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 소감
끝없는 나락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서
엄 영 훈
종심의 나이에 돌이켜보니 전율에 떨던 때가 종종 있었다. 무엇이 인간을 성장하게 했던 것일까? 사람이 가는 길에 극복해야 하는 것들이 무엇이었던가? 어떤 것이 나를 영글게 했고 힘든 종주를 마치게 했던 것일까? 그 눈물과 고통과 전율의 깨달음을 글로 형상화하고 싶었다.
범속한 인간이 보이지 않는 것에 홀리면 일상이 힘들어진다던가. 퇴임 후 들어선 시의 세계에는 끈끈이에 빠진 벌레의 몸부림이 있다. 잡힐 것 같으면서도 인간의 언어를 무력화시키는 저것, 과연 실체는 있는 것일까? 가끔 시라는 요물이 엉뚱한 주소에 어긋난 사람에게 접신했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보았던 빛나던 것이 평범한 문장으로 변할 때는 벗어나고 싶은 형벌이었다. 곧 끊어질 것 같은 줄을 잡고 어둠 속 세계를 찾아가는 것은 희열이었다. 스스로 선택했기에 참 행복하고도 괴로운 세계다.
어둡고 막막할 때마다 시가 있었다. 어머니의 눈빛처럼 나를 추스르게 했던 시인들. 다른 시인에게서 느꼈던 신비한 그 힘을 내가 쓴 시에서 느끼지 못하는 것은 비극이다. 제발 나의 시도 누군가 단 한 사람에게라도 마음을 추스르는 힘이 되었으면. 막막한 어둠을 조금이라고 밀어내 줄 수 있는 시를 단 한 편이라도 쓸 수 있었으면.
시를 쓰겠다는 말을 노망으로 비웃지 않고 격려해준 사랑하는 가족들, 끝을 모르는 나락으로 발로 차서 떨어뜨린 박찬일 교수님, 시를 함께 읽은 동료들, 지금 열정이 식지 않도록 자신을 다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