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서 마지기에 첩실로 팔려 왔다 한 칸 뒤란방에서 불편한 그림자로 서방 나이 두 배의 일생을 마쳤다 선산 먼발치에 묻혔는데, 긴 장마에 젖은 벽지처럼 축대 무너져 검푸른 곰팡이 같던 삶이 드러났다 햇빛에 흩어진 골편이 삼복에도 추위를 탄다
백골과 뒤엉킨 뿌리를 본 적이 있는가 앙상한 백골에 서리서리 감긴 구렁이 같은 뿌리 말이다 초점 빼앗긴 검은 눈구멍에서 못 본 세상을 마저 보겠다고 꿈틀꿈틀 기어 나오는 촉수 말이다 저승의 초입을 미리 본 듯 몸 떨지 마라 죽음의 알몸이 부끄럽다고 외면하지도 마라
뿌리는 반가웠던 것이다 뼛속 먼지 색깔이 너무 같다고 착착 감기며 포옹한 것이다 지상에선 잊어버린 두 생이 서로 등 도닥이는 것이다 원래 하나였다고, 가야 하는 곳도 같다고 함께 가며 동무하는 것이다 뿌리는 한 판 끝난 삶을 조용히 귀향시키고 있는 것이다
뿌리는 한 생을 푸른 잎에 실어 올리고 있다 바람, 흠뻑 즐기다 못해 티벳 독수리 날아오르듯 상승기류 타고 날아서 가라는 것이다
지상의 장례식은 산 자들의 축제지만 뿌리는 죽은 자를 위해 격식에 맞춰 보시를 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