 사람이 죽었고 광폭한 전쟁의 참상만 현실 속에 고스란히 눈앞에 놓여져 있는 것이다.

귀족 집안의 가장 죽음 뒤에 삶의 구체성을 잃은 어머니, 마약 중독이 되어 귀족 계급성을 버리고 하층민의 혁명적 삶을 나타내려 했지만 흉내에 그치고만 가즈코 동생 나오지. 두 인물을 보살피는 가즈코는 두 사람의 죽음 뒤 달라진다. 우에하라와의 관계를 통해 귀족, 여자, 이혼 등 금기된 시선을 깨고 변화를 수용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변화의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나오지의 시선>

■ 문장에 이르지 못하고 인간에 미치지 못하는 꼬락서니. 본문 75쪽 중에서



■ 이 사람의 방탕한 행동에는 고뇌가 없어. 오히려 어리석은 놀음을 자랑으로 알고 있었지. 진짜 어리석은 방탕아. 본문 182쪽 중에서





<가즈코의 시선>

■ 파괴 사상. 파괴는 애달프고 슬프고 아름답다. 파괴하고 다시 세우고 완성하고자 하는 꿈. 그리고 한번 파괴하면 영원히 완성할 날이 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 절절한 사랑 때문에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혁명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된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마르크스주의를 향해 서글픈 외사랑을 했다. 본문 125쪽 중에서



■ 혁명을 꿈꾸었던 적도 없고 사랑도 몰랐다. 지금까지 이 세상 어른들은 혁명과 사랑, 이 두 가지를 가장 어리석고 흉측한 것이라고 우리에게 주입해, 전쟁 전이나 전시에나 우리는 배운 대로만 알고 있었는데 패전 후, 우리는 이 세상 어른들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뭐든 그 사람들이 말하던 것과는 반대로 하는 것이 진정 살길이라 여기게 됐다. 본문 127쪽 중에서


◆ 출판사의 사양플레이리스트 이벤트에 당첨되어 제공받은
도서를 바탕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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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메의 문단속 신카이 마코토 소설 시리즈
신카이 마코토 지음, 민경욱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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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란운 가득한 하늘,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 하는 교복입은 학생, 대도시 도쿄와는 다른 시골 풍경, 말랑말랑한 감정선이 그려지는 이야기 전개. #너의이름은 애니메이션에서 보았던 전형적인 일본 감성이다. #스즈메의문단속 소설도 비슷한 분위기를 그리면서 상처와 회복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과거와 현재가 맞닿아 있고, 지진과 같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재해 속 안타까움을 어루만지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일본 사회에서 #동일본대지진 피해는 하나의 기점이었다. 우리 사회가 #세월호 사건을 마주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회 구성원이 각기 다른 형태로 자신의 경험으로 흡수한다. 스즈메는 어릴적 지진에 의한 쓰나미로 엄마를 잃는다. 엄마를 찾다가 죽음의 경계를 넘어섰다가 돌아왔다. 죽을 뻔한 것이 아닌 실제 저세상의 모습을 보고 이곳에 온 것이다.

◆ 경계에 대한 이야기

#스즈메의문단속 에서는 경계(라틴어로 림보)를 이야기한다. 삶과 죽음,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 문 안과 밖, 과거와 현재의 경계. 문 안은 죽은 자의 세상, 저세상이다. 문 밖은 살아있는 자의 이세상이다. 문 안에서 밖으로 부정한 것, 이야기 속에는 지진의 원인에 해당하는 미미즈(일본어로 지렁이)가 바깥 세상에 나와 사람의 죽음에 이르게 한다. 경계에 해당하는 문은 폐허에 자리잡고 있다. 과거에 그곳은 사람들의 울고 웃는 삶이 있었다. 하지만 한 순간에 죽음이 자리하면서 버려졌고, 사람들은 잊었고 일상을 살아가며 그 기억을 지운다. 문지기 사명을 가진 사토와 스즈메의 만남은 경계에 대한 화해로 이야기를 이끈다. 문지기가 미미즈를 문 안에 밀어넣고 열쇠로 문을 잠그는 행위에 그 의미가 담겨져 있다. 폐허 이전에 본래의 모습을 상상하며 이곳에 살아가는 이들에게 생을 좀 더 이어달라고 어떤 존재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빌고 열쇠로 잠그며 봉인한다.


◆ 치유에 대한 이야기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자연 재해, 인재 등은 남은 생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많은 것을 앗아간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삶의 목적과 방향을 틀어버린다. 뒤틀린 삶은 바로 서기 위한 고통을 낳는다. 스즈메 역시 과거의 상처를 인지하지 못한 채 12년을 지나왔지만 어린 스즈메는 아직 성장하지 못했다. 이는 매번 똑같은 꿈, 미묘한 꿈을 꾸는 것으로 대신한다. 낡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어두운 밤하늘 속 별이 보이고, 발 밑 초원을 밟고 가면 누군가 있다. 어릴 적 상실의 경험에 대한 상처를 직면하지 못하고 지나온 것을 꿈의 형태로 끊임없이 만나는 것이다.



우연히 만난 사토를 통해 문 안팎의 세상을 알게 되고 함께 미미즈를 쫓는다. 그러면서 스즈메는 사람들을 지켜내는 과정에서 자신의 상처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상처는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고 고통의 경험을 공유하며 상처를 서로 보듬아야 가능하다. 고통에 대한 사회적 연대를 이야기한다. 스즈메와 사토의 여정 속에 만나는 인물은 고통의 원인을 묻고 들춰내기 전에 상처를 보듬아 안아준다. 위로와 응원을 보내며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다.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닿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스즈메의문단속 판타지는 현실에서 우리가 이루지 못한 과거의 상실에 대한 화해와 사회적 연대를 통한 상처의 치유를 메시지로 전달한다.



내가 38살 때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났다.

내가 직접 피해자가 된 건 아니었으나 그 일은

내 40대를 관통하는 일상을 지배하는 선율이 되었다.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소설을 쓰고 아이를 키우는 내내

그때 느낀 생각이 머리에 있었다.

왜. 어째서. 왜 그 사람이. 왜 내가 아니라. 이대로 끝인가.

이대로 도망칠 수 있을까. 계속 모르는 척하고 살 수 있나.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그런 생각을 한없이 하고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이

어느새 거의 같은 작업이 되어 있었다.

그 후로도 세상이 뒤집힌 듯한 경험을 여러 번 목격했으나

내 저변에 흐르는 선율은

2011년에 고착되어 버린 것만 같았다.

작가 후기 - 신카이 마코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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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거위가
전예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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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가 앨리스를 이상한 나라로 이끌었듯, 거위는 당신을 낯선 세계로 데려갈 것이다. 그곳에서는 나무에 팬티가 걸리고('팬티') 아파트 창밖으로 물고기가 다니며('우리 집에 놀러 와') 모두들 누군가를 납치하여 어디론가 가고 있다('귀경'). 어디 그뿐인가. 외로운 소년은 고래가 되고('숨통'), 퇴직 압박을 버티고 있는 회사원은 그림이 된다('같이 점심 먹을래요?'). 어떤 남자는 친구의 승진과 집 장만 소식에 속이 썩다 못해 좀비가 되었는데, 이참에 좀비 유튜버로 전향할까 고민 중이다('좋아질 거예요'). 이런 세계라면 정체 모를 바이러스로 사람들이 하나둘 거위로 변한다 한들 못 믿을 이유가 없지 않겠나.
- 이상한 나라의 '웃픔' 이지은 문학평론가


#어느날거위가 세상은 괴상한 정체성 존재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시점과 별반 다르지 않은 곳에서 별다른 존재에 대한 의식을 #전예진 작가만의 시선으로 담았다. #이지은 문학평론가의 평론처럼 웃프다는 표현이 매우 적절한 상황이 가득하다. 거위가 된 사람을 포함해 읽는 이에 의해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읽혀지는 의도나 상징을 알기 어렵다. 다만 설정에 따른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결말과 해결책이 무엇일까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시즌 2를 예상되는 결말이 펼쳐져서 당황스럽지만 그 자체가 매력으로 다가오는 글이다.


■ 백발의 단발머리에 레드 립, 노란색 민소매 니트와 살짝 보이는 청바지가 마음에 들었다. 웃어서 도드라진 입가 주름과 핏줄이 불거진 팔이 신경쓰였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가 학생에게 인스타그램 계정을 알려주고 태그를 부탁했다.
- 본문 10쪽, 팬티 중에서

교양과 세련미로 점철된 할머니. 젊은 세대와 소통하고 그들을 공감하는 남다름을 소유했다. 하지만 자신의 순수한 생각과 가치관에 입각한 행동의 표출인지 사회적 시선만을 고려한 것인지 자신도 헷갈리다. 현대인이라면 세대와 성별을 떠나 속마음과 달리 겉으로 표현해야 할 기준 같은 선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선악이나 도덕적 가치관이라면 더 쉬웠을텐데 구시대적 가치관으로 치부 받는 생각이 곧 외모의 추레함과 직결되는 듯 보이는 것이다. 위선이라고 하기에는 사회생활의 일부 같은 느낌. 그 애매함을 웃픈 팬티 전시 설정으로 콕 집어서 이야기한다

■ "이상하잖아. 거위가 닭을 먹는다는 게."
- 본문 53쪽, 어느 날 거위가 중에서

거위는 치킨 두 마리를 먹어 치운다. 감염병이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고 변종을 가져오지는 않겠지만 황당한 설정에 대한 숨은 의도나 결말이 무지 궁금했지만 미궁 자체로 이야기는 흘러간다.


■ 누가 너보고 하라니? 그렇게 답답하면 혼자 가. 남색 패딩을 걸치고 음식 쓰레기를 버리던 권숙자는 그렇게 말했다.
- 본문 79쪽 귀경 중에서

누가 누구를 어떤 목적으로 납치하는데 경찰은 이런 사람을 오늘만 몇 명 보냈다고 이야기하는가. 읽는 이에 따라서 상황을 그리며 생각할 것이다. 제목이 귀경인걸 보아 명절일 수 있을 것이고 오고 가는 대사로 미뤄 의례에 관한 것일 수 있으나 어떤 설명이 없다. 납치라는 단어에 불친절한 전개와 섬뜩한 상황을 상상할 수 있지만 분위기가 살짝 웃음을 비틀 듯 내비친다.



■ "산소가 뭔데?" 내가 물었다. "그러니까......" 그가 뒷머리에 난 콧구멍으로 숨을 내쉬었다. 얼굴에 따뜻한 김이 닿았다. "가고 싶은 대로 갈 거라고. 질릴 때까지."
- 본문 109쪽 숨통 중에서

지구에 거주하는 존재 중 상위지배자인 인간이 사는게 답답해서 다른 존재로의 변신을 꿈꾼다. 고래가 된 소년. 고래로 사는 삶도 쉽지 않겠지만 인간 아닌 다른 존재를 그리는 상상으로 돌로 태어나거나 한무더기 들꽃이고 싶어하지 않는가.


■ 유 차장이 태연하게 베이지색 카디건과 파란 스카프에 붙은 물감을 털어냈다. 옷보다 조금 밝거나 조금 짙은 색의 물감 덩어리들이 흐늘거리며 떨어졌다.
- 본문 163쪽 점심 같이 먹을래요? 중에서

그림이 된 인간. 회사에서 쫓아내려는 의도가 다분한 인사 조치. 버티려는 상대. 그는 그림이 되었다. 흔히 보이지 않는 존재 취급을 한다는 생각에 역발상 같은 맥락 같다. 누구나 시선을 못박아두지만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만 실용성을 위한 존재가 아닌 것이다. 웃픈 존재이지만 슬픔에 더 가까운 존재이다.


■ "너 칡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아?" 호진이 물었다. "넌 알아?" "군대에서 지겹게 뽑았지."

- 본문 233쪽 좋아질 거예요 중에서

친구의 승진 축하와 새집 장만에 대한 집들이에 좀비가 되었다. 좀비가 된 그와 배우자는 이 기묘한 상황에 대한 대처와 해법을 찾아 논의하는데 일탈 같기도 하고 일상적인 듯한 대화를 이어간다. 가볍기도 하고 무지한 듯 엿보인다. 수학공식 같은 답이 있는 인생이 아니더라.


사람의 인생마다 굴곡과 희비는 모두 다를 것이다. 그렇다고 본인만 특별히 힘든 세상을 살지 않을 것이다.

■ "니들 일은 니들이 알아서 해라." 할머니가 말했다."그 정도는 다 겪고 산다."
본문 120쪽 파도를 보는 일 중에서



그 정도 일을 맞이하는 모든 이들이 오늘도 그럭저럭 살아가길......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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