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겨울 내의에 쏟아지는 살비듬처럼

나도 모르게 지게 하소서

계절이 지나도록

그악스런 손아귀 풀지 못해

나무에서 모진 서리 맞게 하지 마소서

지금 진다고 세상을 버리는 건 아닙니다.

할 일 마쳐 자리를 비워 줄 뿐

다만 간절히 기도하건데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신앙만은 주소서

 

어느덧 가녀리게 말라붙어

산들바람에도 지를 외마디 부끄럽게 하소서

첫 출항 부풀은 오색 돛으로

바람, 그 바람을 온 마음 받아들이게 하소서

떨어지는 잎에선

귀향의 설레임 검버섯 꽃으로 피어나

누울 자리와 벌써 한 빛깔

 

이승의 질긴 인연

잎자루 떨쳐내 나무엔 여린 상처

겨울 내내 찬바람이 곯려대겠지만

한 낮엔 그래도 추억같은 햇살이 어루만져

그렇게 한 철 아픔으로

잎눈 다시 무성한 소망할테니

 

발길 재우치는 첫서리 희게 바삭이면

기도는 하나뿐

등뼈 꾸부려 가볍게 부푼 목숨

바람이

조용히 거두어 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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