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으로 아버지 여의고

같은 병으로 6개월 만에 어머니도 뒤따랐다

외아들 홀로 키워낸 할머니는

황망한 손주를 대신해

아들 이어 며느리 장례까지 씩씩하게 지휘했다

연달은 흉사에 넋을 놓은 처연한 식구들

어머니마저 보내 비통한 손주에게

할머니는 더 큰 한을 비수로 던졌다

 

애미를 애비 곁에 보내고 나니,

이제야 내 맴이 터억 놓인다

고생고생 호강 한번 못한 며느리의 절통한 삶보다

먼저 간 아들의 외로움이 걱정이었던 할머니

저승을 불신하는 손주는 그저 통곡했다

 

세월이 흘러 할머니의 시간이 왔다

미음도 못 넘긴다는 전화에

생전 얼굴 한 번 뵐려고

칠백 리 다섯 번 버스 갈아타고 달려온 손주

할머니는 핀잔부터 주었다

고생스럽게 머하러 오나. 날도 꾸물꾸물하는데.....’

할머니 저승은 이승과 다름없는 참 견고한 세상이었다

 

언문을 읽을 수 있었던 신부에게

부모가 정해준 짝은 경성에서 전문대 마친 하이칼라였다

친구랑 기생 불러 집에서 자주 풍악도 잡혔다

아궁이 앞에서 쭈그려 듣는 대청 지화자 소리도 자랑스러웠다

몇 년 병수발한 아내에게

임종할 때 손 꼭 잡고 눈물로 한 말씀했다

자네 고생만 시켜 내 죄가 크네

 

청상은 물일 밭일 가리질 않았다

목이 휘도록 혼자 이어야 했던

식구들 목줄인 함지도

물동이에 얹힌 바가지처럼 가벼웠다

밤새 졸음으로 묶어

새벽 장에 내던 삼단 같은 채소 단

머리털이 성겨 비녀를 꽂을 수가 없었다

 

탱목 같은 할머니에게도 큰 걱정이 딱 한 가지 있었다

저승서 할아버지가 알아나 볼까?‘

할머니가 꺼내 보는 사진 속 할아버지는

동그란 금태 안경에 뽀얀 얼굴이 가름한 젊은이였다

세월이 비껴간 할아버지 젊은 저승만은 미심쩍었다

식솔이 늘어 새벽잠을 줄여야 하는 만큼

걱정도 점점 굵어지는 삭정이 손마디였다

 

할머니의 젊음을 뺏어먹고 머리가 커진 손주는

궁리 끝에 기특한 거짓말을 했다

할머이 그런 걱정 마

사람은 죽으면 가장 행복했던 모습으로 바뀌어 산다던데

 

아무 걱정 없이 황천 건너 서방님을 만나리라

사공에게 건넬 뱃삵도 쌈지에 꼭 챙겼다

벼르고 별러 장만한 안동포 수의

쓰다듬을 때마다 보풀이 일어도 마음은

혼례 비단옷 매만지며 초행 기다리는

떨리던 고운 손이었다

 

폭설 예보 눈발처럼 날려 황황한 손주

뒷목은 차마 떠나지 못하고 돌아보니

문지방에 허깨비 하나 상체 반 넘어 걸쳐

대문께 내다보고 있었다

한 손으로 대청마루 집고 다른 손

손등으로 어여 가라고 떠미는 몸짓으로

당신의 먼 저승길보다 손주의 눈길이 더 걱정인 할머니

손주의 비통을 대문 밖으로 내몰고 있었다

 

사진처럼 각인된 이승의 마지막

피골이 상접한 검버섯 얼굴과

방안의 기물이

너무나도 밝고 또렷해

누가 환하게 등을 켰나

순간

착각을 했다

 

발길 다그치는 칠백 리 길

올려다본 궁창은 저승같이 아득히 깊은데

함박눈이 목젖까지 뜨겁게 젖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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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순 2016-05-09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할머니의 인생이 한 편의 영화 처럼 제 눈앞에 펼쳐져 보이는듯 합니다
이 시 속에 먼저가신 제 할머니의 모습이 겹쳐져 보이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한편의 시로 가슴을 적시며 이 하루를 시작합니다
감사합니다